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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 특집] 장애를 극복하고 35년간 이발 봉사 중인 이성기씨

김진영 기자
입력일 2013-04-09 수정일 2013-04-09 발행일 2013-04-14 제 2841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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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주신 큰 사랑 작은 실천으로 보답
한사랑 이·미용봉사단 만들어 활동
전주사랑의 집 등 여러곳에서 봉사
장애를 극복하고 35년간 이발 봉사 중인 이성기씨.
“마음을 비우면 모든 것이 보여. 우리가 가진 것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지 않겠어? 사람은 높은 데로 임하는 게 아니라 낮은 데로 임해야지.”

왼쪽 발에 의수를 차고 생활이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가며 머리를 깎아주기 시작한지 어느덧 30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났다. 매일같이 봉사를 해달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한 달 일정이 모두 정해졌지만 소수 인원이라도 보내보겠다고 말하는 이성기(니콜라오·63·전주 평화동본당)씨. 혼자 시작한 봉사가 이제 300여 명이나 되는 봉사자들이 함께하는 봉사단이 됐다.

“난 아버지 얼굴을 몰라. 나 태어나고 얼마 안 돼 돌아가셨거든. 나 어렸을 때만 해도 집이 잘 살았는데 점점 가세가 기울더라고. 그래서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왔지. 구두닦이부터 시작해 넝마주이도 해보고, 동냥도 다녔어. 그러다가 자동차 정비공장도 다녀보고, 열차 타고 돌아다니면서 장사도 해봤지. 그런데 잘 통용이 안 돼.”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이후 이씨는 이발소를 하는 친구를 찾아가 이발을 배웠다. 친구에게 기술을 배우면서 서러운 일도 겪었지만 이씨는 포기하지 않고 배웠고, 1980년 자신만의 가게를 갖게 됐다.

“봉사는 내 마음에서 우러나와 시작했지. 가톨릭 노동청년회를 73년도부터 88년도까지 했었거든. 나는 지금도 분명히 가톨릭 노동청년회 정신으로 살아. 우리 노동청년회는 우리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판단하고, 온몸으로 실천하라고 해. 실천하는 거야 봉사를.”

1978년 시작한 이발 봉사는 점점 커져갔다. 전주 수류본당, 전주 자림원, 선덕보육원 등 다양한 곳에서 봉사를 하던 이씨는 1982년 아들을 얻은 기쁨도 잠시 왼쪽 발을 절단하게 된다. 16살 때 한 대학생이 장난으로 무심코 찬 돌에 맞았던 왼발이 골수염에 걸렸지만 젊으니까 괜찮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다리를 절단하고 병실에 누워있는데 신부님이 병문안을 오셨어. 신부님을 보고 이 다리 없어진 거 하느님 뜻으로 알고 살려니까 걱정하지 마시라 말하고 웃어버렸지. 신부님께서 다리 끊고 웃는 사람 처음 봤다고 하더라고.”

다리를 절단하고 봉사를 쉰 기간은 삼 개월 남짓이었다. 퇴원하자마자 가의족을 신고 땀이 뻘뻘 나도록 돌아다녔다. 빨리 숙달시켜 의족을 하고 봉사를 나가야겠다는 일념으로 행한 일이었다.

“어렸을 때 영화를 하나 본 것이 있어. 장마루촌의 이발사라는 영화였는데, 전쟁 때 다리를 다친 주인공이 목발을 짚고 와 머리를 깎아주는 장면이 있어. 그 장면이 생각나더라고.”

2005년에는 ‘한사랑 이·미용봉사단’을 만들어 함께 봉사하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사무실을 얻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이·미용 봉사를 하고 있으며, 현재 전주사랑의 집, 선너머 복지관, 동전주 하나회를 비롯해 소양 마음사랑병원, 김제 신세계 병원 등 다양한 곳에서 활약하고 있다.

“솔직한 이야기로 내가 사는 꼴 보면 거지지 거지. 그러나 내 마음은 부자야. 나는 봉사를 할 수 있는 한 계속할 거야. 내가 하느님이 가르쳐주신 사랑을 요만큼이라도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쁘니까.”

김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