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군복음화 - 군은 내운명] 현직 군 간부 출신 제1호 군선교사 김홍섭 상사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13-03-26 수정일 2013-03-26 발행일 2013-03-31 제 2839호 19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당신의 도구로 써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부부가 성가대 지휘자·차량봉사자로 활동
군선교사로 교육생 대상 교리교육도 맡아
■ 첫 번째 선물 : 부창부수의 기쁨

‘안 되면 되게 하라’는 특전사 구호가 곳곳에 밴 우리나라 최정예 특수 요원을 양성해내는 경기도 광주 육군 특수전교육단. 함성과 기합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교육단 한켠에 자리한 군종교구 백마대공소에서는 주말이면 기이한(?) 장면이 연출된다.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성당을 들어서는 군기 바짝 든 교육생들을 맞는 이는 영락없는 ‘마당쇠 스타일’의 군인이다. 교육생들의 삼촌뻘은 족히 돼 보이는 이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하는 모양새가 ‘파격’이다. 알은척하며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은 보통이고 하이파이브에 팔짱을 끼거나 껴안는 일도 예사다. 틈만 나면 이어지는 그의 이런 행동은 이곳이 군영임을 잠시나마 잊고 딴 세상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매주 어김없이 백마대공소에서 이어지는 파격의 주인공은 특수전교육단 공수중대 행정보급관 김홍섭(베드로·41·군종교구 성레오본당) 상사. 지난 2008년부터 백마대공소 사목회 총무를 맡아 공소 살림을 도맡아 오고 있는 김 상사는 스스로를 무뚝뚝한 남자라고 말하지만 그의 경력을 모르는 이들은 그저 마음이 따뜻한 이로 기억하기 십상이다. 180㎝가 훨씬 넘는 키에 보기에도 탄탄하게 느껴지는 체격을 지닌 그는 ‘특전사 중 특전사’로 불리는 특전사 707특임대대 출신으로 고공낙하훈련만 350회 넘게 한 베테랑이다.

그런 그이지만 아내 오현주(소화 데레사·42)씨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진다. 군복무를 하며 서울에 있는 야간대학교를 다니다 만나게 된 아내 오씨는 김 상사에겐 하느님이 주신 첫 선물이기 때문이다. 김 상사의 첫눈에 들었던 오씨는 당시 하느님을 몰랐던 그에게 다른 세상을 선물해 오늘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다.

“신앙이라는 게 오묘한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체험이 쌓여갈수록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눈떠가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기쁨을 얻게 되거든요. 그 길을 걷게 해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모태신앙이었던 오씨의 평소 기도도 결혼 후에 주님을 위해 봉사하는 삶이었다. 부부의 기도를 들어주셨음일까, 두 사람은 매주 3일 이상 같이 다니며 봉사의 삶을 살고 있다. 수요일과 토요일 특수전교육단에서 봉헌되는 미사 시간이면 어김없이 두 부부를 만날 수 있다. 남편 김 상사는 미사 준비부터 공소 관리에 교육생 상담역 등으로 눈코 뜰 새가 없고, 아내 오씨는 성가 지도와 반주는 물론이고 간식 챙기는 일 등으로 공소에서 잠시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지 오래다. 부부의 봉사는 주일에도 이어진다. 군종교구 성레오본당에서 성가대 지휘자로, 차량봉사자 등으로 부부의 한 주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부창부수(婦唱夫隨)의 삶이 새로운 부창부수(夫唱婦隨)의 삶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 두 번째 선물 : 성가정의 기쁨

김 상사에게 외아들 수빈(미카엘·중2)군은 하느님이 주신 두 번째 선물이다. 결혼 후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심하던 중 자신의 가정에 새로운 사람을 보내주시면 하느님 일을 하는데 쓰겠다는 기도를 하고 얻은 자녀가 수빈군이어서 김 상사의 생각은 남다르다.

부부의 봉사활동에는 수빈군이 빠지는 경우가 드물다. 성당은 물론 군부대 봉사활동에도 늘 함께한다.

“엄마는 필요할 때 곁에서 늘 함께해주시고 아빠는 누구보다 제 마음과 기분을 잘 알아주세요.”

곁에서 부모의 삶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교육이 된다.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의 봉사 현장을 따라다니다 보니 수빈군의 꿈도 자연스레 봉사하는 삶이 되고 말았다.

“의미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삶이면 좋겠어요.”

또래들보다 의젓한 수빈군은 성소의 길을 걷는 게 꿈이다. 어렵게 얻은 아들의 마음씀씀이가 야속하기 보다는 대견스럽다는 부부. 좀체 자랑이라고는 모르는 김 상사지만 하루하루 성가정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게 해주는 가족의 존재가 자랑스럽고 감사할 따름이다.

■ 세 번째 선물 : 나누는 기쁨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시니 오히려 감사할 뿐입니다.”

김 상사가 또 하나의 선물을 받았다. 겁이라고는 모르던 그가 두려움으로 오랜 망설임 끝에 받아든 선물이라 기쁨 또한 남다르다.

결혼과 함께 하느님을 알게 된 후 알면 알수록 오묘하게만 다가오는 주님의 섭리가 왜 자신에게 미쳤을 지를 생각하면 그 두려움은 한없이 자신을 낮추게 할 수밖에 없다. 현직 군 간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군선교사 자격을 얻어 60여 년 우리나라 군선교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전사 성레오본당 주임신부 부탁으로 지난 2002년부터 매주 백마대공소를 찾아 선교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군종교구 군선교단 홍종식(라파엘·63·서울 거여동본당) 선교사에게 김 상사는 이내 재목감으로 눈에 띄었다. 먼저 손을 내민 것은 홍 선교사였다. 이것저것 자신의 선교활동을 돕도록 이끌며 군선교에 맛을 들이게 하다 지난 2010년부터는 아예 교육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리교육에 참여하게 했다. 군 대선배의 체험과 사랑이 녹아있는 교육은 이내 큰 힘을 발휘했다. 눈에 띄게 활기를 얻은 교육생들의 변화는 공소는 물론 교육단 곳곳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었다.

김 상사의 역량을 확인한 홍 선교사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지난해 김 상사를 군선교단 예비단원으로 입단시켜 본격적인 선교사의 길로 이끌었다. 하지만 김 상사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또 하나 있었다. 그저 열심한 신자로 사는 삶과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선교사로 살아가는 것은 다른 일처럼 다가왔다. 두려움이 일었다. 지금껏 죽을 뻔한 고비를 무수히 넘기면서도 무서움이라곤 몰랐던 그에게 낯선 두려움이 찾아온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더욱 필요했다. 누구도 깨뜨리지 못하고 넘어서지 못했던 벽이었기에 그의 선택이 절실했다.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에 용기가 필요했다. 매주 일요일이면 선배 군선교사들이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전방부대를 찾아 선교 경험을 나눴다. 지난해에는 사이버대학교의 군·경상담학과를 졸업하고 심리상담전문가 자격을 갖췄다. 올 2월 군선교단 피정에서는 또 한 번의 파격이 연출됐다.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가 직접 김 상사에게 군선교사 임명장을 수여한 것이다.

3월 23일 저녁, 백마대공소. 김 상사가 특전교육단 교육생들 앞에 섰다.

“저는 여러분과 같은 교육생 출신입니다. 저는 군에 와서 세 가지 선물을 얻었습니다.”

확신에 찬 그의 강의가 이어질 때마다 교육생들 사이에서도 일렁임이 전해져왔다.

“여러분도 마르지 않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선물을 마련하길 바랍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마태 13,44) 김 상사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주님의 보화를 퍼 나르고 있었다.

교육생들을 대상으로 교리교육을 하고 있는 모습.
교육생들을 격려하는 김홍섭 상사.
김홍섭 상사가 상담을 진행하며 교육생을 따뜻이 안아주고 있다.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