지난 기획/특집

[신앙의 해 · 창간 86주년 기획 - 현대 가톨릭 신학의 흐름] (34) 아시아신학의 흐름과 전망 ② 아시아의 땅에서 인간 존엄성의 온전한 실현을 향하여

박준양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의신학 교수)
입력일 2013-12-03 수정일 2013-12-03 발행일 2013-12-08 제 2873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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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절반 이상 결핍 가난 착취로 고통
가장 가난하고 시급히 주목해야 할 대상 ‘이주민·어린이·여성’
이들 위한 노력, 교회 당연한 사명…복음적 성찰 애덕실천 필요
형제애·연대성 안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사랑 절실
오늘 대림 제2주일은 교회가 정한 ‘인권주일’이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창세 1,26-27 참조)의 존엄성에 대해 묵상하며, 모든 충만한 인간성의 아름다운 실현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날이다. 요한바오로 2세(재위 1978~2005)는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1999)를 통해, 아시아의 복음화에 있어 인간 존엄성의 수호와 증진을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말한다. 이 세상에서 “교회가 추진하는 발전이란 경제와 기술의 문제 훨씬 그 이상의 것”이며, 그것은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창조되었으며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적 품위와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이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인간 인격의 완전성”(33항a)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

먼저 인간 존엄성의 성경적 근거를 살펴보겠다. ‘성경 전체의 내적 단일성’이란 해석 원리에 근거해, 비록 각기 다른 시대적 배경의 전승에서 기원하였지만,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으로”(in the image of God) 창조되었다는 1장 27절의 진술은 다음의 2장 7절과 연결시켜 해석 가능하다.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흙의 먼지로 빚어진 인간은 한계성과 사멸성을 지닌 존재이지만,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생명의 숨결로 인해 그 고귀함과 존엄성을 얻게 된다.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단지 외적 형체가 비슷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생명의 숨결(영)’을 받아 창조되어 그분과 영적으로 통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따라서 어느 특정 측면이나 자질이 그러하다는 차원을 넘어서, 인간의 생명으로, ‘인격’으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하느님을 닮은 인간의 본질적 속성을 드러낸다. 즉, 하느님을 닮은 인간은 필연적으로 하느님 앞에서 그분과 통교하며 응답을 드려야 하는 인격적, 영적 존재인 것이다.

“인간 하나하나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녔으므로, 존엄한 인격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단순히 ‘어떤 것’이 아니라 ‘어떤 인격’이다. 인간은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의 주체가 되며, 자유로이 자신을 내어 주고 다른 인격들과 친교를 이룰 수 있다. 은총을 통하여 인간은 자신의 창조주와 계약을 맺고,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신앙과 사랑의 응답을 드리도록 부름을 받았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357항)

이런 차원에서, 오늘 대림 제2주일의 제1독서인 이사야 예언서 11장의 말씀을 묵상해본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터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면(1-2절 참조),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나리라 예언된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6-9절)

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묘사하는 새로운 미래이며, 동시에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모습이기도 하다. 모두가 주님의 영을 통해 새로이 변화되어, ‘나눔과 섬김과 화해’의 삶을 살아야 함을 역설한다. 사실, 아시아의 대부분 나라들은 과거 식민지로 지배당하며 살아온 슬픈 기억을 지니고 있기에, 많은 아시아인들은 약자의 설움과 아픔을 잘 이해한다. 더욱이 아시아의 종교문화 안에는 자비심과 측은지심을 통해 고통 속의 사람들을 배려하고 돌보는 전통이 흘러온다. 이러한 아시아적 가치관을 그리스도교 신학적 관점과 연결시켜 성찰한다면, 결국 하느님께서 아시아의 땅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원하시는 것은 인격적 상호 존중, 나눔과 섬김을 통한 생명의 성장, 그리고 충만한 평화의 실현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아시아의 문제들에 대한 성찰

지금 아시아 대륙의 현실은 어떠한가? 요한 바오로 2세는 ‘아시아 교회’를 통해, “아시아는 풍부한 자원과 위대한 문명들의 대륙이지만 몇몇 국가는 지구상의 가장 가난한 나라이며, 인구의 절반 이상이 결핍과 가난 그리고 착취로 고통받고 있는 곳”(34항a)임을 지적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소외받고 고통받는 이들을 돕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아시아 교회의 당연한 사명에 속한다.

“인간 존엄성의 향상을 추구함에서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과 보잘것없는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을 보여 주고 있는데, 그것은 주님께서 특별한 방식으로 그들과 당신을 동일시하셨기 때문입니다(마태 25,40 참조). 이 사랑은 어느 누구도 배제시키는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교 전통 전체가 증언하고 있는 봉사의 우선순위를 단지 구체화할 뿐입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 그리고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우리가 내리는 결단은 당연히 저 무수하게 많은 굶주린 사람들, 곤궁한 사람들, 집 없는 사람들,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더 나은 미래의 희망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34항a)

교회는 착취당하는 이들을 위해 행동하고 어린이들을 사랑으로 이끌기 위해 모든 일을 다 하여야 한다. 사진은 필리핀 마닐라의 빈민지역에서 한국 선교사들이 제공하는 무료급식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 【CNS】
이처럼 애덕 실천의 사명에 임할 때, 아시아 교회가 특히 관심을 갖고 주목해야 할 것은 이주자들의 문제, 그리고 어린이와 여성의 문제라고 요한 바오로 2세는 강조한다. 먼저, 이주민의 문제에 대하여 설명한다. “아시아는 현재 피난민들, 망명 신청자들, 이주자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전례 없는 홍수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나라들 안에서 그들은 자주 외롭거나 문화적으로 고립되거나 언어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고,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의 인간적 존엄성과 문화적-종교적 전통을 간직할 수 있도록 지지와 배려가 필요합니다. 아시아 교회는 한정된 자원에서도, 예수님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사람도 이방인이 아니며 그들이 모두 예수님 안에서 휴식을 찾게 됨을 알면서(마태 11,28-29 참조),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들을 위한 환대의 집이 되고자 관대하게 노력하고 있습니다.”(34항d)

우리나라는 이러한 이주민 문제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이미 많은 아시아 이주 노동자들이 국내에서 일하며 살고 있고, 다문화 가정의 수도 급격히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교회 차원의 관심과 도움이 이미 시작되었고, 앞으로도 더욱 활발히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역시 이러한 이주민 문제에 대한 교회적 접근과 배려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인다. 이제 아시아 백성들의 ‘이주와 통합’(migration and integration)이라는 사회 문제는 하나의 중요한 사목적, 신학적 성찰의 대상이 된 것이다.

한편, 요한 바오로 2세는 고통받는 어린이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또한 표명한다. “어느 누구도, 단지 개인들이 저지른 악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종종 부패한 사회 구조의 직접적 결과이기도 한 견디기 힘든 착취와 폭력의 희생자로 전락하고 있는 아시아의 수많은 어린이들의 고통에 무관심할 수는 없습니다. 주교대의원회의 교부들은 어린이들의 노동, 어린이에 대한 성도착증, 그리고 마약 현상은 이들을 가장 직접적으로 감염시키는 사회악임을 강조하였으며, 이러한 병폐들이 빈곤과 결함 있는 국가 발전 계획과 같은 또 다른 요인들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분명히 지적하였습니다. 교회는 가장 착취당하는 이들을 위하여 행동하고 어린이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끄는 길을 모색하고자 이러한 악들을 극복하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여야 합니다.”(34항f)

그리고 여성의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아시아에서는 여성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자주 가정이나 직장 그리고 심지어 법적 제도 안에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문맹은 여성들 사이에 가장 널리 퍼져 있으며,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매춘이나 관광 그리고 유흥 산업을 위한 상품들로서 취급되고 있습니다. 온갖 형태의 불의와 차별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여성들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동맹군을 발견하여야 합니다.”(34항g) 이러한 성적 차별 속에 아직도 여성 인신매매가 횡행하며, 낙태와 미혼모의 문제 역시 심각한 상황으로 돌봄의 손길을 기다린다. 아시아의 여러 곳에서 “여자아이들은 낙태로 희생될 위험이 많으며, 심지어 태어나자마자 곧 죽게 될 위험에 놓이기도 한다”(7항f)는 현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광대한 아시아 대륙을 이슬람권의 중앙아시아 지역을 제외하고 크게 세 그룹으로 분류해본다면, 요한 바오로 2세가 언급한 어린이와 여성의 문제 혹은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인 고립 상태에서 살고 있는” 토착원주민들의 문제(참조: 7항f. 34항e)는 동북아시아(한국, 일본, 중국, 홍콩, 대만 등)에도 어느 정도 해당하지만, 주로 동남아시아(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나 서남아시아(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에서 더 심각하게 발생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시아적 형제애와 연대성 안에서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한 복음적 성찰과 애덕 실천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처럼 아시아신학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아시아 대륙에서 시대의 표징과 복음적 사명을 식별하기 위해 노력한다. 오늘 아시아의 땅 위에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깨닫고자 애쓰며, 그 구원의 아름답고 역동적인 힘이 이 세상에 실현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박준양 신부는 1992년 사제로 서품, 로마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교의신학 전공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신학과사상학회 편집위원장 및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위원, FABC 신학위원회 전문신학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박준양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의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