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지도 (8) 도심 한복판의 신앙성지 서울 명동

이지연 기자
입력일 2013-11-26 수정일 2013-11-26 발행일 2013-12-01 제 2872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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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함께 신앙과 함께
서울 중심에 꽃 핀 가톨릭문화
번잡한 고층건물 속 명동성당 중심으로 영적 쉼터 형성
명례방 수표교에서는 한국교회 초석 이룬 선조들 ‘흔적’
여정 / 명동역 → 명동성당→ 명례방 → 수표교

명동(明洞), 서울시를 상징하는 번화가다. 최근에는 연간 685만 명의 외국 관광객들이 다녀가는 국내 최고의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한국 금융의 중심지이자 첨단 유행 문화의 시발점이기에, 한국 사람이 ‘명동’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실제로 명동은 모든 것의 중심으로, 백화점, 호텔, 극장, 은행 등 없는 것 없다. 그래서인지 주중이고 주말이고 매일같이 거리에는 사람들로 붐빈다.

이런 명동에는 한국교회의 신앙 중심지인 ‘명동성당’도 있다. 한국교회 최초의 본당 공동체이고 1980년대 민주화의 성지로, 지금은 누구나 찾아와 마음의 안식을 찾을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 ‘가톨릭지도’는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가톨릭문화가 새겨진 거리에 발자취를 남겨본다.

■ 도심의 영적 안식처

4호선 명동역 6번 출구로 나서자, 주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꽤 많다. 모두 관광객들이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중국어와 일본어에 이곳이 한국인지 외국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다행히 거리는 복잡하지 않았다. 사람이 하도 많아 거리를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밀려가다시피 지나가야 하는 저녁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노점과 매점이 이제 막 영업 준비를 시작하는 민낯의 명동거리를 가뿐하게 지나, 가톨릭지도의 시작점인 명동성당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누가 한국교회의 신앙 중심지 아니라고 할까봐 명동성당도 이미 북적거렸다.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일 하루 동안만 미사가 10대나 봉헌되는데도, 미사 참례를 위해 기다리는 신자들의 줄이 매 미사 시간마다 길게 늘어서 있다. 100년이 훌쩍 넘은 고풍스러운 성당과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신자, 그 앞으로 보이는 명동의 고층 건물들은 한데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각박해지는 한국사회에서도 여전히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의 모습에 같은 신앙인으로서 뿌듯하기도 했다.

신앙의 뿌리가 깊은 명동성당은 세례를 앞둔 예비신자들에게 필수 성지순례 코스다.
성당 뒤편 성모동산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다.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이들이다. 엄숙한 모습에 발소리 내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기도하는 무리 중에 외국인들도 종종 눈에 띈다. 한국을 여행하면서 꼭 한 번 명동성당에 와보고 싶었다는 프랑스인 세바스찬(26)씨는 “주일에 이렇게 많은 신자들이 성당에 찾아오는 것이 놀랍다”면서 “열성적으로 신앙생활에 자극을 받아서 그런지 오랜만에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를 청해 보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명동성당은 꼭 신자들만 찾는 공간은 아니다. 평일 점심시간만 되면 인근의 직장인들이 음료수를 들고 이곳으로 산보를 나온다. 복잡한 명동 한복판에서도 마음의 안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 성현지(29)씨는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가끔 동료들과 명동성당을 온다”면서 “네모난 사무실에 갇혀 있다가 이곳에 나오면 기분도 좋아지고 또 뭔지 모를 편안함도 느낀다”고 말했다.

성당은 현재 새 단장을 위한 변신 준비로 한창이다. 신자들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언제나 찾아올 수 있도록 열린 공간이자 쉼터를 갖추고, 다양한 문화적 기능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와보고 싶어하는 공간, 명동성당의 변신이 기대되는 이유다.
성모동산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신자들의 모습이 엄숙하게 느껴진다.
성당을 꽉 채운 신자들의 모습.

■ 뿌리 깊은 신앙촌

명동성당은 교회적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국교회 창설 직후 형성된 신앙 공동체인 ‘명례방 공동체’(현 외환은행 앞)가 성당 부근에서 시작됐고, 가톨릭대사전에 무려 여섯 장에 걸쳐 이곳 성당에 대해 설명이 나올 정도이니 두말 하면 입이 아플 정도다.

지금은 성당과 중국대사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상가지역이지만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이 지역은 주택지로 밀집을 이뤘다. 이승훈(베드로)이 수표교 인근의 이벽의 집에서 최초의 세례식을 거행했고, 명례방에 살던 통역관 김범우가 자신의 집에서 교회 예절 거행과 교리 강좌를 열어 신앙의 집성을 이루기도 했다.

한국교회의 초석을 만든 이들 장소들은 현재 표지석으로만 그 터를 확인할 수 있다. 을지로, 청계천 등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장소지만 신자들도 잘 모르고 지나가기 일쑤다. 서울대교구가 신앙선조의 흔적들을 찾아가도록 독려하기 위해 지난 9월 성지순례기를 선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덕분에 지도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등이 마련돼 있어 기자도 어렵지 않게 명례방과 수표교를 찾아갈 수 있었다.
서울 수표교에 세워진 한국천주교회 창립터 기념표석.

수도 한 복판에서 성업의 터전을 닦은 신앙 선조들은 손수 팔을 걷어붙이고 블랑 주교가 매입한 대지의 정지(整地) 작업에 매진하기도 했다. 신자들의 열성으로 12년 만에 완공된 명동성당의 가치는 문화적·역사적으로 높이 평가돼 1977년 문화재(사적 제258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러한 신앙의 뿌리가 단단히 내려 명동본당 공동체의 열정은 한국교회 일등이다. 미사 시간마다 자리가 꽉 찰 정도로 많은 신자들이 찾아오는 것은 물론, 너도 나도 본당 일에 앞장선다.

명동본당에서 30여 년 동안 신앙생활을 해온 조정숙(체칠리아) 사목협의회장은 “우리 본당 모든 신자들은 한국교회의 본산으로 긍지와 품위를 갖고,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자부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명동성당의 진정한 가치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당 곳곳에서 전해지는 신앙선조들의 오롯한 믿음은 세상의 흐름을 좇아가기에 바쁜 현대의 많은 신앙인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는 듯했다.

■ 과거와 현재의 공존

12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성당에서만 두 시간을 보내면서도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다. 가톨릭신자로서 알아야 할 것도, 볼 것도 그만큼 다양했다. 지하성당에는 기해·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신앙 선조들의 유해가 안치돼 있고, 성당 내부와 외부에는 아름다운 성미술품들이 설치돼 있다. 많은 본당에서 예비신자 성지순례 필수 코스로 이곳을 선택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세례를 앞둔 예비신자들과 함께 명동성당을 방문한 인천 옥련동본당 이청미(소화데레사)씨는 “신자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곳”이라며 “신앙 선조들이 이곳에 터전을 잡고 성당을 세우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신앙을 한 번쯤 되돌아보게 됐다”고 전했다.
밤낮으로 아름다움을 뽐내는 명동성당 성미술작품.
신앙 선조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지하성당에도 많은 신자들이 찾아와 기도하고 있었다.

교중미사를 마치고 명동성당 아래로 내려왔다. 같이 미사를 마치고 나온 신자들도 영적으로 충전된 양 씩씩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제 아무리 화려하고 현란한 명동 거리가 유혹을 해도, 세상의 모진 풍파가 흔들어도 끄떡없어 보였다.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