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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모 신부의 아름다운 성화 아름다운 인생 (62) 수서동성당‘탕자의 귀가’

정웅모 신부(서울 장안동본당 주임)
입력일 2013-09-03 수정일 2013-09-03 발행일 2013-09-08 제 2861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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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연민의 정으로 우리를 대하신다
얼굴 맞대고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 눈에 사랑 용서 가득
어버이 같이 항상 안아주시는, 하느님의 부성 모성 함께 표현
아버지의 품 안에서 비로소 따뜻한 사랑을 발견한 아들은 평화로운 표정을 짓는다. 아들의 온몸을 감싼 붉은 옷은 그가 이미 아버지의 사랑 안에 물들어 있음을 드러낸다.
유리화가 최영심의 ‘탕자의 귀가’는 수서동성당의 고해소에 장식돼 있다. 루카 복음(15,11-32)에 나오는 ‘탕자의 귀가’는 세계의 많은 화가가 즐겨 그림으로 표현했다. 아버지는 돌아온 탕자를 온몸으로 끌어안기 위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다. 그 앞에 무릎을 꿇은 아들은 양팔을 내밀어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고 있다. 얼굴을 맞대고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는 사랑과 용서가 가득하다.

아버지의 품 안에서 비로소 따뜻한 사랑을 발견한 아들은 평화로운 표정을 짓는다. 아들의 온몸을 감싼 붉은 옷은 그가 이미 아버지의 사랑 안에 물들어 있음을 드러낸다.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은총의 햇살이 이들을 감싸준다. 아버지가 아들을 끌어안은 모습은 어머니가 아기를 품은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하느님께서 지닌 부성과 모성을 함께 표현했다. 하느님은 우리를 어버이와 같은 마음으로 항상 안아주시는 분임을 알려준다.

탕자와 아버지가 만나는 장면 아래에는 삽을 짚은 젊은이가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다. 큰아들인 그는 이들이 만나는 시간에 들에 나가 일을 하던 중이었다. 그는 방탕한 동생을 너무나 쉽게 용서해 주시는 아버지의 처신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나 그도 머지않아 아버지의 큰 사랑 안에서 머물게 될 것이다.

이 비유에 나오는 선한 아버지는 회개하는 죄인들을 반기시는 하느님 아빠의 표상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를 아시기 때문에 연민의 정으로 우리를 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못을 뉘우치기만 하면 기꺼이 용서하시는 하느님이시다.

수서동성당의 ‘탕자의 귀가’는 고해소의 사제석 내부 유리창에 장식돼 있다. 같은 성당의 반대편 고해소에는 동일한 작가의 ‘착한 목자’ 유리화가 꾸며져 있다. 이 작품들이 사제석 안에 있기 때문에 신자들은 이처럼 아름다운 유리화를 직접 볼 수 없다. 그러나 고해성사가 없을 때 사제석 문을 열면 이 작품이 바로 눈앞에 다가온다. 탕자의 귀가를 반기신 아버지처럼, 길 잃은 양을 찾는 목자처럼 하느님께서도 회개하는 죄인들을 늘 반기시면서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올여름에 장안동성당에서는 소성당 보수·보강 및 구조 변경 공사를 했다. 10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소성당은 건립된 지 30여 년이 됐고 반지하에 위치해 있다. 신자들에게 더욱 안전하고 편리하며, 쾌적하고 아름다운 공간을 제공해 주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며 두 달간 공사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곳 가운데 하나가 고해소였다. 소성당이 좁은 곳이지만 고해성사의 중요성을 생각하여 기존 성당의 고해소보다도 두 배 정도로 공간을 넓게 확보했다. 고해소를 외부 창문 쪽으로 설치하여 신자석과 사제석 모두 자연 환기가 될 수 있게 했다. 또한 연세 드신 분들이 쉽게 고해소를 드나들 수 있도록 고해소 문턱을 없앴다. 신자들은 고해소에 마련된 의자에 앉거나 혹은 무릎을 꿇고서 성사를 볼 수 있게 했다. 사제석도 넓게 만들어 편안한 느낌을 갖도록 해줬다.

소성당의 새 고해소를 본 신자들은 넓고 밝은 모습에 신기해하면서 놀라워했다. 신자들의 머릿속에 새겨진 고해소-비좁고 답답하며, 어둡고 칙칙한 모습-와는 너무나 대조적이기 때문이었다. 소성당의 고해소는 넓고 시원하며, 밝고 산뜻한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소성당의 고해소를 구경한 할머니 한 분은 “신부님!, 앞으로는 더 많은 지(죄)를 지어 더 자주 고해성사를 보고 싶어유(싶어요)!”하며 미소 지으셨다.

최영심(1946~ ), ‘탕자의 귀가’, 유리화, 1996년, 수서동성당, 서울.

정웅모 신부(서울 장안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