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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영성의 샘을 찾아서 - 유럽 수도원 순례] (1) 익숙하고도 새로운 전통의 장 오스트리아 크렘스뮌스터와 알텐부르크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3-02-19 수정일 2013-02-19 발행일 2013-02-24 제 2833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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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순례, 삶의 중심에 신앙 뿌리내릴 기회 제공”
끊임없이 쇄신의 길 걸어온 수도자 발자취 ‘감동’
초기 교회 이후,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수도영성을 양분삼아 성장하고 발전해왔다. 또 각 수도회가 세운 수도원은 단순히 신앙생활의 중심일 뿐 아니라 각 지역민들의 삶과 문화, 배움의 샘터였다. 전 세계적으로 복음말씀이 전해질 수 있었던 것도 각 수도회들의 활동이 큰 몫을 차지했다. 이 때문에 수도생활에 대한 이해없이 그리스도교를 온전히 알긴 어렵다.

가톨릭신문사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가치를 바로 세우고 하느님을 보다 깊이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노력의 하나로, 그리스도교 전통 영성을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순례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만연한 세속주의와 상대주의 등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현대인들의 정신적, 영적 목마름은 갈수록 짙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 각 수도회들은 길고도 거센 역사의 흐름 안에서도 그 뿌리를 탄탄히 지키고 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자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은 수도자들의 삶은, 현대인들이 영적 삶에 대해 성찰하고 신앙 안에서 안식을 찾을 수 있는 모범이 된다.

가톨릭신문사가 주관하는 ‘수도원 순례’는 그리스도교 역사의 본향인 유럽 수도회 영성을 바탕으로 신앙의 지혜를 채우고, 수도자들과 한 공간에서 기도하며 내면을 성찰하는 여정으로 꾸며져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이 ‘수도원 순례’는 한국인 순례단으로서는 처음 발걸음을 내딛는 수도원을 다수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김정우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장)의 영성강의와 함께 진행돼 의미를 더한다.

김정우 신부는 “완벽한 복음적 가치를 살아보고자 하는 열망으로 시작된 삶이 바로 수도생활”이라며 “수도원 순례는 언제든 벗어버릴 수 있는 ‘신앙의 옷’을 입고 사는 삶을 뒤로하고 삶의 중심에 신앙이 뿌리내릴 수 있는 촉매를 제공하는 기회”라고 전했다.

그동안 ‘수도원 순례’는 유럽 수도원의 뿌리를 찾아가는 역사 테마 순례를 비롯해, 시토회와 가르멜회 등을 중심으로 영성의 깊이를 체험하는 시간 등으로 이어졌다. 또 그리스,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에 자리한 수도원을 방문하며 동방교회의 영성을 체험하는 장, 한국교회에 진출한 수도원의 모원을 순례하는 여정으로도 구성됐다.

지난달 오스트리아와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4개국에서 10박12일간 진행된 제8차 ‘수도원 순례’는 베네딕토 성인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수도자들과의 만남을 중심으로 이어졌다. 이번 특집에서는 오스트리아 ‘크렘스뮌스터’ 수도원을 시작으로 독일 프라우엔킴제, 이탈리아 노이슈티프트 등의 순례 여정을 소개한다.

‘수도원 순례’는 ‘익숙한 것’을 뒤로 하고 ‘낯선 것’과 마주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수 백, 수천 년 그 자리에 있었지만,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다소 낯선 곳이 수도원이기도 하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수도자들의 모습 또한 수많은 질문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도대체 왜 수도원을 짓고, 그 안에서 침묵하며 사는 것일까. 그렇게 살면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을까. 그 안에서 누리는 참 행복은 어떤 것인가.

베네딕토회 수도자들은 그 해답을 찾아가는 방법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베네딕토 성인(480년경~547년경)은 서방교회 수도회의 모태를 완성한 인물이다. 지난 1996년에는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기도 했다.

성인의 영적 모범을 따르는 ‘크렘스뮌스터 수도원’(Stift Kremsm&uumlnster, 이하 크렘스뮌스터)은 오스트리아 수도원 중 가장 긴 역사를 품고 있다. 777년 설립된 이후 여러 지역에 베네딕토회가 진출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영성의 요람으로서도 큰 역할을 해왔다.

크렘스뮌스터는 이 긴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인 순례단을 맞이했다.

비엔나에서 서쪽으로 약 70km 떨어진 지역에 위치한 크렘스뮌스터는 그 웅장한 위용에서부터 눈길을 끈다. 20여 만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과, 성물보관실, 황제의 홀 등이 들어선 수도원 남쪽 건물은 길이가 무려 290m나 된다. 대형 천문대와 자연사박물관 등을 갖춘 ‘수학타워’도 수도회가 보유한 이름난 유산이다. 타씰로성작(Tassilokelch)과 손으로 직접 써서 만든 복음서 등도 대표적인 보물로 꼽힌다. 유명 회화작품도 450점이나 소장돼 있다.

특히 크렘스뮌스터에서 만날 수 있었던 가장 큰 신앙의 선물은, 거센 영적 풍파 속에서도 끊임없이 쇄신의 길을 걸어온 수도자들의 발자취였다. 여러 귀족들과 성직자들의 다툼, 전쟁, 특히 종교개혁의 흐름 안에서도 수도자들은 베네딕토 성인의 가르침에 따라 엄격한 규율을 유지하고 기도함으로써 교회의 뿌리를 더욱 탄탄히 해왔다.

현재 크렘스뮌스터에는 52명의 수도자들이 머물며, 인근 26개 본당의 사목을 지원하고 있다. 16세기에 설립한 학교는 물론 청소년센터를 통해 지역사회 청소년들의 전인적 교육에 힘쓰는 모습도 주목할 만하다.

분주한 듯 보이는 일상에서도 기도 시간이면 어김없이 모든 일을 내려놓고 하느님 앞에 겸손히 모이는 수도자들. 그들의 모습은 성당 입구에 커다랗게 새겨진 ‘하느님께서 이곳에 정말 계신다’라는 성경 말씀을 수차례 뒤돌아보게 한다.

오스트리아 ‘알텐부르크 수도원’(Stift Altenburg, 이하 알텐부르크)도 수도자들의 쇄신과 개혁의 모범을 바탕으로 역사를 지속해온 곳이다. 알텐부르크는 1793년 설립된 이후 온갖 전쟁과 침입으로 고난을 겪어왔다. 게다가 1793년에는 당시 황제였던 요제프 2세의 수도원 구조조정 정책에 따라 폐쇄될 위험에 처했으나, 수도자들의 열정 덕분에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알텐부르크는 오스트리아 수도원 중 ‘바로크의 진주’라고 불릴 만큼 화려한 장식으로 더욱 돋보인다. 오스트리아 역사상 가장 유명한 프레스코 화가인 파울 트로거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세를 더한다. 도서실과 성당, 대리석홀 등에서 정기적으로 여는 각종 음악축제와 종교간 대화 행사 등도 현대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새로운 나눔이 되고 있다.

12명의 수도자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지만, 음악아카데미 뿐 아니라 본당 사목과 피정 지도, 게스트하우스 운영 등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알텐부르크에서는 현재 바로크 양식 아래 묻혀 있던 고딕식 옛 성당과 수도원 공간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오롯이 간직한 전통 안에서 신앙열정을 되살려가는 모습이었다.

수도자들이 운영하는 오스트리아 전통 와인 양조장은 학교 운영 등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하느님께서 이곳에 정말 계신다’라는 라틴어 성경 구절이 새겨진 성당 입구를 비롯한 수도원 건물 일부 모습.
1689년 완공된 도서관은 현재 일부분만 순례객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바로크 양식의 수도원 지하에 묻혀있던 고딕 양식의 옛 수도원 기도방.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