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송영오 신부의 사랑의 둥지 행복의 열쇠 (62) 우리집 강아지

송영오 신부 수원교구 가정사목연구소 소장
입력일 2012-10-23 수정일 2012-10-23 발행일 2012-10-28 제 2817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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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기울임, 관심에서 시작되는 자녀와의 소통 
우리가 늘 갈 수 있는 곳, 우리가 없으면 우리를 그리워하는 곳, 우리가 죽으면 슬퍼해주는 곳, 바로 우리의 가정입니다.

사제서품 받고 대부분 2, 3년 인턴과정인 보좌 신부 기간을 거치고 나면 본당신부로 발령을 받는데 첫 본당에 대한 기대감이 대단히 크다.

나는 마당이 넓은 성당으로 부임하여 외출했다 돌아오면 꼬리를 흔들며 홀로 사는 신부를 맞이해 줄 친구 같은 개를 키우고 싶었다. 그런데 첫 본당은 사제관이 아파트여서 개를 키우려는 꿈은 물거품이 되었고 그 뒤도 여러 번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지만,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는데 넓은 마당의 봉담성당에 부임하면서 어떤 분이 제페니즈 스피츠(Japanese Spitz)를 한 쌍 보내 주셨다.

처음에는 이 개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했는데 마침 본당 신자 중에 애견숍을 하는 부부가 있어서 도움을 받으며 하루, 이틀 키우다 보니 정이 들고 사랑이 생겨난다.

사제의 바쁜 일상 속에 그저 밥이나 주는 것이 전부였는데 강아지는 처음부터 습관을 잘 들여야 한다는 인터넷정보를 참고하면서 아침에 일어나서 강아지들을 산책시키고 대화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하얀 털을 뚫고 들어오는 진드기를 잡아주고 털을 골라주면 좋아서 가만히 있고 요즘은 내가 마당에 나가면 내 뒤를 졸졸 따라오며 앞발로 내 뒤꿈치를 건드리며 장난을 친다. 강아지가 나를 따르는 이유를 보니 물론 밥을 주는 주인이기도 하지만 지난번 몸에 깊이 박혀 있던 벌레들을 족집게로 잡아주면서 주인이 자기를 지켜주고 사랑해 준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더 가까이하는 것 같았다. 말 못하는 동물의 아픔을 헤아려 주는 것이 신뢰의 기본이었던 것 같다. 강아지도 주인의 사랑을 깨달으면 주인을 따르고 좋아하는데 하물며 함께하는 가족들이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가 아픈지, 서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 자녀들이 왜 방황하는지, 그들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사랑과 관심을 기울이면 ‘우리의 강아지’들도 부모를 사랑하고 따르게 될 것이다.

인사이동이 되어 회관으로 이사를 오면서 강아지들을 데리고 왔는데 낯선 환경 때문에 그런지 자꾸 사람들을 경계하고 반대로 내가 나타나면 더 좋아서 어찌할 줄을 모른다. 이사를 오고 3개월이 지난 뒤에 6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한 녀석이 발가락이 6개인 특이한 놈이 있어서 그놈은 사랑을 못 받을 것 같아서 분양하지 않고 함께 키우기로 했는데 이름을 ‘육발이’라고 부르는데 얼마나 까부는지 모른다. 내 서재가 3층인데 외부 계단을 올라와서 내 방을 기웃거린다. 강아지들이 잘 뛰어놀 수 있도록 넓은 마당과 근사한 개집을 준비해 주었지만 집에는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고 3층에 올라와서 문을 긁어댄다. 문을 열어 놓으면 가만히 앉아 나만 바라보는데 지금도 컴퓨터 책상 앞에서 원고를 정리하는 내 얼굴을 쳐다보며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하품을 해 대고 있다.

요놈들이 아침만 되면 나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을 달라고 문을 흔들어 대고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리면 시끄럽게 짖어대는 통에 아파트 주민들에게 가끔씩 항의 전화를 받기도 한다. 한 달에 내가 먹는 쌀보다 개들이 먹는 사료가 더 비싸고 아침이면 똥을 치우고 물을 주며 간식을 챙기고 고깃집에 가면 뼈들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 내 눈만 바라보고 있을 강아지들을 생각하면 이것저것 챙기게 된다. 사람들은 강아지를 잘 키우는 나를 보면 장가 들었어도 자녀들을 잘 키웠을 거라고 하지만 모든 것이 관심인 것 같다. 관심과 사랑이 강아지들과 소통을 이루듯 자녀들과 하나 되는 길도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먹을 것을 챙기고 더러운 똥을 직접 치우고 아무리 시끄럽게 짖어 댄다고 욕을 먹어도 내게는 그런 것들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자녀들이 사고를 치고 방황을 하고 그들 때문에 욕을 먹어도 그들은 내 사랑하는 자녀요, 강아지들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사랑이 자녀를 키운다.”

송영오 신부 수원교구 가정사목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