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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옥 영혼 위해 바치는 기도, ‘연도’의 역사와 의미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3-10-29 수정일 2013-10-29 발행일 2013-11-03 제 2868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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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하나 되어 부르는 ‘부활 희망’의 신앙 고백
조상에 대한 효·윤리 지키려는 신앙선조에 의해 형성
보편교회 전례 한국문화와 융화된 토착화 성공 사례
연도는 부활의 믿음을 지니고 공동체가 하나 되어 노래하는 신앙 고백이자 기도이다. 사진은 2010년 11월 14일 수원교구 상록수본당에서 열린 연도대회 모습.
한국 천주교회 신자들은 누구나 알지만 비신자들에게는 암호처럼 들리는 말이 있다. 바로 “연도(煉禱)가 났다”는 말이다. 신자들은 어느 신자의 집에 초상이 나면 “연도가 났다”고 서로 알리며 찾아가 끊임없이 연도를 바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이처럼 연옥 영혼을 위해 바치는 기도, 연도는 한국 신자들의 생활 깊숙이 자리한 기도다. 전통가락으로 구성지게 기도를 읊으며 죽은 이를 기억하는 이 연도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전통가락으로 바치는 연도가 자리 잡은 정확한 시기를 알 수는 없지만 연도의 기원은 박해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자들은 박해를 당하면서도 제사 지내기를 스스로 금했지만, 조상에 대한 효와 윤리는 더욱 철저히 지키기 위해 연도 문화를 형성했다. 유교문화가 뿌리깊이 정착된 당시 조선사회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것은 효와 대치되는 것이었지만 죽은 이를 위한 기도인 연도는 이런 갈등을 해소시킬 수 있는 돌파구였다.

1864년 출간된 「천주성교공과」는 연도의 내용을 최초로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가톨릭 기도서」에 해당하는 이 책에는 연옥도문(성인호칭기도), 죽은 부모를 위한 기도, 연옥 영혼을 돕는 찬미경, 어린아이 죽은 후에 하는 찬미경 등이 연도로 수록돼 있다. 이어 1865년에는 한국교회의 첫 상장례 예식서로 연도내용이 자세히 담겨있는 「천주성교예규」가 편찬됐다. 「천주성교예규」는 1947년 「성교예규」로 재출간되기까지 100여 년간 교회의 상장례 예식서로 사용돼온 책이다.

연도하면 떠오르는 구성진 가락 역시 그 뿌리를 박해시대에서 찾는다. 1890년대 선교사들의 기록에서 신자들이 밤새도록 연도를 바치고 있었다는 내용이 다수 발견되는 점에서 그 당시에는 이미 가락이 정착됐을 것으로 여겨진다. 또 한국 전통의 리듬으로 경상·강원지역 동부민요의 선율이 나타나는 연도의 가락은 ‘천주가사’와도 유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주가사는 현재 신자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지 않지만 연도는 입에서 입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져왔다. 구전으로 내려와 각 지역마다 특색을 지니게 된 연도는 1991년 처음으로 오선악보에 수록됐고 2003년 주교회의에서 「상장예식」을 마련하면서 전국이 같은 가락으로 연도를 바칠 수 있게 됐다.

왜 신앙선조들은 특별히 연도에 노랫가락을 붙여 불러왔을까. 이는 「천주성교예규」에 실린 ‘상례문답’에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왜 소리 높여 노래하며 연도를 하는 가에 관한 질문에 「천주성교예규」는 “연도는 첫째로 노래하는 소리로서 내 생각을 들어 주께 향하게 하여 내 마음을 수렴하게 하고 더욱 구원을 향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밝히고 “우리가 죽음의 슬픔 가운데 있지만 우리의 슬픔은 희망 없는 믿지 않는 이들과 다르기 때문”에 노래로 연도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연도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신앙을 더욱 풍성히 한다. 150년이 넘는 역사 속에 보편교회의 전례가 한국 전통문화와 융화된 연도는 토착화의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히고 가톨릭뿐 아니라 한국의 문화·역사적 자산으로서도 큰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신앙인에게 있어 연도는 부활의 믿음을 지니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공동체가 하나 되어 노래하는 신앙의 고백이자 기도다.

이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