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중국 현대 박해기 - 강제 수용소의 선교사들] (19) 한밤을 틈타 노개영으로 강제이동

서양자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
입력일 2013-04-09 수정일 2013-04-09 발행일 2013-04-14 제 2841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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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군 지도·가입한 죄로 체포돼
힘든 노동·사상교육 받으며 생활
절강성 금화노개영에서 노동한 심낙천 신부.
흑룡강은 물이 검고 용처럼 구불구불하다 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다. 겨울이면 이 강은 2미터 정도 두께로 얼어 화물을 가득 실은 트럭이 강 위를 마음대로 질주할 수 있게 된다. 흑룡강 지역에는 국영농장 노개영과 벽돌공장 노개영이 있었다.

1955년 9월 10월 상해에서 체포된 천주교 신자들과 신학생들은 이 흑룡강 지역 노개영으로 끌려갔다. 당시 상해에서 흑룡강까지는 기차로 5일이나 소요되는 곳이었다.

광주교구 담천덕 신부도 성모군을 지도한 죄로 광동성 공안원에게 체포돼 감옥생활을 하다가 흑룡강 지역 노개영으로 끌려가서 강제 노동을 당했다. 상해 진단대학교 여학생이었던 주화덕씨는 성모군에 가입한 것 때문에 체포돼 8년 노개형을 받아 한밤중에 노개영으로 옮겨졌다. 당시 상해 지역 교도소에서 한밤 어둠을 틈타 흑룡강 노개영으로 보내진 수인들은 2000여 명이나 됐다. 이들은 화물차에 실려 이동했는데, 화물차는 창도 없고 차 내에 등도 없어 어두웠다. 게다가 화물차 구석에 둔 마통(馬桶)에 대소변을 보게 해 냄새가 진동할 뿐 아니라, 차가 흔들릴 때마다 분뇨가 쏟아져 괴로움을 당해야 했다. 식사도 건량(乾糧, 마른 음식)을 조금씩 주고 물은 주지 않아 수인들은 차안에서 심한 갈증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 이렇게 상해를 출발한지 5일 만에 흑룡강 지역에 도착했는데, 그곳은 눈이 쌓여 흰색 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망무변제(茫無邊際)했다. 흑룡강 지역의 눈은 5월이 되어야 녹기 시작한다.

이곳에서는 날이 밝기도 전에 취호(吹號)를 부르면 수인들은 15분 내에 세수를 하고 모두 집합해 아침 식사를 하는데, 음식은 고작 수수 아니면 옥수수로 만든 죽 뿐이었다. 그나마 동북 지역에서는 옥수수와 수수가 주로 생산돼 그것을 식사로 제공받을 수 있었다. 상당히 힘든 노동을 하는데 적은 분량의 죽으로만 버텨 허기가 져도, 밤에는 사상교육까지 받아야 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이어서 당국은 석유 등잔불을 켜놓고 강제로 공산주의 교육을 시켰다. 특히 이곳에서는 수인 한 사람당 하루 1750개의 벽돌을 만들어내야 했다. 서만자교구 교구장 장가흥 주교도 벽돌을 굽는 노개영에서 힘든 노동을 함께 했다.

한번은 지진까지 발생해 수인들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밤에 어떤 사람이 갑자기 ‘지진이다!’라고 고함을 쳤다. 먼 곳에서 백광(白光)이 번쩍였는데 그것은 지광(地光)이었다. 지광이 한 줄 두 줄 비추고 땅에서 흙탕물이 1미터 높이로 마치 분수처럼 튀어 올라오고 물이 끓는 것처럼 방울방울 끓어올랐다. 참으로 땅이 뒤집히는 듯했다. 그날 노개영 당국은 수인들이 숙소에 들어가서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날씨는 추운데 잘 곳이 마땅찮은 수인들은 이곳저곳을 헤매며 밤을 지새야 했고, 몇몇 수인들은 짚가리 속에 들어가 자기도 했다.

서양자 수녀는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대만 유학을 거쳐 현재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에 소속돼 있다. 저서로는 「중국천주교순교사」, 「청나라 궁중의 서양 선교사들」 등이 있다.

서양자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