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정웅모 신부의 아름다운 성화 아름다운 인생 (64) 산타 마리아 글로리오사 데이 프라리 대성당 ‘성모승천’

정웅모 신부 (서울 장안동본당 주임)
입력일 2013-10-08 수정일 2013-10-08 발행일 2013-10-13 제 2865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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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충실한 사람을 드높여 주신다
삼단 구성으로 양팔 벌린채 승천하는 성모마리아 묘사
‘아래로부터 올려보는 시선’ 기법, 생생한 모습 부여
성화 지켜보는 이들 “함께 하늘로 드높여지는 심정”
티치아노(Tiziano,1477경~1576)가 그린 ‘성모승천’(1516~1518년)은 베니스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에 제단화로 제작됐다. 이 작품은 삼단으로 구성됐는데, 상단에는 성부 하느님께서 양손을 활짝 펼치고 환영하는 자세를 취하며 성모마리아를 맞이하시는 모습이 표현됐다. 중단에는 이 세상에서 삶을 마감한 마리아가 무수한 천사들의 인도를 받으며 황금빛 가득한 하늘로 오르는 것이 묘사됐다. 하단에는 여러 제자들이 마리아의 승천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놀라워하는 것이 그려졌다.

화가는 성모마리아의 승천 장면을 아래로부터 올려보는 시선으로 제작해 하늘로 오르는 모습이 더욱 생동감 넘치게 표현됐다. 이런 표현 양식을 통해 이 작품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하늘로 드높여질 수 있도록 했다. 일찍이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온 몸으로 품었던 마리아는 이제 하느님 아버지께서 계시는 하늘을 품듯이 양팔을 벌린 채 승천 중이시다.

성모마리아는 한 평생 동안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을 삶의 첫 자리에 두고 그 말씀을 따라 충실한 삶을 가꾸셨다. 믿음에 충실한 마리아를 하느님께서 잊지 않고 거두어 주신 사건이 바로 성모승천이다. 또한 이 성모승천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희망의 표지가 된다. 하느님께서는 성모마리아 뿐 만 아니라 당신께 충실한 사람을 결코 잊지 않으시고 드높여 주시는 분이시다.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1477경~1576), ‘성모승천’, 1516~1518년, 유채, 690×360cm, 산타 마리아 글로리오사 데이 프라리 대성당, 베니스, 이탈리아.

하늘로 오르시는 성모마리아를 바라보면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올라가신 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머니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기도 바치는 것을 잊지 않으셨고 그 가운데서도 묵주기도를 가장 즐겨 바치곤 하셨다. 어머니의 굵은 손에서 묵주가 떠나는 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도 묵주기도를 자주 바칠 것을 말씀하셨다. “손을 쉬게 해서는 안 된다. 손이 쉬게 되거든 언제나 묵주를 잡고 기도를 바치라”고 하시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 하느님 품에 안기는 시간에도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으셨고 그 낡은 묵주 하나만을 갖고서 하늘나라로 올라가셨다. 어머니께서 선종하실 때 나는 영국에 유학 중이어서 임종을 지켜보지는 못하였다. 하늘로 오르면서도 험난한 이 세상에 남게 될 막내아들 신부인 나에 대한 걱정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사제 서품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어느 날 내가 하느님 품에 안기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마라. 너에게는 또 다른 어머니인 성모마리아가 계시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한단다. 성모님께서 어머니처럼 너를 잘 보살펴 주실 거야. 그러니 그때는 성모님을 어머니로 여기고 그분께 의탁하며 지내면 될 것이야.”

지금 우리가 맞이한 시월은 ‘묵주기도성월’이다. 매 주일 미사 때면 수많은 신자가 성당과 마당을 가득 메웠다가도 미사가 끝나면 일순간에 썰물처럼 빠져 버린다. 그러나 모두가 떠난 성당 마당 한 쪽에는 신앙의 자녀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 바치는 성모상이 서 있다. 자식들을 위한 어머니의 기도가 끝이 없듯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마리아의 전구 기도도 끝없이 이어진다. 텅 빈 성당 마당에서 묵주기도를 바치며 오가다 보면 천상의 어머니도 어느새 내 곁에 머물러 계시는 듯하다.

정웅모 신부 (서울 장안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