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현대 스테인드글라스 이야기 (15) 독일 로이테스도르프 요한형제회 경당 스테인드글라스(1965)

정수경(가타리나·인천가톨릭대학교 초빙교수)
입력일 2013-07-16 수정일 2013-07-16 발행일 2013-07-21 제 2855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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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색 배경 위 자유로운 선들 … 깊은 명상에로
독일 라인 지역에 위치한 로이테스도르프(Leutesdorf)의 요한형제회(Johannesbundes) 경당 스테인드글라스는 모노크롬의 색조와 자유로운 선의 흐름에 대한 요하네스 슈라이터의 탐구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 중 하나이다. 경당 전면을 에워싼 대규모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인 이 작품 역시 슈라이터의 드로잉과 회화작업에서 비롯되고 있다. 특히 다양한 그의 라인 드로잉들은 작가가 지닌 의식의 흐름과 감정 상태를 담은 살아있는 선으로 제시되고 있다. 슈라이터는 언제 어디서나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당시 그의 감정 상태에 따른 선들을 그려나간다. 그리고 그의 선들에는 각기 “즐거운 선”, “화난 선”, “예민한 선”, “겸손한 선” 등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 그리고 그의 자유로운 라인 드로잉 작업이 실제 건축 공간에 확대된 스케일로 잘 표현된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오늘 소개할 요한형제회 경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다.

슈라이터는 유리로 되어 있는 경당의 투명한 세 벽면에 전체적으로 푸른 색조로 배경을 처리하고 그의 라인드로잉을 건축적 공간에 확대하여 옮겨 그렸다. 화면은 크게 세 개의 층위로 나누어져 있다. 첫째는 짙은 푸른색의 배경 그리고 그 위에 보다 밝은 톤으로 이루어진 색면,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공간의 층위를 넘나들며 존재하고 있는 굵고 가는 선들이다. 이 작업이 진행된 시기였던 1960년대에 슈라이터는 당시 기존의 대형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에서 보여주었던 정형화된 태도들, 다시 말해서 성경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에 집중하여 미학적인 측면이 상대적으로 축소되는 상황에서 탈피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다른 예술분야와 동등하게 고려될 수 있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새로운 미학적 원리를 재정립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순수예술로서의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한 접근과 이해는 슈라이터를 포함하여 1960~70년대 새로운 현대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들의 공통된 화두이기도 했다.

요한형제회 경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한 폭의 추상화와 같은 모습으로 제시되고 있다. 구체적인 사건의 묘사나 그리스도교의 상징이 재현되어 있지 않고 오직 두세 가지 톤의 푸른색 배경과 그 위를 떠다니는 자유로운 선들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작품 앞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깊은 종교적 명상과 내적 성찰을 이룰 수 있는 요소들을 마주할 수 있다.

푸른색은 하늘이자 물이고 또 성모님의 색이기도 하다. 보다 짙은 푸른 색 위로 떠오르듯 놓인 밝은 톤의 또 다른 푸른색은 태초의 어둠에서 빛이 탄생하는 순간을 형상화 한 것 같기도 하고, 방주로서 존재하는 경당 밖으로 내다보인 홍수의 물살로 뒤덮인 혼란스러운 세상의 모습일 수도 있다. 엉킨 실타래와 같이 무질서해 보이는 선들은 카오스 상태를 표현한 것이기도 하고 성모 마리아의 푸른색 망토에 난 생채기들, 즉 성모님의 고통을 표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듯 슈라이터의 요한형제회 경당 스테인드글라스는 작가의 종교적 감성과 예술성을 투영한 순수 예술로서의 작품을 제시고 있지만, 우리에게 무엇을 보고 읽어내라고 요구하고 있지 않다. 즉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서 자유로이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도록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요하네스 슈라이터의 작품은 건축공간과의 조화를 다각도로 고려하면서도 작가 자신의 작업 색깔을 잃지 않은 순수예술로서 거듭나게 된 현대 스테인드글라스의 새로운 모습과 위상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요하네스 슈라이터, 요한형제회 경당 스테인드글라스, 1965, 로이테스도르프, 독일.

정수경(가타리나·인천가톨릭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