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85) 나의 한계성 고백하기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입력일 2013-02-26 수정일 2013-02-26 발행일 2013-03-03 제 2834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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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나약한 동시에 가능성·잠재력·초월성 가져
나약함 인정해 받아들여 주님께 순명하는 자세 필요
하느님의 뜻에 순명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순명을 이야기하면 많은 이들이 거창하게 성모님의 순명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시대에 성모님의 순명을 실천하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목숨까지도 내어 놓는 순명? 글쎄…. 우리는 대체로 나에게 피해가 없는 선에서, 나에게 이득이 되는 선에서 순명을 실천하며 살아간다.

장상에게 잘 보이려는 의도를 가진 그런 순명, 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실천하는 그런 순명,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권력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피해를 주지 않는 권력 앞에서는 고개를 번쩍 드는 그런 순명, 능력 없는 것을 포장하기 위한 그런 순명 말이다.

능력이 있어도 드러내지 않는 순명, 나에게 실질적 피해를 주는 실질적 권력에 대항해 정의를 선포하는 순명, 하느님에게 잘 보이는 순명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순명은 어떤 거창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시각을 조금 바꿔보자. 인간은 자신 안에 순명을 가지고 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실 때 순명의 씨앗을 우리 안에 심어 놓으셨다. 그것을 그저 키워서 꺼내기만 하면 된다.

날씨가 추우면 우리는 장갑을 착용하고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는다. 귀마개도 한다. 한 겨울에 비바람이 몰아치는데 마라톤 선수처럼 팬티 하나 입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은 없다. 빙벽 등산을 할 때도 우리는 걸어서 올라 갈 수 없다. 밧줄과 징 등의 장비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렇게 자연에 불가항력적으로 순명한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진료받고 약을 먹는다. 내 능력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 몸은 하느님께서 운행하시는 자연 질서에 저절로 순명한다. 이렇게 인간은 근본적으로 하느님 뜻에 순명하는 삶을 살도록 돼 있다. 그렇게 순명하며 사는 것이 바로 하느님 뜻에 합치하는 것이다. 즉 인간 존재의 나약함을 인식하고, 고개 숙이는 것이 바로 완덕을 향한 첫걸음이다. 이러한 가장 완전한 순명은 완덕의 첫걸음이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한국에서 암 치료에 실패해 미국에 오신 40대의 한 남성을 만났다. 20대부터 피땀으로 노력해 큰 농장을 일군 분이셨다. 그런데 미국에서 수술을 또 받은 후, 엄청난 진료비 때문에 모든 재산을 다 잃으셨다. 그러고도 얼마 살지 못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중요한 것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형성하는 신적 신비의 뜻을 깨닫고 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류 고등학교, 대기업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없이 나약한 내가 누구이고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셔서 문전걸식하시며 사셨다. 먹고 사는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살 수 있다. 하느님이 그 자리는 다 마련해 주신다. 중요한 것은 초점을 어디에 맞추고 사느냐 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의 큰 기둥이 있다. 나약함과 초월성이 그것이다. 인간은 늘 병을 앓는다. 장마와 홍수, 지진 등 자연재해에 대책 없이 쓰러진다. 그렇게 나약하다. 동시에 인간은 가능성과 잠재력, 초월성을 가진다. 일류 고등학교 일류 대학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약성에 대해 통찰한 후 스스로의 초월성을 확보해 성취해야 한다.

나약한 것을 인정하고 초월성을 깨닫는 것이 공부 1등 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첫 단추가 잘못 끼어지다 보니 그다음 작업도 모두 부실이 된다.

일본에 유명한 그룹의 회장이 있었다. 그런데 그 회장님은 인간적으로 볼 때는 참으로 보잘것없는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교육도 제대로 다 받지 못했다. 몸도 약했다. 집안에 재산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

“가난하고, 몸이 약하고, 교육을 못 받은 것이 나에게는 가장 큰 재산입니다. 가난했기에 가난을 벗어나려 피땀 흘리며 노력했고,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기에 늘 남에게 배우려고 노력했고, 몸이 약했기에 늘 몸을 돌보았습니다. 이것이 저의 성공 비결입니다.”

만약 이 회장이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자신이 가진 잠재력과 가능성도 성취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닥 생활을 많이 한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인지 안다. 그래서 자랑을 하지 않는다. 부르심 안에서의 한계와 다가오는 상황 안에서의 한계를 알고 창조주께 순명한다.

여기서 인간 나약함의 한계를 느끼고 순명하라는 것은 왜소하게 움츠러들어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니다. 한계를 느끼다 보니 더 배우게 되고 더 깨달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부끄럽지 않고 묻게 된다. 그래야 이웃과 주변 상황, 하느님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나의 한계성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첫 번째 단추다.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