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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주일 특별기획] 평신도에게 길을 묻다

특별취재팀
입력일 2012-11-14 수정일 2012-11-14 발행일 2012-11-18 제 2820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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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스스로 ‘교회의 주인’이라는 의식 가져야
평신도, 책임·권한 갖고 보다 능동적 활동 펼쳐야
교회의 벽 넘어서 사회적 실천 행하는 태도 필요
평신도 신학자 양성과 활동의 장 마련돼야
사회교리 익히고 실천하기 위한 교육 우선
‘세상의 복음화’는 이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평신도들 없이는 불가능하다.

특히 한국 평신도들은 자발적인 복음 수용과 괄목할 만한 교회 성장을 이끌어 온 모범으로, 보편교회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그 고유의 활력과 자발적이고도 적극적인 자세는 이제 더 이상 상승 곡선이 아닌 현상 유지 혹은 하향 곡선을 그리는 모습까지 보인다. 게다가 교회 내에서 평신도들이 보다 전문적이고 능동적으로 역량을 펼칠 자리와 기회는 여전히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라 가톨릭신문은 제45차 평신도주일을 맞아 현재 ‘평신도 사도직’의 모습과 활성화 과제를 비롯해 한국교회 쇄신에 필요한 구체적인 노력들을 평신도 신학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나누는 특별기획 ‘평신도에게 길을 묻다’를 마련했다. 평신도 신학자들은 세속에 살면서 신학을 연구하고 시대의 징표에 맞게 적용, 일반 평신도들과 더욱 깊은 공감 안에서 복음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이들이다.

이번 기획은 ▲평신도 사도직의 허와 실 ▲신앙의 해 살아가기 ▲한국교회 쇄신을 위하여 ▲이 시대 평신도 신학자들은 ▲교회 학문 발전을 향해 등의 5가지 대주제와 관련해 평신도 신학자 10명을 각각 인터뷰, 그 내용을 종합·분석하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응답에 나선 평신도 신학자들은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박사급 이상의 학자들로, 교회학문 관련 기관단체 및 교수진의 추천을 통해 가톨릭신문사에서 임의로 선정했다. 인터뷰에 동참한 평신도 신학자는 ▲강영옥(루치아·56·가톨릭대 김수환추기경연구소 책임연구원) ▲김항섭(아우구스티노·55·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김혜경(세레나·46·한국가톨릭사목연구원 상임연구원) ▲박문수(프란치스코·52·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 ▲성염(요한 보스코·69·주교황청 전 한국대사) ▲유정원(로사·44·가톨릭대 강사) ▲주원준(토마스 아퀴나스·43·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최우혁(미리암·50·서강대·가톨릭대 강사) ▲황경훈(바오로·49·우리신학연구소 부설 아시아신학연대센터장) ▲황종열(레오·57·두물머리복음화연구소 소장)이다.(이상 가나다순)

(왼쪽부터) 강영옥 김항섭 김혜경 박문수 성염
(왼쪽부터) 유정원 주원준 최우혁 황경훈 황종열

세례 받은 이들은 ‘그리스도인’으로 불린다. 하지만 삶터에서의 모습은 비그리스도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사례를 왕왕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는 ‘평신도 사도직’이 올바로 구현되고 있는가?

본당 혹은 교구 등에서 보조적인 자문과 활동을 하는 것을 평신도 사도직 본연의 모습이라고 정의할 순 없다. 평신도 사도직의 텃밭은 교회 내 뿐 아니라 바로 세상 한가운데가 돼야 한다.

‘평신도에게 길을 묻다’ 기획에 동참한 한국 평신도 신학자들은 특히 한국의 ‘평신도 사도직’이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는 실태에 일침을 가했다. 사회교리적인 시각의 부족으로 세상 안에서 평신도로서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모습에는 여전히 한계를 보인다는 말이다.

사실 한국 평신도들의 내·외적 모습을 돌아볼 때, 평신도 스스로가 ‘교회의 주인’이라는 의식과 주체적으로 소명을 실천하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각 분야별 전문 역량을 갖춘 평신도들이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리더 혹은 사제·수도자들의 파트너로서 역량을 발휘할 기회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와 관련해 신학자들은 평신도 사도직이 능동적으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우선 성직자 중심으로 권한과 역할이 편중된 현 교회 구조를 재편, 평신도들에게 보다 많은 책임과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평신도들이 사제·수도자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다양한 전문성을 살려 파트너십을 실천할 수 있을 때, ‘세상의 복음화’는 이 땅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또 뿌리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실천의 배경에는 평신도들이 주인의식, 즉 복음적 자주성을 더욱 탄탄히 갖추고 사회적 실천과 개인적 믿음의 조화를 이뤄나가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신학자들은 특히 교회와 사회와의 소통은 물론 교회 안에서 지속되고 있는 ‘소통의 부재’도 한국교회에서 시급히 쇄신해야할 주요 과제로 꼽았다.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교회가 아닌 ‘듣는’ 교회의 모습을 갖추지 않으면, 고립과 쇠퇴의 길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교회 안팎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충실한 평신도들이 늘어날 때 그 힘은 교회에 새로운 생명의 숨을 불어넣는다.

또한 신학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학문적인 연구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신학 책 한 권을 읽는 것도 그 안에 담긴 영성과 마주해 자기 성찰의 기회와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특히 평신도 신학자들의 활동은 21세기 한국교회의 새로운 원천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은다. 다음에서는 5가지 대주제와 관련해 평신도 신학자들이 밝힌 제언을 종합, 소개한다.

■ 평신도 사도직의 허와 실

평신도와 사제·수도자들은 서로 기대어 있는 관계다. 수평적 리더십을 통해 상호 협력해 나가는 관계라는 말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를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 평신도와 사제는 근본적으로 동등한 관계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이전에는 교회를 교계제도로 이해, 평신도는 그 백성으로 인지해왔기 때문이다.

한국 평신도들의 모습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사목회의 등을 거치며 많은 변화를 이뤄왔다. 하지만 현재 한국교회 안에서 이러한 평신도의 정체성과 보편적인 소명을 구현하려는 노력은 불과 몇 십 년 전과 비교할 때도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고 평가된다. 평신도 신학자(이하 신학자)들은 ‘평신도 사도직’의 움직임과 관련해 “단체 활동 등의 양적인 면은 증가세를 보이지만 주체성과 능동성의 면에서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교회 안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평신도 사도직’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평신도는 단순히 가르치고 이끌어야 할 대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향한 여정의 동반자이다. 따라서 신학자들은 평신도와 사제·수도자를 동등한 동반자로 인정할 때 평신도 사도직에 대한 지원 또한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답이 보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신학자들은 사제에게 편중된 역할을 분화하는 노력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사제는 신학, 영성 등의 전문가이지만 교회 내 모든 업무에서 전문성을 지닌 이는 아니다. 세상 안에서 전문가로 활동하는 평신도들과 각각의 역할과 기능을 나누면, 자연스럽게 교회 내에서도 민주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해지고 활기를 더할 수 있다.

특히 평신도 스스로도 사제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지 않고, 평신도간의 소통에도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실태에 대해서도 적극 인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한국 ‘평신도 사도직’은 사회적 차원으로 승화되지 못하는 아쉬움을 안고 있다.

평신도들이 본연의 사도직을 구현해야하는 장은 바로 일반 사회다. 사회적 실천 없는 순수한 믿음만 있을 수도 없고, 믿음 없는 사회적 실천만 있을 수도 없다. 따라서 평신도들은 올바른 실천을 위해 신학적 소양과 사회교리 지식 등도 적극 갖춰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다른 누군가 때문에 못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이 누구이신지를 생활 속에서 체득하기 위해, 그 사랑 안에 머무르는 훈련이 필요하다.

성염 주교황청 전 한국대사는 “일반사회가 사도직 영역인데, 본당과 교구에 보조적 자문을 더해주고 좁은 활동을 하면서 그것을 평신도 사도직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가정과 사회, 국가라는 세속을 성화시키는 올바른 평신도 사도직을 가르치는 것은 바로 사회교리”라고 강조했다.

복음 선교 교육을 받고 있는 평신도들의 모습. 전문가들은 평신도 스스로 소명을 실천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교육 등을 통해 전문적 역량을 갖춘 평신도들이 급증하고 있음에도, 소명을 펼칠 자리와 기회가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 ‘신앙의 해’ 살아가기

‘신앙의 해’가 시작된 지 한 달을 넘어섰지만, 아직 많은 평신도들은 이 해의 의미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노력에 본격적으로 동참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신앙의 해’의 의미를 되짚어보며 김항섭 한신대 교수는 먼저 “현재 평신도들의 신앙생활 수준을 묻기 전에, 그동안 평신도들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신앙을 이야기하고 체험하고 펼칠 수 있는 기회나 공간이 얼마나 주어졌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먼저 이뤄질 때 ‘신앙의 해’가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신앙의 해’는 가톨릭 신앙의 근본을 재확인하고 새롭게 뿌리박는 과정을 통해 내적 쇄신을 이루고자 마련됐다. 따라서 각자의 삶에서 신앙적인 행동의 기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즉 그리스도인들이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특별히 힘쓰는 기간이다. 신학자들은 개개인이 자기식으로만 믿고, 믿음에 대해서도 자기식으로 생각하면, 믿음을 자기 안에 가둘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럴 때는 하느님 말씀에 온전히 순명할 수 없다.

특히 신학자들은 교회의 공적 문제들과 각종 논쟁에 대한 객관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성속이원론’이 사제들뿐 아니라 평신도들의 의식에도 깊이 뿌리박혀 있는 현실도 차분히 돌아보길 권했다.

이어 신학자들은 ‘신앙의 해’를 맞아 신앙이 자신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돌아보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공동체, 전례에 참여하는 공동체, 형제애를 기반으로 사회적 실천을 이루는 공동체 구현 등의 구체적인 실천사항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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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 쇄신을 위하여

신학자들은 교회의 쇄신을 위해 성직자 중심주의, 즉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교회 분위기를 개선하는데 우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 신학자들은 교회 공동체 구성원 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언로의 필요성도 제기한다. 신학자들은 평신도들이 자유롭게 발언하고, 그 가운데 공동체의 일원임을 자각하고 이를 통해 공동체의 미래에 기여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강영옥 가톨릭대 김수환추기경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한국교회 안에서는 여전히 사제·수도자와 평신도 사이에 수직적인 분위기가 남아 있고 자연히 소통의 벽 또한 두껍다”며 “쇄신을 향해 나아가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교회의 ‘듣지 않는 자세’”라고 지적한다.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가르치려고만 하는 자세는 현대사회를 복음화 하는데 더욱 큰 벽이 된다.

또한 무조건적으로 교회가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로 일관해서도 안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내부 도전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언제든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원준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개신교계에서는 일부 대형교회에서 세속적인 성공과 복음적 성공을 헷갈려 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러한 비판을 가톨릭교회에서도 할 수 있는지, 우리는 과연 복음적 성공 모델을 갖고 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며 “‘미래의 천주교는 현재의 개신교’가 될 수도 있기에 평신도들과 특히 수도자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전했다.

신학자들은 교회의 공적 문제를 드러내놓고 해결하려는 의지가 부족해 보이는 것도 경계해야할 모습이라고 지적한다. 교회가 신자유주의에 편승하고 상업화 되어가고, 한국사회 정치나 경제 현실 등과 교회의 입장을 분리하는 듯한 분위기도 심각한 문제점으로 꼽았다.

무엇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신학자들은 사회교리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연구와 실천 노력이 뒷받침될 때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국교회의 쇄신을 위해서는 우선 교회 구성원 모두가 사회교리를 익히고 실천하도록 교육하는 과제를 먼저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이 시대 평신도 신학자들은

‘평신도가 왜 신학을 하지?’ ‘신학공부해서 먹고 살 수나 있나?’

평신도 신학자들에 대한 선입견은 여전하다. 평신도들에게 평신도가 신학 하는 것에 대해 설명하기는 더욱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한국교회 내 평신도 신학자들은 아직도 평신도 신학자는 물론 신학을 낯설어하는 이러한 분위기를 깊이 체감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평신도들은 신학을 구체적인 삶에 적용하는데 유리한 입장에 있다. 따라서 각 시대 상황에 맞게 복음을 새로운 방식으로 전하고, 세상 사람들이 알기 쉽게 전하는 것이 평신도 신학자들의 큰 몫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 평신도 신학자들에게서는 사회교리에 대한 관심을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또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관심과 연구와 이어지고 있어 신학 발전과 적용에 긍정적인 영향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양성은 현재까지는 개개인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이뤄진 경우가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박문수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은 “한국교회 안에서 평신도 신학자들을 동반자로 인식하는 사제들은 드문 것이 현실”이라며 “평신도 신학자들이 개인의 학문적 연구를 넘어서 ‘사회적 책임의식’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현하도록 돕기 위해서는 양성 뿐 아니라 교회에서 활동하고 기여할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신학자들은 각 신학자들의 역량을 심화하고 펼칠 수 있는 전문 분야별 연구소 설립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연구한 것을 발표하고 나눌 장조차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시작과 전통을 이어가는 대표적인 이들이 바로 평신도 신학자들이다. 평신도 신학자 스스로도 신앙 선조들의 정신을 되살리고, 역사의 현장과 신앙 전통을 이어가는데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신학자들은 우선 연대의 틀을 강하게 엮어 가길 희망한다.

■ 교회 학문의 발전을 향해

현대사회가 복잡다단해질수록 사회과학, 인문과학적 성찰을 적극 도입하는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이러한 학문적 근거 없이는 현대 인간이나 사회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제간 혹은 통합적인 연구가 더욱 요청되는 때이지만 한국교회에서 가르치는 신학은 현대 학문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매우 소극적이라는 평가다.

성염 주교황청 전 한국대사는 “한국 교회 강단은 보수적 윤리도덕을 가르치는 데에만 치중해왔지 지성인을 포함한 하느님 백성의 지혜와 지식에 귀를 잘 기울이지 않았고, 평신도 신학자들 또한 서로 전문 지식을 나누고 다양한 분야를 신학과 연계해 공부하려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펼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신학자들은 신학은 이른바 재미없는 학문이 아니지만 경쟁력을 갖춰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히고, 다른 학문과 계속 소통하면서 비판하고 비판받으며 토론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또 보다 많은 신학자들이 토론에 참여하고 신학적 논의를 활발히 할 때, 일반 신자들도 보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밑거름을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 부설 아시아신학연대센터장은 "신학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은 신학자들이 체험없이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는 데에도 원인이 있다"며 "활동가들 뿐 아니라 신학자들도 모두 기도하면서 활동하는 관상적 실천가의 모습을 갖추고, 더불어 신학이론이 실천 행위를 포함한 영성을 이끌 수 있고, 이 시대 더욱 올바른 실천을 이끌어내기 위해 적합한 신학이론과 영성 계발에도 힘써야 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지금 한국교회 안에서는 평신도 신학자를 단순히 양성하는 것보다 어떻게 어디에서 활용할 것이냐가 더욱 큰 과제로 제기한다. 평신도 신학자들이 뜻을 세우더라도 연구자나 교육자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나 가능성이 없다면 신학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제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기금으로 평신도 신학자 및 활동가 등의 양성을 지원하는 인천교구 수요사제모임과 같은 사례들도 적극 발굴되고 확대돼야할 과제다.

아직까지 한국교회의 신학은 그 깊이와 폭을 확장하는데 더딘 발걸음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만의 신학을 발전시키고, 보편교회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보다 전폭적인 관심과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