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정웅모 신부의 아름다운 성화 아름다운 인생 (67) 미국 클리블랜드 박물관 ‘예수 그리스도’

정웅모 신부 (서울 장안동본당 주임)
입력일 2013-11-26 수정일 2013-11-26 발행일 2013-12-01 제 2872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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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수님을 만나면 꼭 껴안아 드릴 거다”
‘연민’의 눈으로 삶에 지친
 사람들을 바라보는 예수님,
인간 때문에 가장 낮은 자리
내려오신 겸손함 드러나
조르즈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 ‘예수 그리스도’, 1937년, 유채, 105x75cm, 클리블랜드 박물관, 미국.
20세기 최고의 종교화가로 불리는 조르즈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잊고 척박하게 살던 시대에도 한평생 그분의 모습을 그렸다. 그는 예수님의 모습과 성화를 통해 그분은 여전히 이 세상과 인간의 유일한 구원자시라는 것을 강하게 말했다.

우리가 여기서 보는 ‘예수 그리스도’는 그가 그린 많은 예수님의 모습 가운데 한 점이다. 예수께서는 사랑이 가득 담긴 커다란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분의 모든 관심사는 하느님의 모상을 닮게 창조된 사람들이었으며 그 가운데서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지대했다.

여기서도 예수께서는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가꾸고 있는 사람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신다. 예수께서는 값진 옷을 입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동자들처럼 푸른 작업복을 몸에 걸치고 계신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예수님은 마치 살아있는 듯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신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과 똑같으신 분이셨지만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인간이 되셨고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낮은 자리에까지 내려오신 예수님의 겸손한 모습이 표정과 자세에서 잘 드러난다. 루오는 한평생 성화를 그리면서 누구보다도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갔기 때문에 이처럼 아름다운 성화를 제작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손지호(요한)군의 그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루오가 그린 ‘예수 그리스도’처럼 얼마 전에 매우 감동적인 십자고상 그림을 본 적이 있다. 그 그림은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손지호(요한)가 그린 것이다. 요한이 다니는 소화초등학교는 우리 교회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선생님께서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준 후 느낀 점을 그림으로 표현하게 했다.

요한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그렸는데, 예수님의 얼굴은 표현되지 않았고 바람에 날리는 긴 머리카락이 그분의 얼굴을 온통 다 덮고 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배경에는 천국으로 이르는 길이 있고 하늘에는 노란 초승달만이 외롭게 떠 있다. 초등학생의 그림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구도와 내용 등이 매우 진솔하게 표현됐다.

이제 겨우 여덟 살에 불과한 요한은 그림 위에 삐뚤거리는 글씨체로 이런 글을 적어 놓았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다섯 군데 상처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내가 예수님을 만나면 꼭 껴안아 드릴 거다. 그리고 난 예수님의 기뻐하시는 얼굴 그림을 그려 드릴 거다.”

루오는 작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예수님을 살아 있는 분으로 소개해 주고 있다. 그분은 2000여 년 전에 이 세상에 오셨던 인물이셨지만 이 시대에도 여전히 살아계시는 주님이심을 알려준다. 어린 요한이 그린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도 그분이 2000여 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여전히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아파하신다는 것을 알려준다.

다시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대림시기를 맞이했다. 예수께서는 오늘날에도 우리 인간의 구원을 위해 다시 찾아오시고 사랑해 주시고 온갖 고통 속에서 우리를 안아 주시며 구원으로 이끌어 주신다. 이 세상이 구원돼 완성될 그날까지 주님은 우리 곁으로 쉼 없이 다가오신다.

정웅모 신부 (서울 장안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