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중국 현대 박해기 - 강제 수용소의 선교사들] (25·끝) 중공치하에서 사상노동개조 수용소의 선교사들

서양자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
입력일 2013-05-21 수정일 2013-05-21 발행일 2013-05-26 제 2847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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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노동 당하며 겨우 형기 마쳐도
‘사상 개조 안됐다’ 석방 안시켜 ‘고초’
청해성 달포손 소금평야.
청해성은 오후 5시부터 7시 사이에 큰 바람이 부는 곳이다. 그곳에는 중국 내 최대 규모의 소금 호수인 청해호를 비롯해 100여 개의 소금 호수가 산재해 있다. 소금 평야와 소금 포장도로도 300km에 이르며, 소금 자원이 넘쳐나, 전 세계 인류가 2000년간 먹을 수 있는 소금이 청해성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의 겨울은 매우 길고 춥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노개영 수인들의 숙소는 보잘것없는 천막이었다. 또 청해성 노개영에는 의무소가 있어도 의사는 없었다.

청해성 노개영 수인들은 염분이 있는 땅을 농지로 바꾸는 일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곳에서도 많은 신부들과 주교까지 강제노동을 하다 선종했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이 노개영에는 신학생들도 강제로 잡혀와 노동을 하다 굶어죽었다. 대신학생 정우량이 선종했을 때에는 그의 시신을 대충 묻어버려 유골이 청해성의 강풍에 날아가 모두 흩어져버렸다.

신자 심다재씨는 공교진행회(公敎進行會) 회원이었는데, 1958년 체포돼 청해성 국영농장 노개영으로 끌려왔다. 심씨는 열악한 환경에서 심한 노동을 하다가 노개영으로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병이 났다. 그러나 수인들은 구호차에도 태워주지 않아 그는 연탄을 운반하던 차를 얻어 타고 병원으로 가서 겨우 주사를 맞긴 했으나 결국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고, 급성 폐렴까지 겹쳐 선종하고 말았다.

한편 중국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많이 먹어 그 소비량이 상당히 많다. 이에 따라 노개영 수인들에게 돼지를 대량으로 사육하도록 부리기도 했다. 어느 주교는 28년 동안 노개영에서 돼지를 키우는 일을 했는데, 공산당들은 그에게 량표(糧票, 식량배급표)를 주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공산당 당원은 주교에게 “너와 네가 먹이는 돼지는 같은 량표다. 너는 곧 돼지이고 돼지가 곧 너이다. 너희들은 피차 구분할 필요가 없다”라며 매우 비인도주의적이고 모욕적인 말을 했다고 한다. 그 주교는 돼지가 먹는 먹이로 배를 채우고, 매일같이 돼지 먹이를 어깨에 져서 나르고 돼지우리를 청소해야 했다. 이런 일은 보통 힘든 노동이 아니었는데, 주교는 너무나 성심 성의껏 돼지들을 돌보아, 돼지들조차 주교가 보이지 않으면 매우 슬프게 울고 먹지를 않고 사납게 굴다가, 주교가 돌아오면 한 번에 모여들어 반가운 표시를 하며 먹이를 먹곤 했다고 한다. 남국영 신부도 소와 돼지를 사육하는 노동을 했는데 그동안 돼지 축사에서 살아야 했다. 1978년 석방된 남 신부는 교황청을 지지하며 지하교회에서 사목활동을 했다.

노개영에서 겨우 살아남은 이들은 많은 경우 형기를 마쳐도 사상이 개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석방되지 못하고 고초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공산당들은 그 어떤 강제노동과 고문을 가해도 가톨릭신자들이 품고 있는 하느님을 향한 올곧은 믿음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동안 중국 현대 박해기에 많은 관심을 보여준 독자 여러분과 필자에게 감사 드립니다.

서양자 수녀는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대만 유학을 거쳐 현재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에 소속돼 있다. 저서로는 「중국천주교순교사」, 「청나라 궁중의 서양 선교사들」 등이 있다.

서양자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