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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오 신부의 사랑의 둥지 행복의 열쇠 (60) 송영오 신부의 가정이야기 ⑨ 신부의 딸 (하)

송영오 신부 (수원교구 가정사목연구소 소장)
입력일 2012-10-09 수정일 2012-10-09 발행일 2012-10-14 제 2815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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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뒤 더욱 단단해진 ‘가족’의 소중함
우리가 늘 갈 수 있는 곳, 우리가 없으면 우리를 그리워하는 곳, 우리가 죽으면 슬퍼해주는 곳, 바로 우리의 가정입니다.

서울로 학교에 다녀야 하는 조카딸 로사는 작은 이모네로 가게 되었고 나는 인덕원을 떠나 수원 신학교 근처인 봉담성당으로 이동하게 되어 서로 헤어져 살게 되었다. 어느 날, 삼촌이 보고 싶다고 봉담에 내려왔는데, 고등학교 때 넘어져서 아팠던 엉치뼈가 더 많이 아프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곳저곳에서 병원 진료를 받았지만 특별한 원인이 발견되지 않아 K 대학교 한방병원에서 MRI 촬영을 하였는데 오른쪽 허벅지 안쪽으로 주먹만 한 암(癌)이 발견되었다.

하늘이 노랗고 앞이 깜깜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럴 수가…!” 도저히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활막육종’이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희귀암 판정이 내려졌다. 처음에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현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정리가 되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항암 치료를 준비하던 중에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해서 설상가상으로 맹장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원래 몸이 약하고 마른 아이가 두 가지 수술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고통으로 눈물만 흘리는 것을 보며, 가슴이 아파서 나는 어쩔 줄을 몰랐고 아무것도 먹지도 못하는 로사를 바라보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슴이 답답하였다. 어떻게 이렇게 무심하게 병을 키워 놓았는지, 나 자신이 한심했고 갑작스러운 뇌수술 중에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작은 형님을 생각하니 사랑하는 내 딸 로사마저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신없이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뛰어다녔다. 제발 살려만 달라는 처절한 기도로 하느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고 아는 사람들에게 기도를 호소하였다.

도대체 하느님은 얼마나 더 가정을 이해하게하려고 이런 아픔을 주시는가? 형님을 먼저 데려가셔서 아빠 없이 살아가는 어려운 가정에 대해 깨닫게 하셨으면 되었지, 스무 살 아이의 꽃 같은 청춘마저 빼앗으려 하시다니… 그토록 하느님이 원망스럽고 미울 수가 없었다. 셋째 아들을 사제로 봉헌하신 아버지도 주님이 계신다면 이럴 수는 없다며 성당에 발길을 끊으시고는 연신 눈물을 흘리셨다. 뇌출혈로 먼저 하느님께 보낸 작은아들과 암 투병을 하는 손녀 로사 때문에 인생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면서 아버지께서는 세상을 향해, 결코 이길 수 없는 하느님과 씨름을 하셨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머리가 빠지고 손톱과 발톱이 빠져가는 자신에 대한 충격과 회의감이 생길까 싶어 우리 로사를 위해 예쁜 모자를 찾아 다니고 인터넷으로 새로운 가발은 없는지 쇼핑몰을 돌아보았다. 힘들어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인간에게 건강이 가장 중요하며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그저 사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로사는 두 번씩 휴학하며 세 차례의 수술과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견디어냈고 완치 판정이 나지 않아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MRI, CT 등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아야 하지만 그래도 그토록 원하던 학교 4학년에 복학하여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 그저 건강만 회복하게 해 주신다면 아무런 욕심도 내지 않겠다는 처음 생각과는 달리 몸이 회복되어 가니 자꾸만 생각이 달라진다.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게으르고 나태해진 생활에 잔소리가 늘어 간다. 나도 참으로 어쩔 수 없는 속물인가 보다. 나는 요즘 나의 딸 로사와 연애를 한다. 아침이면 잘 잤는지 안부를 묻고, 매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행복해 한다. 우리는 존재만으로도 감사한 가족!

“주님! 이 작은 행복이 결코 욕심이 되지 않도록 도와 주소서!”

송영오 신부 (수원교구 가정사목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