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164) 긴장 해소하는 잡담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2-10-30 수정일 2012-10-30 발행일 2012-11-04 제 2818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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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단어 중에 가장 아끼는 단어는 ‘집중력’입니다. 본인에게 집중력은 만사형통의 마음가짐이며, 세상 그 어떤 문제도 분명하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에, 스스로 무슨 일이든 집중력을 갖고 움직이고자 노력합니다. 어떤 일을 함께하는 이들에게도 집중력을 요구하곤 했습니다.

집중력의 효율성에 빠지다 보니 한순간도 긴장하지 않은 때가 없습니다. 그리고 회의를 할 때마다 집중력을 발휘하다보니 회의 전후로 무의미한 시간을 쓰거나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가 주제가 되면 은근히 화가 납니다. 그럴 때마다 표현은 못 하고, 마음속으로 ‘회의 주제에 대해서 집중을 하지, 별 쓸데없는 것들에 저런 신경을 쓰다니 시간이 아깝지도 않은가’ 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수도회의 큰 행사를 며칠 앞두고, 어느 교구 선배 신부님으로부터 격려의 전화가 왔습니다.

“석진아, 너희 수도회 행사 준비 잘 돼가?”

“형, 세상일이 사람 마음 먹은 대로 되겠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음은 비워지더라. 하지만 좀 더 집중해서 행사준비 마무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야, 좀 설렁설렁 해라. 아니면 너만 골병든다.”

“형, 안 그래도 요즘, 긴장되고 불안 초조해서 그런지 잠도 잘 안 오고 그래.”

“석진아, 전에 어느 신문에서 읽은 건데 예전에 우리나라 독립투사들 있잖아. 우리 민족의 자주권을 다시 찾으려는 독립투사들이 모여 회의 할 때, 어떻게 회의를 했는지 공개된 적이 있어. 어땠는지 아니?”

“독립을 위해서 치밀한 작전에 계획을 수립하고, 모두가 민족을 위해 회의를 했겠지.”

“아냐, 그렇지 않았대. 그 내용이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지금 기억나는 것은 그들이 회의 할 때 많은 잡담을 했고 신나게 떠들곤 했대. 왜 그랬냐 하면, 그들은 한순간, 한순간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었던 순간이고, 민족의 독립이라는 광대한 주제를 안고 살았기에 긴장이 아닌 날이 없었대. 그런데 그런 긴장을 회의까지 그대로 가지고 오면, 그건 회의가 아니라 서로에게 심한 부담을 주는 시간 밖에 되지 않는 것이래. 독립투사들은 비록 ‘민족’이라는 주제 앞에 모였지만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 같은 목적이 있다는 믿음을 나누었기에 부담에서 오는 긴장에 주눅이 들지 않았고, 믿음에서 오는 신뢰를 통해 독립투사 활동을 할 수 있었대. 석진아, 며칠 안 남은 너희 수도회 행사, 이제는 웃으며 설렁설렁, 형제들을 믿으면서 하렴.”

그 이후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우리 형제들을 믿으며 회의 중간마다웃고 떠들며, 설렁설렁 함께 형제들과 준비를 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순간의 결정은 더딘 듯 보이지만 어느 형제 한 사람도 마음 상하거나 다치는 일 없이 수도원 행사가 형제애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긴장을 없애는 잡담, 잘 끼지는 못하지만 그 잡담을 잘 듣기는 합니다. 같이 웃기도 하고요. 그랬더니 회의가 더 잘 마무리되기도 하더군요. 참 이상하지요.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