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대중문화 속 성(性) (19) ‘성인식’ - 가학적 시선과 윤리관의 형성

이광호(베네딕도·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운영위원)
입력일 2012-10-23 수정일 2012-10-23 발행일 2012-10-28 제 2817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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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주의적 가치관
남성에게 처녀 정복 즐거움 누리길 요구
순결 잃은 여성 고통 즐기는 쾌감 담겨
‘성인식’은 액자식 구성이다. 노래와 춤은 중앙에, 하얀 천에 피가 뿌려지면서 흰옷의 박지윤이 재봉질하는 장면은 앞에, 커다란 곰 인형을 검은 옷의 박지윤이 찢어버리는 장면은 끝에 놓인다. 시작과 끝은 박지윤을 유리 천장과 창문으로 누군가 들여다보는 설정이다.

백색 드레스의 박지윤이 맑고 깨끗한 표정으로 재봉질을 한다. 전구 속 작은 곰 모형과 창밖의 큰 곰 인형은 소녀의 순수성을 상징한다. 평화로운 음악이 끝나자 여성의 거친 숨소리와 함께 흰 천이 피로 물든다. ‘흰 천+재봉질+피’가 첫 성 경험으로 인한 처녀막 파열을 무의식에 각인시키면서, 본격적인 노래와 춤이 시작된다.

‘성인식’은 갓 스물의 여성이 남자친구에게 첫 성관계를 경험시켜 달라고 애원하는, ‘남친 헌정곡’이다. 제작자는 박지윤을 들여다보는 설정과 ‘그대여 나 허락할래요’ 하며 박지윤이 카메라를 직접 쳐다보는 설정을 통해, 이 뮤직비디오의 소비자 남성을 첫 섹스를 요구받는 ‘헌정’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가사와 안무는 ‘스무 살 성년 = 자유로운 섹스를 당연히 해야만 하는 출발점’으로 그 의미를 왜곡시키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노래가 끝나면, 커다란 곰 인형을 검은 옷의 박지윤이 마구 때리며 찢는 장면으로 뮤직비디오가 마무리된다. 스스로 간절히 원한다고 해놓고 왜 불만에 가득 찬 걸까? 호기심과 남성의 욕망에 이끌려서 경험한 첫 성 관계는 실제로 허망함만을 남길 뿐, ‘성인식’의 노랫말처럼 ‘달콤하지도 향기롭지도’ 않기 때문이다. 박지윤이 곰 인형을 해체하는 장면은 자신의 순수성을 스스로 훼손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이다. 제작자는 왜 구태여 이 모든 것을 뮤비 안에 담았을까?

제작자는 카메라 안에 숨어서 그 시선으로 말한다. ‘성인식’의 시선은 여성에게는 순결을 버리라고, 남성에게는 처녀를 정복하는 즐거움을 누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갓 스물의 뮤직비디오 속 여성은 처녀성을 잃고 괴로워하는데, 제작자의 시선 안에는 여성의 그 고통을 보며 느끼는 쾌감이 담겨 있다. 타인의 고통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가학적 시선이다.

윤리관은 일상적으로 접하는 매체의 시선에 의해서 무의식적으로 형성된다. 발매 당시 대유행했을 뿐 아니라, 12년이 지난 지금도 방송에서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성인식’은 젊은 세대들에게 어떤 윤리관을 형성해줬을까? 쾌락주의적 가치관이다. 외부에서 주입된 말초적 욕망은 아무리 충족시켜도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환상에 빠져들면, 문화산업의 노예가 되어 ‘성-욕망-죽음’의 길로 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명확한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

〈블로그 ‘사랑과 생명의 인문학’ http://blog.daum.net/prolifecorpus>

이광호(베네딕도·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