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지도 (6) 대구 계산성당·관덕정·경상감영

우세민 기자 / 사진 박원희 기자
입력일 2013-09-03 수정일 2013-09-03 발행일 2013-09-08 제 2861호 1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박해 딛고 일어선 신앙 … 그 정신 따른 평신도의 자취들 …

이윤일 성인 등 수 많은 교우 순교의 칼 받았던 ‘관덕정’
혹독한 고문현장 ‘감옥터’는 시민공원 본당으로 변해
주교좌 ‘계산성당’, 실천하는 삶 살았던 신앙인들 흔적 역력
대구대교구 계산주교좌성당 전경.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고딕 양식 성당으로, 사적 제290호로 지정된 유서 깊은 문화재다.
■ 여정

지하철2호선 반월당역 → 관덕정 순교기념관 → 경상감영공원 → 대안성당 → 계산주교좌성당

한국교회는 평신도의 순교정신으로 세운, 전 세계 어디에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역사를 자랑한다. 조선교구에 이어 두 번째로 설정된 대구대교구에도 열심한 신자들의 신앙활동 뿌리는 순교성인들의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대구의 중심, 반월당에 서면 도보로 멀지 않은 곳에 두 곳의 순교성지와 대구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을 순례할 수 있다. 박해를 이겨내고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신앙을 지킨 선조들의 순교현장, 그리고 그 정신을 기도와 노력으로 이어온 평신도들의 실천적 신앙 증거들이 곳곳에 남겨져 있다.

■ 관덕정 순교기념관

대구대교구 관덕정 순교기념관(관장 여영환 신부, 대구시 중구 남산2동 938-19)은 반월당에 있는 유명 백화점들 건너편(지하철 2호선 반월당역 19번 출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한옥 누각을 이고 있는 건물의 계단을 오르면 대구대교구 제2주보 이윤일 요한(1815~1867) 성인 동상이 순례자들을 반긴다.

이곳은 을해·정해·병인박해를 거치면서 많은 교우들이 참수된 대표적인 순교성지다. 한국천주교 창설 200주년을 맞아 대구대교구가 기념사업과 성지개발을 목표로 지었으며, 1991년 5월 개관했다.

병인박해 순교자 이윤일 요한은 문경 여우목에서 온화한 성품과 독실한 신앙으로 신자들을 이끈 공소회장이었다. 1866년 11월 문경관아에 체포된 성인은 상주감영에서 문초를 받던 중에도 당당하였고,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성교를 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아니 할 수 있습니까?”라고 대답했으며, 교우들 중에 배교하려는 이가 있으면 흔들리지 않도록 열심히 권면했다고 한다. 성인은 이후 경상감영으로 이송돼 1867년 1월 21일 관덕당(현 관덕정 순교기념관) 형장에서 52세 나이로 참수 순교했다.

이곳은 이윤일 성인 이외에도 시복시성을 추진 중인 ‘하느님의 종’ 124위 가운데 김종한 안드레아, 고성대 베드로, 구성열 바르바라, 이시임 안나 등 10위가 참수된 곳이기도 하다.

지하 성당에서 기도를 바치고, 바로 옆 유해전시실로 발길을 돌렸다. 이윤일 성인을 비롯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성 바오로 사도 등 40여 성인의 유해가 이곳에 봉안돼 있다. 지하 순교 전시실에는 신자들이 현재 시복운동 중인 대구 순교자들에 대해 알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관덕당 형장에서 사라져간 순교자들 모습을 표현한 ‘전통인형으로 빚은 순교사 전시관’, 3층에는 교구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교구 전시실이 흥미롭다. 개관시간은 오전 9시30분~오후 5시20분(월요일 휴관)이며, 화요일 오전 10시, 금요일 오후 3시, 토요일 오후 5시 미사가 봉헌된다(※문의 053-254-0151).

■ 경상감영 옥터

반월당에서 종로 거리를 지나 20분 정도 걸었을까. 1.3km 떨어진 곳에 경상감영공원과 대구대교구 대안성당(주임 이상해 신부, 대구시 중구 대안동 31-11)에 멈춰섰다. 지금은 시민공원과 본당 사목장소이지만, 박해시대 때만 해도 천주교 신자들이 경상도 각 지방에서 체포돼 와서 혹독한 문초를 받고 감옥에 갇혔다가, 옥사하거나 관덕당 형장에서 처형당하던 순교현장이다. 경상감영 옥터는 대구 읍성 ‘서아문’ 내 옥골에 있었는데, 현재 대안성당이 그 일대에 속한다.

당시 신자들은 감옥에 갇혔음에도 불구하고 불평 한 마디 없이 화목한 분위기였다고 전해지며, 저녁에는 공동기도를 바쳤다고 한다. ‘하느님의 종’ 124위 가운데 이곳에서 옥사한 순교자는 최봉한 프란치스코, 김시우 알렉시오, 박경화 바오로, 안군심 리카르도 등 7위다.

대안성당에 들어서면 옥터에서 옥사한 순교자들을 기리는 안내 입간판과 죄인들을 고문할 때 쓰는 ‘돌형구’(신자 목에 밧줄을 매고 뒤에서 잡아당겨 질식해 죽게 했던 형구의 일종)에서 당시의 끔찍했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문의 053-252-6249).

■ 계산주교좌성당

발걸음을 돌려 남산동 방향으로 15분을 걸었다. 계산오거리에 못미처 만나게 되는 계산주교좌성당(주임 이상국 신부, 대구시 중구 계산동2가 71-1)은 대구의 첫 본당이자 주교좌성당이며, 사적 제290호로 지정된 유서 깊은 문화재다.

오후 12시, 종소리가 울려퍼진다. 하루 세 번씩 울리는 성당 종소리는 듣는 이의 영혼까지 정화시키는 듯한 아름다움 그 자체다.

잠시 후 성당을 둘러봤다. 미사가 끝난 지 한참 지났지만 신자들의 기도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성당 여기저기에 앉은 신자들이 열심히 기도하며 하느님과 만나고 있었다. 침묵을 지킨 채 성호를 긋고 성당을 둘러봤다.

계산주교좌성당을 자주 찾는다는 이승진(미카엘)씨는 “우리 교구의 주교좌성당이어서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서 이곳에 앉아 기도한다”며 “종소리를 들으면서 기도를 바치면 마음이 고요해진다”고 말했다.

계산주교좌성당은 그 자체가 문화재인 만큼 곳곳에 눈길을 끌만한 성물이 있다. 특히 성전 입구 성수대는 1984년 5월 대구를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직접 축복한 것으로 유명하며, 마당에는 대구 지역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데 평생을 바쳤던 초대 주임 김보록 신부(1853~1922)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대구대교구 본당의 출발지라고도 볼 수 있는 계산본당은 1885년 설립된 ‘대구본당’이 그 전신이다. 김보록 신부를 비롯한 후대 주임신부의 헌신과 선조들의 순교정신을 이어받은 열심한 신자들 노력을 통해 교구 성장의 주추 역할을 했다. 병인박해 때 순교한 삼촌들 영향을 받아 훗날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교구 설정에 큰 공헌을 했던 서상돈 선생을 비롯해 한윤화, 김종학 등 선배 평신도들이 본당 발전을 위해 기울인 자발적인 노력은 후배 신자들에게 오랫동안 귀감이 되고 있다.

아울러 계산본당은 교구 평신도사도직의 시작점이다. 1912년 평신도사도직을 수행할 남방천주공교 ‘명도회’가 발족해 같은 해 ‘교회주보’가 창간되기도 했으며, 1927년에는 남방천주교 청년회에서 ‘천주교회보’(현 가톨릭신문)를 창간해 활발한 청년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또한 1934년에는 현재 사목협의회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대구 주교좌본당 평의회가 창설됐다.

올해로 설립 127주년을 맞은 계산본당에는 2600여 세대 5600여 명의 신자들이 ‘주교좌성당 신자’라는 자부심으로 꾸준하게 지역 복음화에 힘쓰고 있다(※문의 053-254-2300).

성당을 나오면서 과연 신앙선조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후손들에게 어떤 신앙을 물려줄 수 있을까.

문득 김보록 신부 흉상에 새겨진 글귀가 입가에 맴돈다. “세상의 부는 썩어없어지고, 영화는 물거품처럼 사라지지만 복음의 진리는 영원하다.”
대구본당(현 계산본당) 초대 주임 김보록 신부의 흉상.
성전 입구 성수대. 1984년 5월 대구를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직접 축복한 것으로 유명하다.
관덕정 순교기념관의 ‘전통인형으로 빚은 순교사 전시관’. 이윤일 요한 성인이 관덕정 형장에서 처형당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대안성당 - 대구대교구 대안성당 전경. 박해시대 때 대구 읍성 ‘서아문’ 내 옥골에 있던 경상감영 옥터가 있던 자리다.
관덕정 순교기념관 - 관덕정 순교기념관 전경. 대구대교구가 한국천주교 창설 200주년 기념사업으로 지었으며, 1991년 5월 개관했다.

우세민 기자 / 사진 박원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