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살맛나는 세상 시장사람 이야기 (4) 전주 남부시장

김진영 기자
입력일 2013-08-20 수정일 2013-08-20 발행일 2013-08-25 제 2859호 1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느림의 미학 속 ‘추억’에 젖고 ‘신선함’에 물들고
60~70년대 호남 최대 물류집산 시장으로 호황
현재 800여 점포 활동 … ‘청년몰’ 새로운 동력원 부상
“시장보다 관광기능 커졌지만 평생 동반자 못 떠나”
유유히 흐르는 전주천만큼이나 여유가 넘치는 이곳은 전주 남부시장이다. 방앗간에서 풍겨져오는 고소한 냄새가 땡볕에 지친 몸에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뻥튀기 소리와 ‘아이스께끼’를 외치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정겹게 들린다. 시장에 있는 25년 전통 커피전문점에서는 식혜, 미숫가루, 국수를 팔고 있어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만든다.

현재 남부시장은 800여 점포에 1200여 명의 인원이 생업에 종사하고 채소, 과일, 음식, 건어물, 가구, 주단, 잡화 등 다양한 물품들을 팔고 있다. 2003년부터 상인회가 중심이 돼 현대화 사업을 진행해 비가림 시설을 설치하고, 점포 구조 변경을 통해 쾌적하고 깨끗한 쇼핑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주차도 편리하다. 전주천 옆에 있는 천변주차장과 전동성당 길 건너편에 있는 공영주차장은 이용료도 저렴할 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물건을 살 경우 할인도 해준다.

■ 젊은이들이 꾸미는 시장

시장 곳곳에서 주홍색 옷을 입은 젊은이들이 눈에 띤다. 분주하게 움직이며 곳곳을 청소하고, 시장 상인들을 찾아가 인사하고, 벽면을 깨끗이 정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부채를 나눠주며 재래시장을 살리자고 말하는 젊은이들이 있기에 남부시장에는 활기가 넘친다. 1년 넘게 봉사를 해온 청년은 “젊은 세대들이 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보자는 생각으로 봉사를 시작했다”며 “저희가 하는 일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일은 아니지만 큰 효과를 창출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남부시장의 새로운 동력원으로 떠오른 곳은 바로 ‘청년몰’이다. 청년몰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전주시가 침체된 전통시장을 살리고 청년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로, 폐허처럼 방치된 남부시장 6동 2층을 개성 넘치는 점포가 가득한 장소로 변화시켰다.

파리주걱과 끈끈이풀 같은 식충식물을 파는 가게부터 일본에서 직접 배워온 오꼬노미야끼를 파는 집, 수제 쿠키 등 다양한 점포들은 시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신선함을 선물해주고 있다. 또한 젊음의 열기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행사들도 열린다.

특히 여름 휴가철을 맞아 전주를 찾은 관광객들을 위해 기획된 특별 야시장에서는 밴드 공연, 빈 점포를 활용한 영화 상영, 사진 전시회 등이 펼쳐져 2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장을 찾아왔다. 야시장은 앞으로도 매월 첫째·셋째 주 토요일에 열릴 예정이며, 둘째·넷째 주에는 상인들의 아카펠라 소모임, 요리, 식물 관찰 등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될 계획이다.

전주 남부시장 2층에 있는 청년몰에서는 식충식물을 비롯한 개성있는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전주 남부시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봉사자들이 무료로 음료를 나눠주고 있다.

■ 대를 잇는 맛

남부시장을 천천히 걷다보면 고풍스런 제기나 죽공예품 같은 멋진 물건들을 만날 수도 있지만 가장 자주 만나게 되는 건 먹거리들이다. 건어물, 튀밥, 피순대 그리고 남부시장하면 빼놓을 수 없는 콩나물국밥까지 다양한 먹거리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점심시간이 아직 멀었지만 가게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청년몰 입구 바로 옆에는 어머니부터 이어온 맛을 자랑하는 콩나물국밥집이 있다. 김현아(프란치스카·44·전주전동본당)씨가 운영하는 콩나물국밥집에는 어머니 때부터 온 단골손님들이 꾸준히 찾아오고 있다.

“단골손님들과 엄마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곤 해요. 새벽 경매가 없어져서 손님이 많이 줄었지만 단골손님들 덕분에 장사를 계속하고 있죠.”

김씨의 콩나물국밥집은 오전 6시에 문을 열고 오후 3시에 문을 닫는다. 김씨뿐만 아니라 시장에 있는 많은 식당들이 같은 시간에 문을 열고 닫는다. 전동본당의 새벽미사가 오전 5시30분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손님이 오자 콩나물국밥을 뚝딱 내온다. 수란에 속을 달래고 시원한 국물을 마시니 숙취에 그만일 듯하다. 짧은 점심시간에도 멀리서 찾아오는 단골들이 있어 힘낼 수 있다는 김씨는 찾아와 준 손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김현아(프란치스카)씨.

■ 평생을 함께해온 동반자

남부시장의 전성기는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로 추정된다. 당시 남부시장은 호남 최대의 물류집산 시장으로 물건을 실은 대형 화물차의 왕래가 많았으며, 부산과 마산 등지에서 쌀을 사기 위해 와, 전국의 쌀 시세가 남부시장에서 결정될 정도였다.

“그 때 당시에는 비가림막이 없어서 다들 천막을 치고 장사를 했지. 새벽 미사 참례하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새벽에도 성당에 사람들이 참 많았어.”

40년 넘게 남부시장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신홍균(요한·75·전주전동본당)씨는 좌판을 열었던 당시부터 지금까지 남부시장을 지켜본 산 증인이다. 이제는 남부시장이 시장의 기능보다는 관광지가 돼 먹거리 외에는 잘 팔리지 않지만 평생을 함께해 온 시장을 떠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안 맞으면 바꿔가요. 물건은 마음에 맞아야 오래 써”

35년 전부터 남부시장에서 죽공예품을 팔아온 이정자(요안나·66·전주전동본당)씨는 넉넉한 웃음으로 손님들을 맞는다. 얼마든지 보고 바꿔가고 싶으면 바꿔가라 말하는 이씨를 보면 대형마트에서 만날 수 없는 ‘정’을 느낄 수 있다. 시장 곳곳에 붙어 있는 ‘온누리 상품권 환영’이라는 글들을 보면 시장 스스로가 살기 위해 변화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남부시장에서 ‘느림의 미학’을 느낀 사람들은 다시 시장을 찾는다. 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을 찍는 사람들과 가족 단위로 서로의 손을 꼭 잡으며 다니는 사람들도 자주 볼 수 있다. 주변에는 전주천과 싸전다리, 초록바위, 전동성당, 풍남문, 한옥마을 등 가볼 곳이 많고, 영양 돌솥밥, 순대국밥, 팥빙수, 막걸리 등 먹을 것도 많다. 시장은 어른들이 추억에 젖고 청년들은 신선함에 물들 수 있는 장소다.

남부시장을 찾은 가족 관광객이 커피전문점에서 잠시 쉬고 있다.
남부시장에서 35년 동안 죽공예품을 팔고 있는 이정자(요안나)씨가 손님에게 상품 설명을 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