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지도 (1) ‘한국의 작은 로마’ 서울 성북동

이지연 기자,사진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3-04-16 수정일 2013-04-16 발행일 2013-04-21 제 2842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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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 가득 받고 가톨릭 향기 찾아 떠나자
한국가톨릭 역사가 200년이 넘었다. 제삼천년기를 바라보는 보편교회 안에서는 결코 긴 시간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신자들의 열성적이고 깊은 신앙심은 서울 성북동, 부산 가톨릭 특성화거리, 대구 남산동 등 동방의 작은 나라 곳곳에 가톨릭 흔적을 쌓기에 충분했다.

바람을 타고 봄기운이 넘실거리는 지금, 한 손에는 지도를 들고 거리에서 묻어나는 가톨릭의 향기를 찾아 무작정 떠나본다. 이것이 ‘가톨릭지도’의 시작이다.

■ 여정

한성대역 - 복자사랑 피정의 집 -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본원 - 글라렛 선교 수도회 -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유기서원소 - 성북동성당 - 길상사 - 씨튼영성센터 - 한성대역

■ 살구꽃밭에서 영성의 밭으로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다. 예전 같으면 신선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교외로 향했을 테지만, 요즘은 사람들의 발길이 향하는 곳이 따로 있다. 도심이면서도 정겨운 자연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서울 성북동이 그곳이다. 기자도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성북동을 찾아갔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버스를 타고 또 몇 정거장을 들어갔다. 최종 종착지에 ‘가톨릭지도’ 첫 번째 출발지가 있었다.

경복궁 북쪽에 위치한다고 해서 성북동이라 이름 붙여진 이곳은 원래 살구꽃과 대나무가 숲을 이뤘다고 한다. 아름다운 경치 덕분에 성 안 사람들의 나들이터로 인기 만점이었다. 지금은 동네를 가로지르는 도로 밑으로 자취를 감췄지만 성북천이 있던 예전엔 마전터(빨래터)로도 유명했다. 그런 동네가 영성의 밭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1955년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가 들어온 이후부터다.

성북동 쌍다리 정류소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복자사랑 피정의 집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역사나 다름없다. 수도회 회원들이 직접 벽돌을 나르고 쌓아 만든 첫 번째 수도원이기 때문이다. 취재와 개인적인 업무로 성북동을 들락날락하면서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2000년대 들어 리모델링을 했지만 초창기 회원들의 투박하고 따뜻한 손길은 아직도 벽돌 사이에 남아있는 듯했다.

피정의 집을 둘러보는데 눈길을 끄는 조각이 있었다. 십자가를 높이 들고 있는 김대건 성인 성상이었다. 도심을 향한 성상의 눈길은 이곳 성북동이 왜 영성의 밭인지 알려준다.
성북동 길을 찾는 사람들과 멀리 보이는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복자사랑 피정의 집’.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십자가를 들고 성북동을 내려다 보고 있는 김대건 신부상.

■ 성북동은 변화 중

복자사랑 피정의 집에서 삼청터널 쪽으로 올라가면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본원이 있다. 빨간 벽돌의 고풍스러운 수도원과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아 건축한 현대식 기념관이 행인을 반겼다. 한 공간이면서도 서로 다른 분위기의 건축물은 성북동의 현재를 대변하고 있었다.

수도회 총비서 이영준 신부는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기념관을 추후 신자들과 일반인들에게 개방해 문화영성공간을 만들 예정”이라며 “또한 수도회 정원도 주말에 한해서 외부인 출입을 허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도회의 마스코트 ‘순복이’(그레이트 피레니즈 종)와 고즈넉한 뒤뜰을 구경하고는 다시 지하철 역방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멋스럽고 맛깔스러운 레스토랑과 커피숍들에 현혹돼 글라렛 선교 수도원과 미션센터를 스쳐지나갈 뻔했다. 언제나 문을 열어 놓는 센터 안에는 행인들이 마실 수 있는 음료와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센터장 김인환 신부는 “선교를 연구하는 센터가 문을 닫고 있다는 것이 어패가 있다”면서 “동네의 변화에 발맞춰 우리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북동 수도회들은 폐쇄적이었던 수도원 공간을 공개함으로써 신자와 비신자들과도 함께 소통의 창구를 열고 있다. 더불어 시대가 요구하는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마련해 이 동네를 찾는 사람들에게 영성의 샘을 전하려는 노력도 돋보였다.
글라렛북카페 간판.
증축을 마친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본원의 옛모습.

■ 한국의 작은 로마 ‘성북동’

성북동 주민들은 동네 자랑에 침이 마른다. 만해 한용운, 최순우 생가는 물론 간송미술관과 북악스카이웨이, 성곽길 등 자랑거리가 넘쳐난다. 거기에 하나 더, 열 곳이 넘는 수도회가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한국교회 최초의 선교회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한국외방선교회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유기서원기 수도자들이 생활하는 유기서원소, 사랑의 씨튼 수녀회 등을 비롯 성가정입양원, 베들레헴 어린이집 등 가톨릭 사회복지시설 등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다. 그래서 주민들은 이곳을 ‘한국의 작은 로마’라고도 부른다.

동네 명칭이 무색하지 않게 걸음걸이마다 각기 다른 수도복을 입은 수도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성북동에서 10년 간 거주한 권영숙(루치아)씨는 “한 동네에 이렇게 많은 수도회가 있는 곳도 없다”면서 “길을 걷다가 수도자들을 만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경건해진다”고 전했다.
언제나, 누구나 환영한다는 듯 성북동성당 예수님이 두 팔을 벌려 반겨주고 있다.
작은형제회 화단.

■ 다름과 조화 사이

혜화동 가톨릭대 신학대학과 인접해 성북동에는 유독 수도회가 밀집돼 있다. 더구나 수도회들이 하나, 둘 정착할 당시 서울 시내에서도 땅값이 싸고 조용한 동네로 알려졌다.

그런 길을 따라 걷다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가톨릭 수도회와 성당 말고도 곳곳에 포진해 있는 사찰과 개신교회를 자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동네 주민들에 의하면 사찰이 12곳, 개신교회가 11곳이나 있다고 한다. 종교와 종파는 달라도 이웃사촌으로 지내는 이들은 서로 화합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성모 마리아를 닮은 불상으로 유명한 길상사의 불상은 종교 간의 화합을 보여주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원로조각가이자 독실한 가톨릭신자인 최종태(요셉) 교수가 작업한 불상을 보러 길상사를 방문하는 가톨릭 신자들도 적지 않다.

주말을 맞아 성북동을 찾아온 권민경(레지나·35)씨는 “사찰에서 성모 마리아를 닮은 불상을 보니 신기하다”면서 “다른 종교 공간에서 천주교 느낌의 작품을 보니 반갑고 좋다”고 말했다.
성모 마리아와 닮은 길음사 불상은 방문객들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최근 성북동을 소위 ‘뜨는 동네’로 만든 성곽길과 동네 전경.

이지연 기자,사진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