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군은 내운명] 훈련병들과 행군하는 최병규 신부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13-05-07 수정일 2013-05-07 발행일 2013-05-12 제 2845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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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사랑의 마음 함께 행군하며 느꼈어요”
사병들에 힘이 되어주고 싶어 고행길 자원해
천리행군 등 산악행군 거리만 총 330여km
■ 철벽부대 인기남

‘조교’로 나선 선임병과 교관들이 전열을 헤집고 다닐 때마다 피아노선처럼 팽팽해질 대로 팽팽해진 긴장감이 병사들 사이를 타고 흐른다.

혹독한 교육훈련 과정으로 정평이 나있는 강원도 삼척 육군 제23보병사단 신병교육대대. 갓 군문에 발을 들여놓은 팔팔한 훈련병들에게도 훈련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산악행군은 피하고만 싶어지는 ‘잔’이다. 야외 숙영훈련과 동시에 사흘 밤낮으로 이어지는 혹독한 종합각개전투 훈련 끝에 모든 훈련을 마무리하며 맞이하는 행군이기에 훈련병들은 초주검 일보직전이다.

행군을 앞둔 집결지에는 긴장감이 넘쳐난다. 20kg이 훨씬 넘는 군장을 결속하고 점검하는 훈련병들의 동작 하나하나에서도 긴장감이 역력하다.

같은 시간, 군화 끈을 조여 매는 최병규 신부(군종교구 육군 철벽본당 주임)의 마음가짐이 다시 비장해진다. 지난해 7월 사단 군종신부로 부임해 온 이후 훈련병들과 함께 행군에 나서길 열한 번째. 하지만 매번 주님을 부르는 마음은 더욱 간절해지는 것만 같다.

“주님, 당신의 향기를 좀 더 많이 나눌 수 있도록 이번에도 저를 꼭 붙들어주십시오.”

훈련병도, 조교들도, 군종신부도 긴장으로 몸을 떨 즈음 드디어 행군을 알리는 명령이 떨어진다.

“출발!”

신병교육대대장 박승호(알로이시오·육사 50기) 중령의 구령에 거대한 동아줄 같은 행군 대열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논밭 사이를 걷는 걸음이 길게 이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군장 무게만큼이나 훈련병들의 발걸음도 점점 무거워져만 간다. 머릿속이 새하얘져 갈 즈음 뜻밖의 목소리가 훈련병들의 뇌리를 흔들어 깨운다.

“괜찮아? 힘들지.”

“??…93번 훈련병 강동진, 아닙니다!”

정신이 번쩍 든 훈련병의 외침에 순간 정적이 흐른다. 정적 속에 서있는 이는 다름 아닌 최병규 신부다. 한 가득 미소를 머금은 최 신부.

“무슨 생각이 제일 많이 들어?”

“아무 생각 없습니다!”

어느 새 호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든 최 신부가 익숙하게 훈련병의 입 속에 넣어준다. 주위 눈치를 살피며 어쩔 줄 몰라 하던 훈련병의 얼굴에서도 이내 미소가 번진다.

■ 애정남 군종신부

훈련병 행군 대열을 오가는 최 신부의 걸음이 누구보다 바쁘다. 전투복에 단독군장을 한 최 신부가 스쳐지나갈 즈음 조그만 목소리가 그를 불러 세운다.

“신부님이십니까?” “신자야? 세례명이 뭐야?”

눈인사가 오가고 즉석에서 상담이 진행된다.

“할 만해?”로 시작된 최 신부의 상담은 행군이 끝날 때까지 간간이 이어진다.

다리를 저는 훈련병이 보이자 어느 새 최 신부가 옆에서 따르고 있다.

“이번에 쉴 때 전투화 다시 고쳐 신자.”

“군장끈을 더 조여 매는 게 좋겠다. 그러면 덜 힘들 거야.”

군화를 벗은 훈련병들의 발바닥에는 어느 새 물집이 잡히고 핏기가 비치는 이들도 적지 않다.

10분 간의 꿀맛 같은 휴식시간. 최 신부는 쉬지도 못한다. 병사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이 얘기 저 얘기 말 붙이기에 여념이 없다.

“뭐가 제일 먹고 싶어?” “누가 가장 보고 싶으냐?”

원초적(?)인 최 신부의 물음에 아무리 힘들어도 입을 안 열 병사는 없다. 대화는 이내 “힘들 때는 어떻게 이겨내느냐?” “걱정이 많겠다” 등 조금씩 심오한(?) 단계로 발전해간다.

행군 중 서너 차례 쉬었을 무렵엔 먼저 최 신부에게 다가오는 훈련병들도 적지 않게 생겨난다.

“신부님, 이런 거 여쭤 봐도 될지 모르겠지만….”으로 이어지는 물음은 대부분 비슷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 그건 네가 생각한 게 잘한 거야.” “네가 생각해봐도 이걸 잘 이겨내면 더 나아질 것 같지 않냐?”

최 신부의 활약 때문일까, 행군 대열에서 낙오하는 이는 한 명도 없다.

누군가 최 신부에게 다가와 속삭인다.

“신부님, 이번 주에 성당에서 봬요.”

“신부님, 저 신자는 아닌데…. 성당에 가도 되죠?”

■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종

아침부터 조금씩 듣던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해 점심 무렵엔 판초 우의를 꺼내야만 했다. 점심은 그야말로 빗물에 말아먹는 밥이 되고 말았다.

병사들 틈에 낀 최 신부는 간식으로 준비해온 캔커피와 초코파이를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

최 신부가 이런 고행길을 자원하고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군생활 중 가장 힘든 때 누군가 옆에서 힘이 되어준 이가 있었던 경험 때문이다. 일찌감치 군사목을 희망했던 터라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주제도 ‘한국 천주교회의 효율적인 군종 사목에 관한 고찰’로 정할 정도였다.

“신자뿐 아니라 비신자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장이 바로 이런 훈련 때입니다. 가톨릭의 이미지가 누군가에게는 맺힐 것이고 그것이 하느님 나라의 소중한 씨앗으로 자라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따라나선 산악행군 거리만 총 330여km. 특히 지난해 10월에는 백두대간을 따라 실시된 수색대대 천리행군에도 동참해 군종신부의 기개를 보이기도 했다.

신병교육대대장 박승호(알로이시오) 중령은 “신부님이 자신들과 똑같이 행군에 함께하는 모습을 보며 병사들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돼 교육에도 적잖은 도움이 된다”면서 “종교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군 정신전력 강화에도 좋은 본보기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신부에게는 매주 병사들의 편지가 쌓인다. 그가 보물과 같다는…. 그와 행군에 함께했던 병사들이 보낸 것들이다.

“신부님과 함께 행군을 하면서 저희를 사랑하시는 신부님의 마음이 느껴져 정말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저와 친한 두 동기가 다른 사단으로 배치를 받아서 가장 슬퍼하던 이유는 바로 신부님을 뵙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저희에게 신부님은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훈련병들과의 산악행군이 없는 날이면 최 신부는 자신만의 행군에 나선다. 매주 두세 차례 해안소초를 방문해 동해안 경계작전을 펼치고 있는 장병들을 위문하는 최 신부, 하느님 나라에 다다를 때까지 그의 행군을 멈추지 않을 듯하다.

최병규 신부가 사탕을 꺼내 익숙하게 훈련병의 입 속에 넣어준다. 주위 눈치를 살피며 어쩔 줄 몰라 하던 훈련병의 얼굴에서도 이내 미소가 번진다.
행군 중 훈련병들을 격려하는 최 신부의 모습.
20kg이 훨씬 넘는 군장을 결속하고 점검하는 훈련병을 도와주고 있는 최병규 신부.
우중 행군을 하고 있는 훈련병들의 모습.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