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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헌생활의 날 기획] 수사님 수사님 우리 수사님

이지연 기자
입력일 2013-01-22 수정일 2013-01-22 발행일 2013-01-27 제 2830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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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수사는 사도직 현장에서 수도회 카리스마 실현
남자수도자는 전년대비 2.4%나 감소
평수사 감소 큰 원인은 신자들 인식 부족
수도회, 교회 이루는 중요한 축 중에 하나
한국교회 성소 감소는 중요한 문제이다. 사제를 비롯해 수도자가 점차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2011년 한국 천주교회 통계에 따르면 신학생 총수가 1587명으로, 전년대비 87명이 줄었다. 수도회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여자수도자 총수는 전년대비 3.1% 증가했지만 남자수도자는 2.4%의 감소율을 보였다. 특히 남자수련자 수는 10년 전에 비해 23.7%나 감소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성소 감소의 큰 영향을 받은곳은 남자수도회다. 수사신부와 평수사로 구성되는 수도성소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은 물론 최근 몇 년간 평수사 지원자가 없는 수도회도 많다. 2월 2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도로서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봉헌생활의 날’을 앞두고, 평수사 성소 감소라는 교회의 문제를 들여다본다.

■ 불균형의 교회

2011년 한국교회 남자수도자는 1521명이다. 그 중 수사신부가 과반수를 넘어 약 800명에 달한다. 평수사의 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반증이다. 한국 천주교회 통계 결과는 수도회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평수사 성소 감소는 규모와 상관없이 수도회 전체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상당한 규모의 한 수도회는 지난 5년 동안 평수사 지원자가 두 명밖에 없었으며, 그 중 1명은 양성 도중 성소를 포기하고 나간 경우도 있다. 규모가 작은 수도회의 경우는 더 심하다. 몇 년 간 아예 평수사 성소는 없고 수사신부 지원자만 입회하고 있는 실정이다.

평수사가 감소하는 가장 큰 원인은 인식의 부족이다. 수도자는 미사 집전, 성사 집행 이외에는 수사신부와 평수사가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제 중심의 교회 분위기에서는 수도자마저도 성직자로 여겨지고 있다. 게다가 신자들과 자주 접할 기회가 없는 평수사는 자신들의 역할을 일반 신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도 한정적이다. 독실한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평수사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도 많다. 한 수사는 신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수사는 수녀의 반대말, 즉 남자 수녀”라고 설명한다고 했다. 한국교회에서 평수사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더 큰 문제는 평수사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다. 수도회에서 성소담당을 하고 있는 모 신부는 “우리 아들이 공부도 못하고 말썽 피우는데 평수사로 데려다 쓰세요”라고 말하는 신자와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성소자들의 가족들 중에서도 수사신부는 괜찮지만 평수사는 반대하는 이들도 꽤 있다. 실제로 평수사 성소를 희망해 입회하는 과정에서도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포기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교회와 신자에게만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평수사 성소를 알리는 수도회의 적극적인 홍보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평수사들 사이에서도 “열심히 기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남자수도자사도생활단장상협의회(이하 남장협) 성소계발연구팀 총무 조수만 신부는 “교회 내 교구와 남자 수도회가 함께할 수 있는 사목이 부족하다”면서도 “삶에 대한 진실성의 이유로 외적인 홍보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수도회도 각성해야한다”고 지적했다.

■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교회를 지탱하는 평수사

평수사는 사회사업이나 사도직 현장에서 수도회 카리스마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일선 사목이 이뤄지는 본당에서는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다보니 ‘평수사들이 교회에서 사라진다고 한들 무슨 문제인가?’라는 인식도 있다. 하지만 평수사 성소 감소는 단순히 하나의 현상으로만 놓고 볼 수 없다. 한국교회가 겪고 있는 성소부족을 유럽교회는 이미 20세기에 경험했다. 당시에는 평수사 성소만 줄었지만 차츰 전체 성소에도 영향을 미쳤고, 현재에 와서는 성소가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평수사공동체인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도 발상지인 스페인 그라나다를 비롯해 아일랜드, 영국 등 유럽 각지에서 성소자가 줄어들어, 관구 통폐합을 진행하고 있다.

아직까지 희망의 불씨가 남아있는 한국교회는 유럽교회의 사례를 교훈삼아 미래를 준비해야한다는 의견이다. 수도회 차원에서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열린 남장협 추계정기총회에서 신학교 커리큘럼에 ‘봉헌생활’ 수업을 포함시킨다는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으며, 고해소 개방, 영성강좌 마련 등 다채로운 방법으로 수도성소 감소에 대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평수사 성소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평수사들이 먼저 정체성을 찾고, 수도생활을 통해 기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20여년을 평수사로서 사도직 활동을 해온 김동주 수사(성바오로회)는 “평수사로 사는 분들이 자신감과 기쁨을 회복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살아갈 때 성소도 다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교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기도가 동반돼야 한다. 수도회는 교회를 이루는 중요한 축 중에 하나이며, 보이지는 않지만 사도직 현장에서 자신의 몫을 열심히 살아가는 평수사의 존재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 연학장(유기서원장) 이은명 수사는 “공기가 피부에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존재인 것처럼, 평수사들도 교회 안에 필요한 존재라는 걸 인식해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평수사 성소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평수사들이 먼저 정체성을 찾고, 수도생활을 통해 기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사진은 왜관수도원 수도자들의 기도모습.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