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살맛나는 세상 시장사람 이야기 (1) 부산 국제시장

이도경 기자
입력일 2013-05-07 수정일 2013-05-07 발행일 2013-05-12 제 2845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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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위로 받으며 우리 삶터에서 기쁘게 생활”
시장사목이 활성화되며 신자 상인들 결집
매주 수차례 담당 사제 방문 받으며 힘얻어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시장사람들. 어제 저녁 마감했던 가게를 다시 열면서 새로운 손님을 맞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손놀림이 활기차다. 오늘 하루는 어떤 만남과 상황이 펼쳐질까? 시장이야 말로 인간사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긴 우리네 삶터다.

가톨릭신문은 새로운 기획으로 ‘살맛나는 세상, 시장사람 이야기’ 를 마련한다. 전국 각지의 생동감 넘치는 시장에서 상인으로, 또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형제들의 맛깔 나는 삶의 현장을 소개한다.

“코노 후쿠니와 이쿠라데스카?(이 옷은 얼마입니까?)”

일본인 관광객의 갑작스런 질문이 당황스러울 만하지만 황금전(율리안나)씨는 미소 띈 얼굴로 대답한다.

“니센엔데스, 고치라노 시나모노가 닌키데스.(이천엔 입니다. 이쪽 상품들이 인기예요.)”

부산 국제시장은 주말이면 일본과 중국 등 해외 관광객들로 붐빈다. 엔저 현상으로 한국을 찾는 일본인이 많이 줄었지만, 이곳 국제시장에서는 수많은 일본어 간판만큼 일본어를 사용하는 관광객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친절하게, 상냥하게 손님을 대하는 것이 첫 번째죠. 저분이 보고 계신데 제가 어떻게 손님들께 함부로 하겠어요.”

국제시장에서 남성의류를 판매하고 있는 황금전씨. 그녀가 가리키는 곳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작은 십자고상이 놓여있다. 30년 넘게 장사를 해온 그녀에게 있어서 철칙은 ‘욕심 부리지 말자’다.

“아침에 시장에 나오는 길에 늘 기도를 바칩니다. 오늘 하루도 정직하게 살도록 해주십사 청을 올리지만, 저는 아직까지 멀었습니다.”

장사에 있어서 베테랑인 그녀에게도 “신앙은 아직도 초보자 수준”이라며 “장사를 하다보면 다툼이 생길 때도 있는데 마음을 비우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고 솔직한 고백을 풀어놓는다.

30년 전 어렵게 장사를 시작하며 자녀들을 키우고 이곳 국제시장에서 터줏대감이 된 그녀지만 쉬는 날 없이 가게를 열고 손님을 맞아 흥정을 벌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터다. 하루하루가 고달픈 그녀의 가장 큰 충전제는 신앙, 그리고 소중한 이웃들이다.

“10년 전부터 부산교구의 시장사목이 발족하면서 신자 상인들이 결집하기 시작했어요. 저도 기도모임을 주도하면서 신앙을 놓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황금전씨는 점심시간이 되자 인근 신자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며 오전에 있었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나눈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신앙이라는 커다란 버팀목으로 서로를 보듬어주고 있었다.
황금전씨.

‘행복하이소 1004호점’

구수한 사투리가 미소를 머금게 만드는 이 간판에는 ‘천주교 부산교구 시장사목’이라는 글귀가 함께 적혀 있다.

각종 안경과 썬 글라스들이 벽면과 좌판을 가득 채운 이곳은 국제시장 4공구 2층에 위치한 ‘인디안 안경’이다.

벌써 멀리서부터 최병섭(안토니오)씨가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든다. 부인과 함께 20년째 안경 도매점을 운영해온 그가 처음 신앙을 갖게 된 계기는 1985년 친구의 소개로 성당에 나가면서 부터다.

“미사를 드리기 위해 일찍 문을 닫고 성당에 가면서, 주변에서 ‘미쳤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부지런히 성당에 다니는 만큼 평소에는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주변의 시선이 그의 성실한 모습에 바뀌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선교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특히 부산교구의 찾아가는 시장사목이 펼쳐지며 국제시장의 수많은 상인들이 매주 수차례 담당 사제의 방문을 받았다.

“국제시장에서 신부님이 인기입니다. 더운 여름날에는 아이스박스를 메고 아이스크림을 상인들에게 나누어주며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이곳의 명물이지요.”

최병섭씨는 한 때 시장사목 국제시장 회장까지 맡으며 신자 상인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상인들의 여건상 본당 공동체와 자주 어울릴 수 없는 대신 시장별로 신자들이 함께 어울리며 친교를 나눌 수 있어 자연스레 생활공동체가 형성됐다는 설명.

“부산교구에 소속된 신자 상인들의 가게에는 ‘행복하이소’ 간판이 걸려 있습니다. ‘손님을 하느님으로 생각하고 응대한다’, ‘반드시 정찰제를 실시한다’,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다’ 등 13개 조항을 지키기로 약정한 가게에만 달 수 있는 간판이랍니다.”

이미 부산교구에서는 주보 등을 통해 소개된 ‘행복하이소’ 간판을 알아보는 손님들이 많다. 정직과 신용에 신앙까지 더해지며 부산교구 재래시장에는 천주교 바람이 불고 있다.

“더 많은 신자 상인들이 어울렸으면 좋겠습니다. 희망과 위로를 주시는 주님께서 지켜주시기에 오늘도 새로운 각오로 우리네 삶터에서 기쁘게 살아갑니다.”
최병섭씨 부부.

■ 부산교구 시장사목

부산교구 시장사목(담당 김정욱 신부)은 재래시장의 활성화와 신자 상인들의 영적 도움을 위해 2003년 12월 설립됐다. ‘찾아가는 시장사목’을 모토로 현재 범일성당 상우회, 엄궁 농수산물시장, 범일동 귀금속 상가, 온천시장, 자유-평화시장, 부전시장, 남항시장, 용호시장, 부산진시장 등에서 찾아가는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또 신자 가게임을 밝히는 ‘행복하이소’ 간판을 제작 약정서를 받고 배포하고 있으며, 신앙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자 상인들을 직접 발로 찾아다니며 상담과 성사를 펼치고 있다.

먹거리 골목.
씨앗호떡.
비빔당면과 메밀국수.

■ 국제시장은?

국제시장은 1945년 광복과 함께 신창동을 중심으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장사를 시작하면서 규모가 확대되었고, 미군이 진주하면서 군용물자와 함께 온갖 상품들이 부산항을 통해 수입되었는데 이 상품들은 도떼기시장을 통해 전국 주요시장으로 공급되었다.

지금은 약 650개 업체에 1489칸의 점포가 있으며 종사하는 종업원 수는 1300명에 이른다. 서울의 남대문 시장과 비슷한 분위기지만 다른 재래시장과는 다르게 식용품, 농수축, 공산품 가게가 미로처럼 얽혀 있다.

인근의 대형 백화점을 비롯한 광복동 상가들과의 상권 경쟁관계에 있으나 여전히 부산 시장의 상징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로 꼽힌다.

이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