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농민주일 특별기획] 농사 짓는 사제, 전주교구 최종수 신부

김진영 기자
입력일 2013-07-16 수정일 2013-07-16 발행일 2013-07-21 제 2855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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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바쳐 생명 일구는 농민 … “농부 돕는 것은 하느님 돕는 것 ”
2009년 시작된 ‘만나생태마을’, 블루베리·콩·야콘·구절초 등 재배
농약·제초제 등 화학비료 일체 금지 … 여전히 유기농 농법 힘들어
교회가 농민 위해 할 일 “안정적으로 농사 지을 수 있도록 돕는것”
최종수 신부가 만나생태마을 공동체와 함께 재배 중인 블루베리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수확되는 블루베리는 시중의 블루베리 보다 더 굵다.
자동차 창문을 타고 넘어오는 햇볕에도 팔은 익어간다. 차에서 내리니 후끈한 열기가 올라온다.

전북 진안군 부귀면 거석리 323에 위치한 만나생태마을 공동체에 도착하니 농민들은 한창 블루베리 수확에 열중하고 있다. 까맣게 잘 익은 블루베리를 보고 있으니, 밀짚모자를 쓰고 목에 수건을 두른 농민이 걸어 나왔다. 전주교구 농촌사목 담당 최종수 신부다. 가만히 서있어도 온 몸에서 땀이 흐르지만, 햇볕에 그을리는 것을 막기 위해 긴팔 긴바지를 입고 한 손에는 수확한 블루베리를 담은 바구니를 들고 나오는 모습이 영락없는 농민이다.

가끔 지나가는 구름이 만들어주는 그늘과 미지근한 바람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 한여름의 뙤약볕 속에서 묵묵히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 바로 그 농민이다.

■ 씨 뿌리기

만나생태마을이 2009년 11월 자리를 잡고 처음 키운 작물은 포도였다. 그러나 고산지대에 위치해 한 겨울이 되자 포도나무의 절반 이상이 얼어 죽었다. 포도를 포기하고 땅을 갈아엎기로 했지만 중장비가 들어오지 못해 공동체 구성원들의 힘만으로 해결해야 했다.

“평생 땅 파먹고 살라는 말이 그렇게 심한 욕인지 몰랐어요. 지금 생각해도 땅 파는 건 정말 너무 힘들어요.”

고됐던 땅파기를 생각하니 최 신부의 얼굴이 굳어진다. 사실 많은 귀농인들이 겪는 어려움이다. 인터넷이나 책으로만 농사를 공부하고 온 초보 농사꾼들에게 알아야 할 것들은 너무 많다. 주변 이웃들에게 배워야 할 것들이 많지만 새로운 이웃들은 초보 농사꾼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저도 여기 들어올 때 주변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반대를 했어요. 낯선 이를 경계하죠. 귀농하는 사람들의 삶이 기존 농민들이 보시기에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농민들에게 농사는 먹고 사는 것이 달려있는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귀농인들이 하는 농사는 그저 시간을 때우거나 세월을 보내기 위해 심심풀이로 하는 일처럼 보일 수 있다. 절박한 사람이 절박하지 않은 사람을 보았을 때 느끼는 감정이라 할 수 있겠다. 해답은 귀농인들이 인내하고 선배 농민들을 존중해주고 배우려고 노력하는 태도에 달렸다.

■ 가꾸기

농사를 시작한지 3년이 넘었다. 블루베리 외에도 콩, 야콘, 인디언감자, 고구마, 참깨, 들깨, 구절초 등을 다양한 작물이 자라고 있다. 농약과 제초제는 물론 화학비료도 일절 쓰지 않는다. 블루베리는 쌀겨와 EM, 효소 등을 거름으로 주고, 배추와 고추 같이 공동체가 먹을 채소는 생태화장실을 이용한 유기거름으로 키우고 있다. 기생충이야 약을 먹으면 그만이지만 화학물질이 우리 몸에 들어오는 것은 두렵기 때문이다.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고 블루베리를 키웠는데 오히려 다른 곳보다 열매가 훨씬 크고 좋아요. 다만 시중에 나오는 블루베리보다 비싼 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화학비료에 포함된 질산염이 우리 몸속으로 들어가면 암을 유발하는 물질을 만든다고 하는데 그런 불안함을 안고 사는 것보다는 싸다고 할 수 있죠.”

천연 살충제의 개발로 해충에 대한 부담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유기농은 힘들다. 끊임없는 풀과의 싸움은 지긋지긋할 정도다. 돌아보면 새 풀이 나있고, 돌아보면 새 풀이 나있고, 머리가 돌 지경이다.

■ 기다리기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한여름의 뜨거운 햇볕과 적당한 비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다. 한 낮의 뜨거운 열기를 피해 모인 만나생태마을 공동체 구성원들은 미사를 봉헌했다.

“제가 농민으로 살지 않을 때는 일주일에 2시간을 못 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생활해보니 농사에는 때가 있다는 말을 실감하게 됐죠. 미사 시간이 씨 뿌리는 시간과 겹치면 씨 뿌리러 가야해요. 일 년 농사가 바로 그 순간에 달려있거든요. 나중으로 미뤘다가 날씨가 좋지 않으면 일 년 농사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어요.”

농민들에게 하루는 전쟁 같다. 오전 5시에 일어나 함께 큰절 기도를 바치면서 하루를 시작한 만나생태마을 공동체는 한 시간 정도 일하고 난 후 아침을 먹고 점심 때까지 일을 한다. 점심 먹고 잠시 쉰 후에 미사를 봉헌하고 오후 7시까지 일을 한다. 저녁 식사 후에는 잠시 자유 시간을 갖거나 다음 날을 준비한다. 하루 종일 힘들게 일했으니 푹 잘 거 같지만 너무 고단하게 일을 하면 오히려 잠을 못 이루고 끙끙 앓을 때가 많다고 한다.

■ 거두기

한창 블루베리 수확 시기를 맞은 만나생태마을 공동체는 정신없이 바쁘다. 오전에는 블루베리 수확과 선별 작업을, 오후에는 저온 창고에서 겨울옷 입고 스티로폼 상자에 블루베리를 담아 택배로 보내는 일을 해야 한다. 택배를 보내는 오후 4시~5시30분까지는 정말 제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바쁘다. 농사는 때가 있다. 쉬고 싶다고 쉬고, 일하고 싶다고 일할 수 있는게 아니다.

“이곳에서 농사를 배우면서 너무나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어요. 밀농사를 짓는 농부가 없으면 성체가 되는 제병을 만들 수 없고, 포도농사를 짓는 농부가 없으면 성혈이 될 포도주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이죠. 너무나도 거룩한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농부들은요.”

자신이 생각하기에 농민들은 사제인 자신보다 더 거룩하게 살고 있다고 말하던 최 신부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하느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분들이 바로 농민들인데, 자기 생명을 바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가장 거룩한 일을 하시는 분들인데 농민들 스스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서다.

■ 판매하기

“저는 그나마 사제니까 재배한 것들을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 판매하는 것이 가능해요. 그러나 많은 농민들이 애써서 가꾼 작물들을 판매처가 없어서 팔지 못하거나 제 값도 못 받고 넘기고 있어요. 아픈 무릎을 움켜쥐며, 키워온 작물들인데 말이죠.”

25년 전인 1988년 12월말에서 다음 해 2월초까지 농민들은 정부에 값이 폭락한 고추를 수매해달라고 시위를 했다. 비닐봉투로 만든 비옷을 입고 겨울비를 맞으며 처마 밑에서 떨어지는 빗물과 함께 콩나물국과 묵은지로 허기를 달래던 농민들의 사정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부는 대기업만을 위한 FTA를 준비하고 있어요. 식량 값이 폭등하고 있는 상황에서 농민과 어민들을 다 사지로 내몰면서 버는 돈이 과연 우리에게 이득이 될까요? 농민들이 다 죽은 이후에야 농민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싶은 걸까요?”

최 신부는 교회가 농민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 말한다. 아울러 노동의 가치의 소중함을 깨닫고 함께 일하고, 함께 기도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가 넘쳐나는 시대에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이 바로 세상을 이긴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삶이다.

“저는 농사를 짓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농사를 배우기 위해, 그리고 제가 서품 받을 때 선택한,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루카 4,18)라는 말씀을 따라 살려고 온 것이지요. 우리농 매장에서 상품 하나를 사는 것은 단순히 농부를 돕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돕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물건을 사주셨으면 해요.”

아침마다 바치는 큰절기도. “우주를 지으신 하느님 감사합니다”로 시작해 “내 모든 것을 바쳐 자연과 세상, 이웃과 가족을 사랑하겠다”는 다짐으로 끝난다.
날이 가장 뜨거울 때 봉헌하는 미사. 육체적인 쉼뿐만 아니라 영혼이 힘을 얻는 시간이다.

김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