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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맛나는 세상 시장사람 이야기 (5) 365일 24시간 불 밝히는 노량진수산시장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3-09-24 수정일 2013-09-24 발행일 2013-09-29 제 2863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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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속 싱싱한 바다 … 모든 생선은 노량진으로 통한다
한국 최초 수산물도매시장 … 판매장만 800여 개 국내 최대 규모
활어 선어 각종 어패류 젓갈 등 370여 가지 신선 해산물 유통
상인 대부분 20~30년 경력 “정직한 땀의 대가 돌려 받는 것 배웠죠”
한반도 삼면의 바다는 사시사철 다양한 해산물들을 내어놓는다. 이 해산물 대부분이 모이는 곳이 바로 노량진 수산물 전문 도매시장. 한국 최초의 수산물도매시장이자, 현재까지도 전국에서 가장 큰 소비지 시장이다.

노량진수산시장은 살아있는 활어부터 선어류, 냉동어류, 각종 어패류와 젓갈, 가공해산물까지 370여 가지 이상의 해산물이 거래되고, 판매장만 800여 개를 갖춘 곳이다. 2011년에는 서울시가 외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서울의 가장 매력적인 명소’로도 선정된 바 있다. 준본당이지만 성당과 사무실, 각종 회합실을 갖춘 성당이 자리 잡은 곳이기도 하다.

이번 호 ‘살맛나는 세상 시장사람 이야기’는 1년 365일 24시간 불을 밝히고 있는 노량진수산시장에서의 아침으로 문을 연다.

■ 도심 한가운데 펼쳐진 바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이지만, 비릿한 바다내음이 진한 곳이다. 게다가 지하철에서 내리면 곧바로 시장에 들어설 수 있어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자정 무렵, 한밤의 어둠을 가르고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차량들이 속속 시장 안으로 들어선다. 곧바로 1시부터 선어 경매가, 3시부터는 활어 경매가 시작된다. 살아서 팔딱팔딱 뛰는 활어들이 장바닥에 즐비하게 쌓이기 무섭게 어느 틈엔가 빠져나간다. 활어를 실은 리어카들은 판매장 사이사이 좁다란 길을 통해 쏜살같이 달려 나간다. 어지간한 눈썰미로는 경매사들과 중간도매상들의 손가락 움직임도, 활어를 실어 옮기는 이들의 손놀림도 놓치기 십상이다.

시장 곳곳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상인들 뿐 아니라 가족들을 위해 새벽잠을 쫓아가며 도매시장을 찾은 주부들의 모습도 간간히 눈에 띈다. 시장을 한 바퀴 돈 이들의 손에는 너나할 것 없이 회며 매운탕거리 등이 두둑이 들려 있다.

새벽하늘은 여전히 어둑어둑하지만, 시장 안에서는 해산물들을 밝히고 있는 불빛에 눈이 부실 정도다. 가을이 왔다고 외치듯 팔딱대는 전어와 꽃게 등이 판매장 수조마다 새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 365일 활짝 열린 곳

한가위 즈음이면 각 재래시장들은 사려는 이들과 팔려는 이들이 한데 모여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그 북새통 속에 흥정을 붙이는 거간도 덩달아 흥이 났고, 장바구니를 다 채우고도 이웃들과 담소를 나누느라 해지는 줄 모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재래시장의 모습은 점점 더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가는 듯해 아쉬움 또한 크다.

늘 북적이던 노량진수산시장도 올 한가위에는 예년과 사뭇 다른 명절 치레를 했다. 일본 원전 방사능 오염수 유출 사건으로 인해 시장을 찾는 이들의 수가 어림잡아도 절반쯤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오염수 유출 사건은 노량진 뿐 아니라 국내 모든 수산시장에 내리꽂힌 직격탄과도 같았다. 특히 일본산 생태를 취급하는 판매상은 울며 겨자 먹기로 문을 닫고 있었다.

경매 량도 도소매 거래량도 눈에 띄게 줄긴 했지만, 이곳 수산시장을 찾는 소비자들은 해산물 원산지가 어디인지 굳이 묻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동안 상인들이 의기투합해 원산지 표기는 물론 1g의 무게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판매하며 쌓아온 신뢰 덕분이다. 그러고 보니 다른 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자율형 대형 저울이 마련된 곳도 바로 노량진수산시장이다.

예년에 비해 아쉬움이 컸던 명절대목이었지만, 그래도 이곳의 불은 오가는 이들을 여전히 밝게 비춰주고 있다.

■ 해산물 달인들의 집합소

이곳 상인들 대부분은 평균 경력 20~30여 년의 시장 터줏대감들이다.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온 이들이기도 하다. 노량진수산시장에 없는 해산물은 국내에 없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해산물들이 모이는 곳인 만큼, 해산물을 다루는 솜씨 또한 모두 이른바 달인 급이다.

35년째 노량진수산시장을 지키고 있는 조순자(율리아)씨는 “땀 흘려 하는 일은 꼭 정직한 대가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이 장터에서 배웠다”고 말한다. 도매업을 하는 소백수(요셉)씨도 매일같이 이어지는 분주한 일정 속에서도 틈만 나면 봉사활동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고.

도소매 상인들이 썰물처럼 밀려나간 새벽 6시경, 판매장 상인들도 한숨 돌리는 시간이다. 다닥다닥 붙은 판매장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마냥 활기차고 열정적이지만은 않다. 시장 상인들 대부분이 각자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캄캄한 새벽에 나와 오후에 귀가하는 일과로 인해 자식들이 집에 돌아오면 부모들은 늘 잠들어 있었고, 부모들도 눈을 뜨면 잠든 자식들의 얼굴 한번 매만질 틈도 없이, 시장을 향해 잰 걸음을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오늘도 노량진수산시장본당 상인들은 널찍한 앞치마를 두르고 허리끈을 다시 동여맨다. 불경기 아닌 불경기를 보내고 있지만, 365일 시장을 밝히고 있는 불처럼 매일 새로운 희망의 빛을 밝힌다.

◆ 노량진수산시장성당

경매장 면적만 7689㎡, 판매장 9088㎡, 냉동창고도 1만3101㎡에 이르는 대형 수산시장 안에서 가장 고요한 곳은 바로 노량진수산시장성당이다.

노량진수산시장 준본당(주임 김성인 신부, 작은형제회)은 신자상인들이 뜻을 모아 발족한 ‘수산 베드로회’를 디딤돌 삼아 1999년 설립됐다. ‘사귐과 나눔 섬김’의 정신으로 모인 신자상인들은 여느 본당에서와 같이 다양한 신심활동과 신앙교육 등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본당은 지금까지 한 회도 거르지 않고 예비신자교리반을 운영하며 노량진수산시장 선교 요람으로 단단한 뿌리를 내렸다.

교적상 신자 수도 220여 명에 이르며, 활동 중인 쁘레시디움도 7개나 된다.

또한 본당 신자들이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 꼽는 것은 이웃돕기이다. 신자들은 예수 부활과 성탄 대축일, 추석 명절 기간이면 시장 가두 모금에 나선다. 이렇게 모은 성금은 장애인복지시설과 노숙자무료급식소 등 20여 개 사회복지 단체 후원에 활용해 이웃상인들에게도 모범이 되고 있다.

본당 조정택(유스티노) 총회장은 “장사를 하다보면 각종 제단체 활동은 물론 미사시간도 맞추기 어려운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만, 신자상인들 모두가 한뜻으로 하느님께서 채워주실 것을 믿으며 더욱 성실하게 신앙생활과 봉사활동에 힘을 싣고 있다”고 전했다.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