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묵주기도 성월 특집] 묵주 만들기 모임 전옥희씨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2-10-09 수정일 2012-10-09 발행일 2012-10-14 제 2815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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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묵주 제작에 힘 쏟을 터”
‘묵주천사’로 불리는 전옥희씨(서 있는 이)가 묵주 만들기 봉사자들과 묵주를 만들고 있다.
지난 6월 서울 신도림동본당(주임 이태규 신부)에 ‘묵주 만들기 모임’을 만든 전옥희(막달레나·63)씨는 ‘묵주천사’다. 이태규 주임신부와 본당 빈첸시오회의 협조로 시작된 묵주 만들기 모임은 3개월여가 지난 지금 신도림동본당은 물론 가까이는 도림동본당과 멀리는 장위동본당 신자도 소문을 듣고 매주 금요일 오후 1~5시 10여 명이 모여 아직 익숙하지는 않지만 정성어린 손길로 한 알 한 알 엮어 묵주를 만든다.

지난 5일에도 묵주 만들기 봉사자들이 책상 위에 빨강, 파랑 등 원색 묵주알과 낚싯줄을 가득히 올려놓고 묵주를 만들기 위해 모였다. 전옥희씨는 아직 초보인 봉사자들이 묵주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며 서툰 손놀림을 지도하고 있었다.

원색 묵주알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전씨는 “모임에서 만드는 묵주는 전량 가난한 외국에 무상으로 보내지는데 외국 신자들은 한국 신자들과 달리 원색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확하게는 세지 않았지만 국내외에 기증한 묵주가 벌써 10만 개는 넘었다고 한다. 전북 정읍, 경기도 부천, 서울 등 여러 곳에서 본당을 옮기면서도 묵주 만들기와 기증만은 한결같이 이어 왔고 모든 비용은 사비로 충당하고 있다.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며 물려준 재산도 묵주 만드는 비용에 쏟아부었다.

전씨가 묵주 만들기와 인연을 맺은 것은 신앙생활도 시들해지고 하는 일도 꼬일 뿐만 아니라 남편과 이혼을 심각하게 고민할 만큼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1981년 10월 1일 성녀 데레사 대축일로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바뀐 순간을 그날 맞닥뜨렸다.

전북 정읍에서 남편과 가게를 운영하던 전씨는 집에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밥을 차려주고 가게로 돌아오는 길에 성당 앞을 지나다 종소리를 들었다. 순간 ‘내가 왜 이 꼴로 살고 있지’, ‘큰일이다’라는 뜨거운 회개의 감정이 몰려왔고 그날부터 철저한 신앙인의 삶을 살았다. 아침, 저녁으로 성당을 찾아 미사와 기도를 드렸고 인색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묵주를 구입해 지인들에게 나눠줬다. 이후 비용을 줄이기 위해 1985년부터 재료를 생산공장에서 직거래로 구입, 묵주 만들기에 나섰다.

전씨는 “성당 마당의 성모상을 대할 때마다 하느님의 현존과 향기가 느껴져 묵주 만들기를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본당이나 수도회, 선교회에서 묵주가 필요하다는 연락이 오면 ‘쟁여 놓았던’ 묵주를 기증할 뿐 누구에게 전달됐는지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씨는 일주일에 두 번씩 서울역과 영등포역 노숙자들을 찾아 간식을 나눠주고 신자에게는 묵주를 손에 쥐여 주며 갱생을 기원하고 있다. 또한 최근까지 교도소에 나무 묵주를 만들어 10년 가까이 기증하기도 했다.

“내가 하는 묵주기도를 묵주를 기증받은 모든 이들이 함께한다면 그 은총이 더 크기에 묵주 만들기를 계속합니다.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죽는 날까지 묵주를 만드는 것입니다.”

서울 신도림동본당 묵주 만들기 모임 봉사자가 정성스럽게 묵주를 만들고 있는 모습.

박지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