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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영성의 샘을 찾아서 - 유럽 수도원 순례] (6·끝) 베네딕토 성인의 영성을 디딤돌 삼아 더욱 확산된 가톨릭 전통 영성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3-04-02 수정일 2013-04-02 발행일 2013-04-07 제 2840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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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스터노이부르크는 오스트리아 아우구스티노회의 대표적 수도원
베르나르도 성인에 의해 성모 신심을 더욱 강화한 수도회로 꼽히는 시토회
서방 수도회의 모태를 완성한 베네딕토 성인의 영성은 베네딕토회 뿐 아니라 시토회를 통해 더욱 엄격하게 실천됐고, 아우구스티노회를 비롯한 다양한 수도회 설립과 운영의 디딤돌이 됐다. 8번째 진행된 가톨릭신문의 ‘수도원 순례’ 는 유럽 베네딕토회 수도자들과의 만남에 이어 시토회와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원 방문으로도 이어졌다. 마지막 여정에서는 한국인 순례단을 처음으로 맞이한 시토회 츠베틀 수도원과 오스트리아 아우구스티노회의 중심인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 등을 돌아본다.

시토회는 프랑스 시토(Citeaux) 지역에서 로베르토 성인(St. Robertus de Mokesme)을 중심으로 생겨났다. 베네딕토 성인이 남긴 규칙서를 기초로 단식과 침묵, 단순 노동 등의 규칙을 더욱 엄격히 적용하기 위해 설립된 수도회다.

오스트리아 시토회 수도원의 하나인 ‘츠베틀 수도원’(Stift Zwettl)은 1138년 9월 15일에 수도원 축복식을 갖고, 1140년 교황 이노첸트 2세에 의해 정식으로 설립 인가를 받은 곳이다. 아쉽게도 현재 수도원 성당은 개보수 중이어서, 순례단이 방문할 순 없었다. 수도원은 축성 기념일인 9월 15일 다시 성당 문을 열 계획이다.

이 수도원은 12세기에 지어진 오래된 석조 건물 뿐 아니라 14세기 로마네스크식 건물과 18세기 들어서 증축한 바로크양식의 건물 등 다양한 건축 양식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12세기 지하성당과 수도원은 옛 수도자들의 삶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귀한 공간이다. 수백 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흐르는 물 위에 나무로 변기를 만들어 사용한 일종의 수세식 화장실 등도 눈길을 끈다.

시토회 수도자들은 평소 아이보리색 수도복에 검정 스카플라를 갖추는 것도 특징이다. 세상에서 건져 올린 인간적인 화려함을 모두 없애고, 엄격한 규칙 안에서 하느님에 대해 묵상할 뜻을 표현한 것이다.

반면 ‘스탐스 수도원’(Stift Stams) 성당은 시토회라고 보기에는 꽤나 화려한 면모도 드러내 보인다.

설립 당시 이곳 수도원은 귀족들의 거주지와 묘지 등도 함께 갖춰야 했다. 겉에서 볼 때 화려한 양파 모양으로 꾸며진 종탑도 종교적 상징이라기보다는, 귀족들이 경치를 잘 보고자 활용한 일종의 전망대였다. 이 종탑은 물론 자신들의 권세를 드러내고자 성당을 화려하게 꾸미려는 귀족들 때문에, 당시 수도자들은 긴 고민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성당에는 종탑을 올리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귀족들의 거주시설을 화려하게 꾸미는데 동의했다. 귀족들이 음악회와 모임 등을 열던 다목적 공간에는 그 당시 건축기술로는 획기적으로 선보인, 오케스트라용 천장 테라스도 갖춰져 있다.

스탐스 수도원은 티롤 지역 영주였던 마인하르트 2세와 그의 부인 엘리자베트가 프랑스와의 전쟁 중 사망한 아들의 영혼을 위해 세웠다.

이곳은 원래 요한 세례자를 기리는 순례지였다. 이후 수도원이 건축되면서 성당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됐다. 시토회는 베르나르도 성인에 의해 성모 신심을 더욱 강화한 수도회로 꼽힌다. 스탐스 수도원 또한 성모 공경의 구심점으로 성모 축일과 관련한 내용으로 가득 채운 천장화 등을 갖추고 있다.

또한 수도자들은 지금까지도 전통 공법 그대로 과일주인 슈납스와 과일잼 등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이 판매 수익금은 전액 청소년들을 위한 학교 운영에 활용된다. 수도원이 운영하는 교육시설은 일부 귀족층만 누리던 교육의 혜택을 모든 이들과 나눠,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엄성을 실천하는 구심점으로도 의미를 더해왔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Stift Klosterneuburg)은 이번 ‘수도원 순례’ 여정의 시작점인 비엔나 인근에 자리한다. 이곳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중세와 현대 사이에 서 있게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입구에는 현대 건물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동문이 세워져 있지만, 그 문에서 계단 몇 개를 오르면 중세 때부터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육중한 철문을 마주하는 덕분이다. 공간 전체에 900여 년의 시간을 품고 있는 클로스터노이부르크에는 현대 미사양식을 만들고 실험하던 경당도 남아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실현된 획기적인 개혁 중 하나가 전례 부분에서 있었다. 당시 공의회 위원들은 미사 쇄신을 위해, 요즘과 같은 잔치와 만찬 형태의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제대와 독서대 등을 만들어 이곳에서 실험적인 미사 봉헌을 실시했다.

이 클로스터노이부르크는 오스트리아 아우구스티노회의 대표적인 수도원이다.

아우구스티노회는 처음에는 탁발수도회로 시작, 하느님을 탐구하고 공동생활을 하면서 특히 설교 분야 발전 등을 비롯해 교회 성장에 큰 힘이 되어왔다. 또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사제들은 수도복 위에 흰 띠를 두르고 있는데, 이는 모니카 성녀가 아들인 아우구스티노의 회개를 위해 눈물로 기도한 마음을 기억할 것을 상징한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은 1114년 바벤버거 왕조 레오폴드 3세와 그의 두 번째 부인인 아녜스가 세웠다. 신앙심이 남달랐던 그는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외에도 많은 수도원을 짓는데 힘을 쏟았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오스트리아의 수호성인으로 공경 받고 있기도 하다.

노이슈티프트(Stift Neustift)는 이탈리아 북부 지방에 자리 잡은 아우구스티노회이다. 이곳은 이탈리아 로마와 각 성지로 가는 길목에 자리해, 수도원은 순례자들에게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도 지어졌다.

현재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영성을 따르는 사제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18개 본당 사목도 펼치고 있다. 특히 수도원은 16세기부터 교육사업에 매진, 지역민들의 교육·문화 수준 향상을 이끌어내고 우수 인재를 양성하는데 크게 기여해왔다.

교회 안에서는 종종 신학교를 교회의 심장으로, 수도원을 교회의 폐에 비유하곤 한다. 신학교를 통해 온 몸에 피를 공급하는 사목자를 양성한다면, 수도원의 헌신을 통해 교회가 지속적으로 숨을 쉴 수 있다는 표현이다.

실제 수도원은 교회의 모든 이를 대신해 쉼 없이 기도하며, 교회 쇄신의 디딤돌이 되어 있다. 반면 수도원들이 외적 발전에 치우쳐 영적으로 쇠퇴하면서, 그 안에는 세속적인 영향이 스며들기도 했다. 하지만 수도원들은 그 때마다 세상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복음으로 더욱 새로워지고자 ‘엄격함’을 발휘하곤 했다. 익숙하고 혹은 낡은 것에 머무르지 않고, 낯설고 새로운 것을 기꺼이 맞아들여 하느님께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노력이었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대성당 전경.
다른 시토회 성당들에선 볼 수 없는 화려한 제대 장식물. 천국의 문을 상징하는 양쪽 기둥 안쪽으로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와 베네딕토, 베르나르도 등의 성인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츠베틀 수도원에 들어선 순례객들은 가장 먼저 수도원과 성당을 잇는 회랑과 마주하게 된다.
츠베틀 수도원은 현재 대성당 개보수를 진행 중으로, 예전에 창고로 쓰던 반지하 공간을 임시성당으로 사용 중이다.
노이슈티프트 제대 옆 설교대에서 바라본 십자가와 성당 뒷 전경.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