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공의회는 진행 중… 한국교회와 새로운 복음화] (20) 「주교들의 사목 임무에 관한 교령」 해설

옥현진 주교(광주대교구 총대리)
입력일 2012-09-05 수정일 2012-09-05 발행일 2012-09-09 제 2811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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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선포·교구민 선익 위해 헌신할 책임 있어
주교들과 보편교회·교구 관계 및 협력 문제 다뤄
자신들의 책임 통감 … 근본적 변화 계기 마련
주교 교령의 의의와 배경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주교들의 사목 임무에 관한 교령-주님이신 그리스도」(Christus Dominus)를 공의회 제4회기 중인 1965년 10월 28일, 교황 바오로 6세의 재가를 얻어 ‘찬성 2319, 반대 1, 기권 1’ 결과로 공포하였다. 이 교령의 목적은 「교회헌장」에서 인정하고 교령 본문 속에 폭넓게 인용되어 있는 주교직에 대한 신학적 원리들을 실천적인 의미에서 더 명료하게 설명하려는 것이었다. 공의회 처음부터 요한 23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주교들의 공의회가 되기를 바랐다. 대다수의 주교들이 제1차 바티칸공의회를 완결 짓고자 한 반면, 소수의 주교들은 주교단의 단체성을 어느 정도 명백하게 추구하고자 하였다. 즉 사람들은 ‘주교에 관한 의안’에서 주교 단체성의 행사 그리고 주교의 위상과 그 사목 임무의 쇄신이 더 구체적으로 표명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교구와 공의회 사이를 오간 4년의 기간(해마다 로마에서 석 달, 본국에서 아홉 달)은 주요 쟁점(주교단의 단체성, 주교서품, 보편교회에 대한 책임, 평신도와의 관계, 전쟁과 평화)에 대해 공의회가 채택한 입장과 자기 지역교구의 교회 안에서 따르는 기준들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공의회가 일깨운 것은 교회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 주교들의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이다. 주교들은 교황과 더불어 그 역사적 순간에 진정으로 복음을 선포할 책임이 있었다. 그 놀라운 사건에서 주교들 각자가 자신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한몫을 담당하였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주교 교령의 내용

오늘날 주교들은 지방의 가톨릭교회들 집합체요, 특정한 교회인 교구를 돌보고 건설하기 위해 교황에 의해 임명되고 있고, 교구는 여러 본당들로 이루어진다. 공의회는 교회 안에서 주교가 차지하는 위치를 규정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과 신학적인 공을 들였다. 이 교령은 교회 안에서 주교들이 수행할 그들의 직무와 방법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가 교황에 대한 신학을 확립하는 데 집중했다면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이전의 공의회를 보충하기 위하여 주교들, 특히 주교단의 신학을 집중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것은 교회가 그 단체성 혹은 역할 분담이라는 방향으로 그 의미를 회복하는 것을 말하며, 교회가 구체적인 실재로서 지역교회들의 일치로서의 보편교회라는 의미를 천명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설하도록’ 사도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셨다(1). 모든 신자의 목자인 교황은 목자들로서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을 지원한다(2). 주교들은 한 단체로 결합하여 교회의 모든 부분을 돌보고, 개인적으로는 특정한 교회인 교구를 돌본다(3). 그 내용을 살펴보자면 주교 교령은 서론과 3장으로 이루어 졌는데 제1장은 주교들과 세계교회, 제2장은 주교들과 지역교회 즉 교구들, 그리고 제3장은 여러 교회의 공동선을 위한 주교들의 협력으로 이뤄져 있다.

1. 주교들과 세계교회와의 관계(4-10)

주교는 서품을 통하여 주교단의 일원이 되며, 교황과 결합하여 온 교회를 다스린다. 주교들은 전교지방이나 사제의 부족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특별한 지역을 도와야 한다. 교황은 ‘교회들의 선익을 위하여’ 교황청 기구들을 통하여 세계교회에 그 권위를 행사하지만, 주교들은 그들의 교구민을 위하여 그 권위를 행사한다. 공의회는 교황청 기구들의 가치를 인정하지만 백성들의 소리를 더 들을 수 있고 더 세계교회의 대표성을 가질 수 있도록 개편할 것을 요청한다.

2. 주교들과 지역교회, 즉 교구들(11-35)

첫째 부분은 “교도직, 사제직, 사목직을 수행함으로써 주님의 이름으로 자기 양들을 양육하는” 목자인 교구 주교를 다룬다(11). 주교들은 “시대적 요구에 적응하는 방법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신앙을 심화하며 교리를 가르친다(13). 주교들은 다양한 계층의 신도들에게 신앙을 가르치고 사회를 복음화함으로써 사랑과 진리를 실천한다. 그들은 성직자와 수도자, 교리교사와 평신도들을 보살핀다. 주교란 공동체의 종, “착한 목자 …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보살피는 참 아버지” 이기 때문이다(16). 주교들은 교회일치 운동을 확산시키고 평신도 사도직을 장려하며, 특별한 사목적인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보살핀다. 주교들은 세속적 권위로부터 독립되기에 “주교들을 임명하여 세우는 것은 교회의 정당한 권한이며”(20), 그들의 직무를 보호하기 위해 “연로하거나 다른 중대한 이유”가 있으면 사의를 표명해야한다(21). 둘째 부분은 교구의 구역을 다루는데, 필요하다면 재정비하기를 권한다. 구역이 너무 크거나 작아도 안 되기에 ‘주교회의’를 통하여 재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24). 셋째 부분은 교구 사목에 있어서 주교와 협력하는 사람들과 기구를 다룬다. 보좌주교와 대리주교, 다른 원로 협력자들(주교대리, 총대리, 교구청, 사목위원회 등), 교구 성직자들 특히 본당신부와 보좌신부, 지역의 주교와 협력하는 수도자들이 있다.

3. 여러 교회의 공동선을 위한 주교들의 협력(36-44)

주교들은 소공의회나 지역회의들, 다른 주교들과 협력하는 주교회의 등을 통해 힘을 모으고 뜻을 같이하여 사목계획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교회의는 일정한 나라나 지역의 주교들이 특히 사도직의 형태와 방법을 시대환경에 적응시킴으로써 교회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선익을 더욱 증대시키기 위하여 단체적으로 사목직을 수행하는 모임이다”(38).

각 주교회의는 고유한 규약을 만들고 절차를 결정한다. 교구와 관구의 경계도 재검토가 필요하고, 교구간의 사목적인 필요에 의한 군종 교구의 설립도 필요하다. 주교들과 본당신부들이 사용할 일반 지침서와 각 나라의 지침서들이 공의회 후에 나오기 바란다(44)고 마무리 짓고 있다.

주교들은 다른 주교들과 협력하는 주교회의 등을 통해 뜻을 같이하여 사목계획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진은 2011년 한국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 모습.

논쟁점들

주교 단체성의 문제는 주교들은 하나의 단일체, 곧 ‘단체’이며 사도들이 ‘열두 사도’를 이루었던 것처럼 공통임무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의 형제적 결합을 이루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1963년 10월 4일부터 16일까지 130여 명의 공의회 교부들이 총회에서 발언하였는데 그들 가운데 대다수가 사도단과 그 후계자들인 주교단 사이의 밀접한 관계 그리고 주교 축성이 진정한 성사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이 성사를 통하여 새 주교는 성사들을 집전할 뿐만 아니라 교회를 가르치고 다스리는 목적과 권위를 가지고 주교들의 단체인 ‘주교단’의 일원이 된다. 그는 자기 교구 안에서 이 권력을 행사하기도 하지만, 교황과 다른 주교들과 이루는 친교 안에서 보편교회를 위해 이 권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10월 11일 볼로냐 보좌주교인 루이지 베타찌(Luigi Bettazzi)는 볼로냐 워크숍에서 모은 사료에 근거하여 단체성을 지지한다는 연설로 큰 관심과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주교단을 강조하는 일이 교황의 권위를 약화시키지 않을까 우려하였다. 이러한 염려를 하는 사람들은 “주교의 권위는 주교 축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비오 12세가 주장했듯이 교황의 임명을 통해 다스리는 권한을 받았기 때문이다”고 생각하였다. 양측 모두 전통에서 근거를 찾았고 대립하였다. 10월 4일부터 공의회는 교황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해온 주제, 곧 교황과 주교들의 관계를 다루었다. 무엇보다 교황의 수위권과 명백한 가치를 재천명하였다. 교회는 사도단이 다스려왔고, 베드로가 사도단과 자신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듯이 사도단의 그 단장인 베드로와 떨어져서는 더 이상 하나의 단체로 존속할 수 없다는 사실에 비추어 교황과 주교들의 관계를 어떻게 표현하여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또한 주교 축성이 진정한 성사라는 것을 인정하자 주교 권력의 원천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이 떠올랐다. 주교 권력은 축성행위 자체를 통하여 하느님에게서 직접 오는 권력이라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교황은 주교 임명과 연관하여 주교의 관할 교구를 결정하는 일에만 관여한다는 것이다.

공의회의 영향

많은 이들에게 공의회의 참석은 진정한 영적 충격의 체험이었다. 그들의 인생에 영향을 주었고, 놀랍게도 어떤 이들은 ‘회심’하기도 하였다. 캐나다의 레게 추기경은 1966년 4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공의회가 자기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공의회를 통해 회심을 하거나 삶이 바뀌지 못한 사람이다. 이제껏 의식하지 못했던 또는 너무 소홀히 했던 자신의 책임감을 깨달아야 한다.”

레게 추기경은 그 이듬해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기 위하여 아프리카로 떠났다. 1964년 11월 바오로 6세가 더 이상 삼중관을 쓰지 않기로 한 뒤에 수백 명의 주교들은 가난의 주제가 중요함에도 그동안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못했음을 깨닫고 ‘복음에 따르는 가난한 삶’을 살지 못한 부족함을 각자 극복하겠다는 다짐을 담은 13개의 결의문에 서명하였다.

이러한 토양 위에서 주교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더욱 통감하게 되고 근본적인 변화를 갖게 되었다.

- 옥현진 주교(광주대교구 총대리)

옥현진 주교는 1994년 사제서품 후 2004년 로마 그레고리안대학에서 교회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광주대교구 교회사연구소장,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 등을 거쳐 2011년 7월 6일 주교로 서품됐다. 현재 광주대교구 총대리 직무와 함께 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옥현진 주교(광주대교구 총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