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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 27 생명윤리와 윤리원칙 5

소병욱 신부ㆍ대구 효성가톨릭대교수
입력일 2012-09-04 수정일 2012-09-04 발행일 1995-10-22 제 1975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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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의 원칙」이용 의심 풀어야
객관적 증명전까지의 결정은 고수 가능
우리는, 반성원리란 의심을 직접적으로, 이론적으로 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행동해야 할 경우 의심을 풀고 실천적 확실성을 얻어 보려는 간접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즉, 어떤 행위를 하려고 하는데 그것을 금하는 법이 있는지 의문이 생길 때(=법적 의심), 어떤 사실이 있는지(했는지), 없는지(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생길 때(=사실에 대한 의심) 그 의심을 이론적으로 풀지 못하고도 행동을 해야 할(결정을 내려야 할) 경우 반성의 원칙을 동원하는 것이다.

반성의 원칙에 있어 다른 모든 원칙들을 포괄하는 원칙은「추정의 원칙」이다. 『의심스러울 때는 추정되는 쪽을 택하라』것이다. 즉, 의심이 생길 경우 스스로 생각하여 옳은 것으로 추정되는 것(즉, 확신이 없더라도)을 택하고 옳지 않다고 추정되는 것을 피하면 된다는 말이다. 스스로 추정되는 쪽을 택하는 것은 자신의 권리이므로 그 자신의 추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증명되기 전까지는 자신의 결정을 고수 할 수 있다.

이 추정의 원칙 안에는 여러 가지 행동규칙들이 있다. 예를 들면『증명되지 않는 소유권(물건, 권리) 분쟁시 현재의 점유자를 우선시켜라』: 『피고의 범죄 유무가 의심스러울 때 유죄가 증명되기 전까지는 피고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 『어떤 행위의 유효성에 의문이 생길 때에는 유효한 쪽으로(추정) 해석하라』: 『의심스러울 때는 자신에게 유리한 것은 확대 해석하고 불리한 것은 축소 해석 할 수 있다』: 『보통으로(일상적으로) 일어나던 일은 특별한 의심이 발생한 경우에도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일어나 일로 판단하라』(즉, 추정은 관례적, 정례적, 통례적인 것에 더욱 비중을 두라): 『공동선과 개인선이 충돌할 때 공동선을 우선 시켜라』: 『의심스러운 법과 사실은 의무를 지우지 않는다』등이다.

법의 존재가 의심스러울 때는 물론 그 법이 부과하는 의무에 얽매이지 않지만 자기 혼자서 그 법의 존재를 의심스러워 할 경우가 아니고 모든 사람이 의문을 가질 경우이다.

아기가 없어서 체외수정(시험관 아기) 및 대리모를 생각하고 있는 부부가『체외수정을 금지하는 법은 없을 거야』라고 추정했다면 그것은 틀린 추정이다.

스스로의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된(정당성이 없는) 판단일 뿐 아니라 그 부부만(즉, 특정인만)법의 존재를 의심스러워 한 것이기 때문이다. 체외수정은 수정란들의 낙태를 일으키므로 낙태죄를 범하는 일이란 것을 아는 모든 이들은 교회법의 낙태금지법의 존재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치료를 하였으나 환자가 죽었을 때 그 환자의 사망은 의사의 실수가 확실히 증명되기 전까지는 통례적인 결과로 돌려질 수 있으며 따라서 의사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통례적인 일은 특별한 의심이 있더라도 통례적인 일로 추정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어떤『사실에 대한 의심』이 타인의 영혼, 육신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면 추정의 기준을 완전한 애덕의 실천에 두어야 한다. 즉, 자신의 추정이 타인이나 공동체에 해를 끼치지 않는 안전한 길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는 언제나 더욱 확실하고 안전한 치료법을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수술후 수술 칼이 하나 없어졌다는 그 사실을 뒤늦게 안 의사가 혹시 그 칼을 환자의 뱃속에 그냥 둔채로 복합을 하지 않았나 의심이 들때는, 사실로 드러날 경우 자신의 명예에 흠집이 가고 경제적 손해를 입더라도, 가장 안전한 방도 즉, 환자를 다시 불러 재검사를 해봐야 한다. 의사는 환자에게 치유 효과도 있지만 중대한 해악을 끼칠 수도 있으리라 의심이 가는 약품을 실험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물론 그 약을 투여하지 않더라도 이미 죽음이 확실한 환자에게 최후로 그 약품의 치유효과를 기대하면서 사용하는 경우는 예외가 된다.

생명윤리에 있어서의 사실에 대한 의심은 다른 그 어느 영역에서 보다 가장 안전한 방도를 택함으로써 그 의심에서 확실하게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어떤 행동(특히 인간생명과 관련된)의 합법성, 정당성에 대하여 실천적 의심이 생기면 그 의심이 확실히 해소될 때 까지는 그 행동을 하지 않고 미루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도이다. 그러나 행동을 미룰 수 없는 막다른 상황에서 두가지 악한 행위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를 들면 또다시 임신할 경우 정신이상이 올 것이 확실한데 가톨릭 의사는 불임수술을 거절해야 할 것인가?

이럴 경우 행위자는 작은 악을 선택할 수 있다(=「작은 악의 원칙」). 작은 악마저 피하려는 윤리적 안전주의에만 매달려 있을 때 더 큰 악을 초래하고 선의실천을 회피하는 결과를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것이 더 작은 악인지도 구분하기 힘들때는 행위자가 마음대로 작은 악이라고 추정되는 행위를 택할 수 있다. 그는 자신에게 닥친 강제적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또 한가지 다른 상황을 보자. 두가지 이상의 윤리적 의무를 동시에 수행해야 할 경우, 그리고 그 임무의 비중이 비슷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신법과 자연법의 의무를 실정법(국가법, 교회법)의 의무보다 우선시켜야 한다.

주일에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가톨릭 의사나 간호사는 자리를 비울 수 없을 경우, 주일미사에 참여해야 한다는 교회법적 의무보다 생명의 존중이라는 자연법적 의무를 따라야 하고 따라서 주일미사 불참을 고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

소병욱 신부ㆍ대구 효성가톨릭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