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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주일 특집] ‘최초’ 기록 교황들

이지연 기자
입력일 2013-06-26 수정일 2013-06-26 발행일 2013-06-30 제 2852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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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교회 영적 아버지 ‘비바 파파’(Viva Papa)
30일은 교황을 위해 기도하고, 교황과 일치를 이루는 ‘교황주일’이다. 그리스도를 대신해 하느님의 백성에게 봉사하는 전 세계 교회의 영적 아버지로서 교황은 2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가톨릭교회를 이끌어왔다. 교황주일을 맞아, 초대교황 베드로부터 지난 3월 선출된 교황 프란치스코까지 266명의 교황들 중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교황들을 소개한다.

■ 교회 최초의 교황 성 베드로

제1대 교황인 베드로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다. 갈릴래아 출신으로, 아버지와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고기를 낚는 어부였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아 제자가 된 후 본래 이름인 시몬에서 반석이라는 뜻의 ‘베드로’라는 새로운 이름도 받았으며, 사도단의 대변인이자 으뜸으로 세워졌다.

안티오키아는 물론 소아시아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펼친 베드로는 44년부터 67년까지 로마에 체류했다. 오늘날 역사학자들은 체류 시기를 역사적으로 확인할 길은 없지만 체류 사실에 대해서는 받아들이고 있다. 전승에 따르면 베드로는 네로 황제 치하의 그리스도교 박해시기에 머리가 땅으로 향하는 십자가형을 받아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베드로는 그리스도교에 관한 법률과 ‘하느님 아버지’를 암송하는 규정을 제정했다.

■ 최초의 대교황 레오 1세

제45대 교황 대 레오 1세(440~461년 재위)는 역사상 ‘대교황’ 칭호를 받은 단 두 명의 교황 중 하나다. 그는 로마의 수위권을 확고하게 다지고, 이단을 반박했다. 또한 칼체돈 공의회(451년)를 소집해 단성론을 최종적으로 배척했다. 때문에 베드로좌에 등극한 최초의 실세 교황으로 평가받고 있다. 훈족과 반달족의 침공을 받았을 때도 용감한 태도로 로마를 구출, 시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신뢰를 받았고, 이러한 왕성한 활동으로 레오 1세 교황 이름 앞에는 ‘대’라는 별호가 붙는다.

레오 1세는 서거 후 교황으로서는 최초로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 묘지에 안장됐다.

■ 최초의 수도회 출신 교황 대 그레고리오 1세

또 다른 대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년 재위, 제64대 교황)는 성 베네딕도회 출신으로, 수도자로서 베드로좌에 즉위한 최초의 교황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 그레고리오 1세는 교황령을 새롭게 정리해 가난한 로마 시민을 위해 사용했다. 아울러 이탈리아를 약탈하는 롬바르디족과 휴전을 이뤄냈으며, 영국의 그리스도교화에도 공헌했다.

그레고리오 1세는 광범위한 저술 활동으로 당시 그리스도교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 최초의 사회회칙 발표 교황 성 레오 13세

사회문제를 다룬 최초의 가톨릭 사회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1891년)를 발표한 제256대 교황 레오 13세(1878~1903년 재위)는 가톨릭교회의 위상을 전 세계에 드높였다. 「노동헌장」이라고도 불리는 이 회칙을 통해 교회가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모색할 계기를 마련했다. 교회 일치에도 깊은 관심을 가진 레오 13세는 1896년 관련 회칙을 발표했으며, 제1차 바티칸공의회로부터 이어오던 개혁 작업을 계속했다. 성경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한 그는 교황청에 성서위원회를 구성했으며, 학문 연구자들을 격려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교회와 현대 인류의 화해를 이끈 레오 13세는 19세기 교황 중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교황으로 평가받고 있다.

■ 최초의 공산국가 출신 교황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제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년 재위) 이름 앞에는 유난히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최초의 폴란드인 교황으로, 하드리아노 6세 이후 456년 만에 선출된 비(非)이탈리아 출신 교황이다. 재임기간 중 가장 많은 해외 사목방문을 했으며, 우리나라는 두 차례 방문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평화와 인권, 자유 등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와 기꺼이 대면하며, 세계의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 사회 정의뿐 아니라 가정생활, 현대의 교리교육, 교회의 사명과 관련된 화해와 참회 등 광범위한 주제로 교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즉위 1년 뒤인 1979년에는 교황사상 최초로 당시 카터 미국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난민구호·인권보호 및 기아방지를 위한 국제적 지원의 필요성에 합의했다.

■ 최초의 남반구 출신 교황 프란치스코

소박하고 서민적인 모습의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2013~현재)는 선출과 동시에 전 세계의 관심을 받았다. 역사상 최초로 남반구 출신 교황이자 예수회 소속으로는 첫 교황으로서 200년 만에 처음 탄생한 수도회 소속 교황이기도 했다. 또한 1282년 만에 선출된 첫 비유럽권 교황이다.

즉위 이후 파격적인 행보를 걷고 있는 교황 프란치스코는 부활대축일을 앞둔 성 목요일에 한 소년원에서 재소자 12명의 발을 씻어주고 입을 맞췄다. 재소자 중에는 여성과 그리스 정교회, 이슬람 교도도 포함돼 있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교황이 여성과 무슬림에게 세족례를 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초’라는 수식어를 하나 더 얻게 됐다.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