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창간 5주년] 르포 - 빛과 소금을 다루는 사람들

오혜민 기자,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2-10-23 수정일 2012-10-23 발행일 2012-10-28 제 2817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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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빛은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아 모든 사람을 비춰야하고, 소금은 제 짠맛을 잃으면 밖에 버려진다.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한 여정은 험난하다.

일상에서 빛을 다뤄온 이에게도 인생에는 빛과 어둠이 있었고, 20여 년 동안 소금을 다뤄온 이에게도 소금을 만드는 과정은 매순간 도전이었다. 땀 흘리며 맺은 빛과 소금은 밝고 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빛과 소금의 행실을 보고 하느님을 찬양한다.

◆ 빛 다루는 사람’ 문장곤씨

“가톨릭교회 공연의 질 향상시키고 싶어요”

□ 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창세 1,4)

문장곤씨는 무대일을 하면서 생활성가그룹 원밴드 활동도 겸하고 있다.
빛과 음표를 만지는 사람이 있다. 무대 조명과 음향을 다루고, 공연의 전체 관리 역할을 맡는 문장곤(토마스아퀴나스·55)씨.

오른쪽 귀에 귀걸이를 한 채 나타난 그의 모습은 지천명을 넘겼음에도 젊고 자유로웠다. 무대일을 하며 살고 있지만 사실 그는 베이스기타를 연주하는 음악인이다. 70년대 해변가요제로 등장해 인기몰이를 했던 그룹 휘버스의 단원이었고, 99년부터 안산지역 생활성가그룹 원(One)밴드를 만나 수원교구의 행사에서 활동 중이기도 하다. 그가 평생을 무대와 함께 보내게 된 까닭이 궁금해졌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 돈암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어요. 그때 외방선교회 외국인 신부님이 주임이셨는데, 밴드를 만들어 악기를 다루게 해주셨어요. 그게 음악과의 첫 만남이에요.”

돈암동성당 레지오 소속 밴드라는 이름으로 군부대 등에서 선교하며 그는 음악과 무대가 갖는 힘을 깨달았다. 대학을 거쳐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공연을 시작했다. 밴드활동을 하며 성당과는 멀어졌지만 음악을 할 수 있어 즐거웠다. 하지만 팀이 해체되며 어려움이 닥쳐왔다. 공연을 할 수 없게 된 그는 청소를 하며 야마하음악원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힘든 시절이었다. 다행히 일본인 친구와 현지 선생님의 도움으로 소니 인터내셔널에서 프로듀서 일을 배웠다.

“1990년 귀국해서 인천 주안5동성당을 다녔는데, 성당을 다시 찾아서 그런지 일이 잘 풀렸어요. 바쁜 시간을 쪼개 주일학교 교사로 일했는데, 돈 버는 대로 아이들에게 악기도 사주고 그랬지요. 좋은 시절이었어요.”

□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5)

빛은 계속되는 듯했다. 하지만 2008년 그가 쓰러졌다. 무대를 사랑하던 그는 2년 동안 집에서 쉬어야만 했다. 급성 백혈병이었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처음에는 원밴드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도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걱정을 끼치고 약해보이기 싫었습니다. 조금만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음악봉사를 했어요. 지금은 거의 호전됐어요. 생각해보면, 생활성가를 함께 부르며 순수함을 가르쳐준 원밴드가 제 희망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 어농성지 전담 이건복 신부(현 교구 청소년국장)와 미사를 봉헌했던 것도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그는 ‘수원지역 행사는 거의 다 가보았을 것’이라고 했다. “가톨릭교회 공연의 기준을 만들고 질도 높여보고 싶어요. 사실 교회 공연이 더 힘들지만 봉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합니다. 정직하게 속이지 말고 살자, 그게 제 신앙이에요.”

□ 하느님은 빛이시다(1요한 1,5)

그에게는 꿈이 있다. 상업화된 무대가 아닌 순수하고 담백한 예술 공연이 이뤄지는 무대다. 그는 밤새 연필을 들어 공책에 무대를 그리고 있다. 얼마 전에는 홍대 젊은이들의 모습을 담은 단편영화 ‘기타리스트’ 제작도 시작했고, 2010년과 올해 교구 청소년축제 공연을 맡기도 했다.

“순수한 공연에는 상업적으로 보일까봐 LED조명도 쓰지 않고, 컬러필터도 세세하게 신경 씁니다. 소박한 빛이지요. 무대마다 쓰는 빛이 차이가 많이 나요.”

그는 매주 화요일 밤 10시만 되면 어김없이 선부동성당 옆 지하연습실을 찾는다. 원밴드와 생활성가 연주 연습을 하기 위해서다.

“밴드의 젊은 친구들이 그렇게 순수할 수 없어요. 저는 예전에 날카롭고 화도 잘 냈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들 만나고 성가 부르면서 사람이 변했대요. 앞으로 교회 내 청년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노래도 많이 만들고 싶어요.”

빛이 다시 그를 찾았다. 하느님을 꼭 닮은 찬란한 빛이다.

◆ ‘소금 다루는 사람’ 정광유씨

하늘·사람 힘 모아 만들어지는 결정체

정광유씨가 염전에서 걷은 소금을 보여주고 있다.
□ 소금을 쳐서 깨끗하고 거룩한 것을 만들어라 (탈출 30, 35)

모든 농사가 그렇겠지만은 소금은 하늘이 낸다. 기온에서부터 습도, 일조량, 날씨, 계절에 이르기까지 하늘이 움직이는 그 어느 하나라도 허투루 신경 써서는 안 된다. 그래서 염전에서 나는 소금을 천일염(天日鹽)이라 부른다. 정광유(베르나르도·60·평택대리구 서신본당)씨는 오늘도 염전을 찾았다. 날씨를 확인하고 염전을 살핀다. 염전에 모인 바닷물 사이로 새하얀 결정이 보였다. 하늘이 소금을 내린 것이다.

“소금은 속이지 않아요. 깨끗하게 대해주면 그대로 깨끗하게 나옵니다.”

소금을 모으는 도구인 대파로 두어 걸음 밀면 눈보다 새하얀 소금이 물 위로 내비쳤다. 하늘이 내린 소금은 깨끗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소금을 정화의 의미로 사용했다. 하지만 이렇게 깨끗한 소금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염전의 불순물을 비워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하늘이 내린 것을 깨끗하게 받기 위해서는 밭도 깨끗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 밭도 그래야 한다.

□ 온 땅이 유황과 소금으로 불타 버려 씨를 뿌리지도 못하고 뿌린 씨가 나오지도 못하는구나(신명 29, 22)

소금을 긁어모으는 작업이 언뜻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소금의 짠 기운 때문이다. 짠 기운에 이겨내는 것은 얼마 없다. 짠 기운에 식물이 죽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금속으로 된 기구나 도구도 쉽게 녹슬어 버린다.

“요즘은 밭이며 논이며 기계로 농사를 짓지만 염전의 소금 농사는 다 사람 손으로 해야 합니다. 짠 기운엔 쇠가 견디질 못해서 기계를 쓸 수가 없어요.”

염전을 만드는 것은 흙과 나무 그리고 사람이다. 그래서 손이 많이 간다. 봄이 되면 얼었던 흙이 녹아 무너지는 것을 하나하나 보수해야하고 나무가 그나마 오래간다고는 하지만 때가 되면 교체해 줘야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짠 기운과 뜨거운 볕은 익숙지 못한 사람은 견디기 어렵다. 소금은 음식에 들어가면 좋은 맛을 내지만 그 짠 기운을 견디고 만들어내기까지는 사람의 수고가 필요하다.

□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하겠느냐(루카 14, 34)

소금의 짠맛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바닷물을 저수지에 모아 난치(제1증발지)로 보내고 다시 느태(제2증발지)로 보낸다. 그렇게 증발과정을 거쳐서 마지막으로 오는 곳이 소금을 채취하는 결정지다. 이 결정지에서 소금을 모으기 위해 결정지의 4~5배 면적에 달하는 증발지가 필요하다. 소금을 채집하는 기간은 2~4일에 한 번씩이지만 실제로는 그 몇 배에 이르는 시간을 뜨거운 태양에 졸이고 졸여야 짠맛을 지닌 소금이 나오는 것이다.

“공장에서도 소금을 만들지만 이 천일염은 염전에서만 나옵니다. 배추도 절이고 국에 간도 하고 음식 맛을 깊게 하는 데 쓰이는 거죠.”

정씨가 염전에서 걷은 소금을 맛봤다. 짜다. 하늘이 내려준 짠맛이다. 하늘이 내려준 이 짠맛이 정씨의 손을 통해 어딘가의 식탁에서 음식 맛을 풍성하게 해주고 있을 것이다. 마치 그리스도의 맛이 신자들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을 풍성하게 해주듯이.

오혜민 기자,이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