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78) ‘불편함’이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는 삶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입력일 2012-12-31 수정일 2012-12-31 발행일 2013-01-06 제 2827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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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지 않은 것 무조건 피하면 공명의 삶 불가능
신앙은 불편함을 피해 살도록 해 주는 것 아니며
불편함이 새로운 깨달음 얻게 하는 힘 될 수 있어
즐겁지 않은 일이 생기면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가능하면 피하려 들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편한 장소에 가지 않으려 하고, 불편한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 한다. 많은 이들이 즐거운 일에만 몰두하려 한다.

그런데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이렇게 우리가 즐겁지 않은 사건들로부터 무조건 도망갈 경우 공명적 삶, 하느님 뜻과 조화되는 삶은 불가능해진다.

불편한 일들은 늘 우리를 따라다닌다. 땅에 발을 디디고 사는 동안에는 불편함은 언제나 있다. “불편함이 없었으면 좋겠다” “불편함이 완전하게 제거된 삶을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이 세상은 불편하게 돼 있다.

그러나 이 불편함이 나를 열심히 살게 하고,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얻도록 하고, 나에게 보다 더 자극적인 요소가 된다.

신앙은 불편한 것을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하느님, 돈을 많이 벌게 해 주셔서 제 생활에서 불편함을 없애주세요” 라고 기도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신앙은 불편함을 피해 살도록 해 주는 것이 아니다. 불편한 것 다 없애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신앙이 아니다. 이는 불가능하다.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은 착각이고 환상이다. 불편함은 늘 나와 함께 한다. 세상이 모두 불편하다.

하지만 하느님 뜻과 조화되는 삶에서는 그 불편함이 어떤 중요한 ‘의미 있음’으로 다가온다. 두 번의 세계 대전도 인간 오만에 의한 충격적 사건이지만, 신비스러운 역사 속에서 그 의미를 묵상할 수 있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 안에는 우주와 세상을 형성하는 신적 신비께서 함께 계신다. 그래서 공명적 시간, 하느님 뜻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시간을 보내면 신비스런 세상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더 나아가 공명적 시간을 통해 초월의 의미를 깨달으면 정신과 육체도 서서히 변화된다. 정신과 육체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정신에서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들, 육신에서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들이 불편하지 않게 된다.

우리가 영성 생활을 하는 것은 영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과 육신이 함께 초월하는 것이다. 산속에 들어가 고행을 하면서 영적 깨달음을 얻고자 노력하는 것이 특별한 시기에 특별한 사람에게는 의미를 지닐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보편화하기에는 어렵다.

하느님이 원하는 것은 정신과 육신과 영이 함께 통합적으로 초월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세상과 통합적으로 살기를 원하신다. 관상수도회에서 관상이 잘되면 육신과 정신이 함께 빛나게 된다. 영만 빛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차원, 초월적 시간을 지내는 사람은 정신적 차원, 육체적 차원에 대해서 잘 육성된다. 육신에서 빛이 난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있는가. 눈에서 광채가 나고, 입이 아름답고, 이웃을 쓰다듬는 손길 하나하나가 거룩하게 된다. 정신도 마찬가지다. 지혜로워지고 모든 판단에 하느님이 함께 하시게 된다. 영의 초월적 시간을 보내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 초월적 시간을 살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하면 정신과 육신의 시간만 보내게 된다. 그래서 나쁜 방향으로 육신과 정신이 강화된다. 지극히 이기적이 되고, 나 하나만 생각하게 된다. 이래서는 창조주의 뜻에 부합하는 완벽한 인격체가 되기 힘들다. 육신이 강화되든, 정신이 강화되든 한쪽만 강화되면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 우리의 삶이 이기적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나중에 다시 힘들게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신앙은 초월적 통합을 위한 것이다. 불편한 것을 일시에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통합, 나와 사회의 통합을 이루는 것이다. 기도가 원하는 것을 가지게 해서 좋은 것 아니라 나를 균형적으로 종합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통합시켜 주기에 좋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이 원하는 것이다.

전 세계 20살 이하 아이들을 모두 내 자녀로 만들 수 없다. 이 세상의 모든 20층 이상 빌딩을 다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 내 자녀를 모두 김연아나 보아로 만들 수 없다. 욕심으로 가득 차서 몸의 시간, 정신의 시간만 보내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하다. 이렇게 살면서 나이 60, 70살이 되면 뭐하는가. 그런 삶을 참으로 불행하다. 영의 초월적 시간을 통해 몸과 정신도 초월로 나아가야 한다. 이런 초월적 시간은 보다 넓은 눈부신 통일성으로 모아들이는 가운데, 태양과 같은 삶을 살도록 해 준다.

많은 사람들이 잘난 척만 하며 산다. 초월적 시간을 지내는 사람은 자신을 육신과 정신과 마음이, 통일된 삶을 산다. 그래서 세상에 빛을 비춘다. 이것이 초월적 시간을 살아가는 이유이고, 초월적 삶이 성취한 결과다.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