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중국 현대 박해기 - 강제 수용소의 선교사들] (18) 한국인 신부도 노개형

서양자 수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입력일 2013-04-02 수정일 2013-04-02 발행일 2013-04-07 제 2840호 1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한국인 신부도 노개형
성물·봉헌금 등을 몰수 당한 임복만 신부는
노개영으로 끌려갔다 3개월 만에 석방돼
무기노개형 받은 상해교구 공품매 주교
눈강(嫩江)은 몽골어로 “푸른 초록의 강”이란 뜻이다. 눈강현의 기후는 냉대 대륙성 기후로, 토질이 비옥하고 수자원이 풍부하지만 기후가 한랭해 농사짓기는 매우 힘든 곳이다. 한국인 임복만 신부는 1980년 12월 3일 체포돼 제의와 성물, 봉헌금 등을 몰수당하고 눈강 산하(山河) 국영농장 노개영으로 끌려가서 노동하다가 3개월 만에 석방되는 일도 있었다.

앞서 밝힌 대로 노개영에서는 구타와 폭동, 자살 사건 등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무순감옥에서는 어느 날 오전, 갑자기 수인들이 “폭동이다! 폭동이다!” 하고 고함을 쳤다. 일부 수인들은 대문 쪽으로 달려가고, 어느 수인은 철곤을 휘두르며 감옥소 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두 젊은 수인들은 감옥 담 위에 쳐 있는 전망에 흐르고 있는 고압 전기를 차단하기 위해 달려가서 전선을 절단했다. 하지만 바로 이때 군대와 감옥을 지키는 간수들이 총을 들고 그들을 포위했다. 폭동을 일으킨 수인들은 구타당해서 혈흔 투성이가 되었다. 그 와중에 감(甘)씨 성을 가진 수인과 장(張)씨 성을 가진 수인은 자살을 하였다. 매일의 생활이 인간지옥이었고 매일 자살사건이 일어났다. 폭동을 일으킨 범인들은 전부 오랏줄로 결박당해야 했다. 폭동을 일으킨 범인 중 주범은 사형을 당하고, 종범들은 발에 18근이나 되는 족쇄를 차야했다. 또 공산당들은 수인들을 높은 곳에 매달아 놓고 구타한 다음 비판대회를 열고 뙤약볕이 내려 쪼이는 곳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게 했다.

여순감옥의 경우, 동양에서 두 번째로 큰 감옥이자 러시아식으로 건축됐다. 우리에게는 민족의 애국 영웅 안중근 의사가 이곳에 갇혀 있다가 이 교형실에서 순국을 해 잘 알려져 있다. 이 감옥 오른쪽에는 백색 벽돌로 된 감옥이 있고, 왼쪽에는 홍색 벽돌로 된 감옥이 있다. 대문은 4미터 정도 되게 높고 평소에는 대문을 닫아놓고 매우 삼엄하게 경비를 한다. 감옥 담은 반 미터나 되게 두껍고 높이는 3미터이고 담 위에는 전망이 쳐있으며 고압 전기가 흐르고 있었다. 게다가 수인들에게는 허리와 발목에 형구를 채우고 노동을 시켰는데, 그 형구를 채우면 탈옥을 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또 이 감옥 내 모퉁이에는 수뢰(水牢, 물 監房)가 있었다. 수뢰는 감방에 물로 채우고 수인을 거기에 가두는 것이다. 수뢰는 3평방미터인데 장방형(長方形)이고 담에는 6개의 작은 구멍이 있는데 그 구멍으로 물이 들어가게 만든 것이다. 일어로 “월옥(越獄) 미수범은 이 수뢰에 4~6시간 가둔다.”라고 적혀있다. 감옥 2층에 수뢰가 10개가 있었다. 일본은 일본군이 범법을 하거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면 여순감옥에 가두었다. 중·일 전쟁기간 중국의 애국 영웅들도 여순감옥에 가둔 일이 있다. 특히 여순감옥에는 공장이 10개가 있었는데, 수인들은 이 공장에서 심한 노동에 시달렸다.

서양자 수녀는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대만 유학을 거쳐 현재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에 소속돼 있다. 저서로는 「중국천주교순교사」, 「청나라 궁중의 서양 선교사들」 등이 있다.

서양자 수녀 (한국순교복자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