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사랑의 집 고쳐주기] 52. 스물여섯 번째 가정 - 의정부 이갑순 할머니(상)

이지연 기자
입력일 2012-09-18 수정일 2012-09-18 발행일 2012-09-23 제 2813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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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에도 어두컴컴한 집 … 온통 곰팡이로 뒤덮여
창문으로 들어오는 먼지·물 처리할 방법 없어
지난여름엔 파이프 파열돼 물난리까지 겪어
이갑순(요세피나·91·의정부 관산동본당) 할머니 집은 경기도 고양시 관산동 한 낡은 빌라 지층(반지하)이다. 한낮에도 햇빛이 들지 않는 이 집에서 할머니는 15년을 살았다. 온 집안을 덮고 있는 퀴퀴한 곰팡이와 어둠은 이미 익숙해졌다.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던 할머니에게 축복의 선물이 찾아왔다. 가톨릭신문과 엠에이디종합건설이 함께하는 서울 경기지역 ‘사랑의 집 고쳐주기’ 대상자로 선정된 것.

공사에 들어가기에 앞서 축복식을 봉헌한 지난 12일, 이 할머니는 그동안 쌓인 살림살이를 정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오랜 세월 모은 성물은 정성스레 박스에 담았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미사에 참례하는 할머니의 깊은 신앙심이 전해졌다. 부산한 짐 싸기가 계속됐지만 10일 후에는 깨끗하게 변해있을 집 생각에 할머니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할머니가 이곳으로 이사한 것은 1997년이었다. 장애가 있는 큰아들과 서울 인근을 전전하다 막내아들 부부가 생활하던 집으로 들어오게 됐다. 하지만 허리디스크 때문에 일을 못하는 막내아들과 아들 대신 가장 역할을 하는 며느리에게 모든 책임을 맡길 수 없었다. 결국 막내아들 부부는 인근 지역으로 이사 가고, 큰아들은 요양원에 보냈다.
12일 축복식에서 엠에이디종합건설 이종익 대표이사, 관산동본당 정석현 주임신부,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 이갑순 할머니, 가톨릭신문사 사장 황용식 신부와 부주간 김문상 신부(왼쪽부터) 등 관계자들이 시삽을 하고 있다.

형편이 어려운 자녀들의 부담은 줄여줬지만 할머니는 생활이 막막했다. 집 명의가 할머니 이름으로 되어 있어 기초수급자로 선정될 수도 없었다. 다행히 관산동본당 빈첸시오회와 고양시에서 매달 지원금이 나오고, 막내며느리와 미국에 사는 동생이 간간이 보내주는 용돈으로 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다. 성당 신축공사를 시작하기 전까지 지난 2년 간 사제관에서 본당주임 정석현 신부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면서 끼니 거를 걱정도 면했다.

하지만 집은 할머니에게 가장 큰 골칫덩어리였다. 집안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지난 8월에는 파이프가 파열돼 물을 퍼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화장실은 턱이 높아 오르내리는데 어려움이 많았고, 변기까지 고장 났다. 또 지층이라 창문으로 들어오는 먼지와 물은 처리할 방법도 없다. 그렇다고 창문을 닫을 수도 없었다. 습기와 곰팡이 때문에 노상 창문을 열어 둬야 했다. 막내며느리가 시집올 때 장만해 온 가구도 족히 20년은 넘어서 이제 다 낡았다. 적은 생활비에 집을 고친다거나 가구를 산다는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런 할머니에게 ‘사랑의 집 고쳐주기’ 사업은 선물이고 축복이었다.

큰 창문으로 들어오는 먼지와 물은 이갑순 할머니의 큰 고민거리다.
습한 집 안 곳곳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처음에 총구역장에게서 집 고쳐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가슴이 두근두근했어요. 일도 손에 안 잡히고. 한편으로는 내가 얼마나 산다고 이리 애써주나 싶기도 했죠. 근데 하루를 살아도 깨끗하게 사시면 좋겠다는 말이 얼마나 고맙던지요.”

빠듯한 살림에도 성당 신축기금과 한마음한몸운동본부, 꽃동네 후원금을 봉헌하고 있을 정도로 나눔에 앞장서고 있는 할머니에게 당연한 선물일지 모르지만, 축복식 주례를 위해 방문한 의정부교구 이기헌 주교와 가톨릭신문사 사장 황용식 신부, 정석현 주임신부, 엠에이디종합건설 이종익(아브라함) 대표이사 앞에서도 할머니는 연신 “감사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할머니의 집을 고칠 수 있다는 소식에 본당 신자들도 신이 났다. 축복식에 찾아온 총구역장 이명순(소피아)씨는 “하루를 사셔도 깨끗하고 쾌적한 집에서 사시길 바랐는데 이렇게 공사해주시니 감사하다”고 말했다.

본당 신자들에게 한턱 사라고 용돈을 준 이기헌 주교는 “여러 기공식을 가 봤지만 오늘같이 기쁜 기공식은 많지 않았다”면서 “요세피나 할머니도 너무 행복하다는 말씀을 몇 번씩이나 하셔서 덩달아 기분이 좋다”고 전했다.

공사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 할머니는 꽃동네 미혼모 시설에서 생활할 계획이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의 생활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10일 간의 거주를 허락해준 친절한 수녀와 다시 돌아 왔을 때 새롭게 변했을 집을 생각하면 행복하기 그지없다.

“제가 교우집에서 태어난 것이 또 주님께서 이리 보살펴 주시니 감사할 뿐이에요.”

■ 사랑의 집 고쳐주기 문의

서울 : 02-778-7671~3

대구 : 053-255-4285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