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정웅모 신부의 아름다운 성화 아름다운 인생 (57) 영국 코번트리 대성당 ‘세례대의 유리화’

정웅모 신부(서울 장안동본당 주임)
입력일 2013-06-18 수정일 2013-06-18 발행일 2013-06-23 제 2851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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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큰 은총이 내 작은 몸을 감싸 주었을 것이다”
세례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와의 영적 일치 표현
황금빛 원형 장식은 하느님 영원한 영광 상징
세례대 창문을 장식하고 있는 이 거대한 유리화는 코번트리 대성당(Coventry Cathedral) 안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영국의 산업 도시인 코번트리에는 약 1000년 전에 건립된 성당이 있었지만,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때 폭파돼 현재는 그 잔해만 앙상하게 남아있다. 그곳의 신자들은 전쟁의 참혹한 상처를 기억하고 평화를 증진하기 위해 폭파된 옛 성당의 잔해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그 옆에 현대식 성당을 신축했다. 1956년부터 1962년까지 지어진 새 성당 안에는 타피스트리로 제작한 예수의 제단화와 게세마니 동산을 표현한 경당 등 여러 교회 미술품이 눈길을 끌고 있다.

존 파이프(John Piper) ‘세례대의 유리화’, 1960년경, 코번트리 대성당, 코번트리, 영국.
이 유리화는 그리스도교의 입문성사인 세례성사가 거행되는 세례대 주변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됐다. 뒤에 있는 황금빛 원형 장식은 하느님의 영원한 영광을 상징하며, 그분의 영광이 온 세상 곳곳에 퍼져 아름답게 물들인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유리화 아래에 있는 투박한 세례대는 아기 예수가 태어난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에서 가져온 돌로 제작됐다. 이곳에서 거행되는 세례를 통하여 새 영세자들이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일치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참혹한 전쟁으로 말미암아 사랑하는 가족과 아름다운 성당을 잃어버린 코번트리 신자들은 새 성당을 신축하면서 옛 성당 포함하여 새 성당 곳곳에 그 흔적을 보존하며 기억하고 있다. 새 성당 지하에는 이 성당의 장구한 역사와 전쟁의 상처를 볼 수 있는 작은 박물관을 만들어 코번트리 대성당만이 간직한 지난날의 영광과 아픔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코번트리 대성당 세례대.
지난 주일(6월 16일), 우리 본당에서는 11시 교중미사 중에 세례성사를 거행했다. 48명의 예비신자들이 드디어 세례성사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됐다. 본당에서는 매년 두 차례에 걸쳐서 성인들을 위한 세례성사가 베풀어지고 유아들을 위한 세례성사는 수시로 거행된다.

신자들에게 세례성사를 집전할 때면 오래전에 방문했던 코번트리 대성당의 세례대와 유리화가 생각나곤 한다. 나는 그 성당의 아름다운 세례대와 그곳을 장식한 유리화 아래에서 오랜 시간 머문 적이 있다. 텅 빈 성당과 텅 빈 세례대 앞에서 내가 받았던 지난날의 세례 때를 회상했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 유아세례를 받은 나는 세례성사와 관련된 아무런 추억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날 이 유리화를 바라보면서 유아세례의 날에 하느님의 큰 은총이 내 작은 몸을 감싸 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성당에는 고정적인 세례대가 없기 때문에 제단 앞에 마련된 임시 세례대에서 세례식을 거행한다. 우리 성당에도 아름다운 세례대가 있다면 세례성사는 더욱 품위 있고 경건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예비신자들도 세례대를 바라보며 세례성사를 준비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미 세례를 받은 신자들도 세례대를 오가면서 자신이 받았던 세례성사를 회상하며 신자로서의 삶을 충실히 가꾸고 있는지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코번트리 대성당에 있는 것과 같은 아름다운 세례대가 우리 성당 안에도 설치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 예비신자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다.

정웅모 신부(서울 장안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