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대중문화 속 성(性) (23,끝) ‘위지(爲之)-그래도 한다’

이광호(베네딕토·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운영위원)
입력일 2012-11-20 수정일 2012-11-20 발행일 2012-11-25 제 2821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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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보고 배운 대로
삶을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知其不可而爲之’(논어 헌문편)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한다.’는 뜻으로, 무법천지의 시대에 인(仁)과 의(義)를 외치면서, 주유열국했던 공자님이 지녔던 삶의 태도이다. 많은 이들이 그의 가르침을 현실성 없다고 비난했고, 공자도 자신의 가르침이 현실 정치에 곧바로 적용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가르침과 제자양성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가는 인(仁)과 의(義)의 길이 옳으며, 인간 내면의 원초적 선성을 일깨우는 교육은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필자의 성교육도 현실적으로 적용되기는 상당히 어렵다. 성을 욕망의 도구로만 활용하는 문화를 만드는 거대자본의 마음을 돌려놓는 것도, 그 문화의 세례를 받으며 성장한 이들의 가치관을 바꾸는 것도 무척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필자가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어렸을 때 별생각 없이 읽었던 논어의 이 구절이 되살아나 필자에게 거듭거듭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해 욕망을 자극하는 문화상품의 심층을 분석하여 글을 썼던 지난 6개월은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1티모 6,10)라는 사도의 말씀을 절절하게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칸트는 ‘타인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하라.’ 했지만, 기획사는 10대 소녀를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했다. 식별력 없는 대중은 어린 여성 연예인을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소비했고, 청소년은 아이돌을 롤모델로 숭배하고 있었다. 시대의 십자가를 인식하고 기꺼이 지려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공자도 칸트도 성경도 욕망을 주입하는 거대자본 앞에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에 별생각 없이 접하는 내용이 한 사람의 인생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필자가 이런 연구에 전념하는 이유도, 어려서 자연스럽게 접했던 논어와 성경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읽은 것으로 만들어진다. ‘어린 시절에 별생각 없이 이렇게 자극적인 노래와 뮤비를 즐기고 성장한 사람은 어떤 삶을 살기가 더 쉬울까?’ 이 답을 우리는 각종 사회병리 현상에서 명확히 확인하고 있다.

필자는 청소년들의 손에 문화상품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인문고전을 쥐여 주고 싶다. 자극적인 영상물과 인문고전은 각각 전혀 다른 가치를 내면화시켜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필자가 추구하는 가치 중심적인 성교육이다.

이 교육이 열매를 맺으려면, 문화상품 제작자들의 마음을 돌려놓아야 한다. 또 대중의 선성을 일깨우고 식별력을 키우는 교육도 필요하다. 둘 다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도 한다. 위지(爲之)는 필자의 호이기도 하다. 이 불가능의 길에 동참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필자의 교육과정에 참여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블로그 ‘사랑과 생명의 인문학’ http://blog.daum.net/prolifecorpus

※ 그동안 집필해주신 이광호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이광호(베네딕토·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