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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달 특집] 가톨릭출판 비상구를 찾는다 3 그래도 책읽는 사람은 있다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2-09-04 수정일 2012-09-04 발행일 1995-10-15 제 1974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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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참여 등으로 「책맛」들여야
독서통해 일상의 풍요로움 「만끽」
「책속에 길이 있다」

아무리 현대인들이 책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해도 해묵은 가치를 갖고 있는 이 명 언을 믿는 이들을 우리는 곳곳에서 만난다.

비좁은 출퇴근 전철 속에서 졸린 눈을 부비고 책 속에 눈을 담은 샐러리맨들, 소음으로 귀가 멍한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삼매경에 빠진 사람이나 아빠와 함께 아이들 손잡고 서점 나들이에 나선 주부, 서점에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발돋움해 책을 꺼내는 꼬마 아가씨….

이들은 말 그대로 책속에서 길을 찾는 책 문화인들이다.

어느때부터인가 책이 우리에게서 멀어져간다는 한탄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런 현상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출판의 미래는 암울한 회색빛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책이 사라질 수 없다는 것은 TV가 등장해도 라디오가 여전히 쓸모를 간직하고 있으며 신문이 정보획득의 가장 보편적인 매체로 남아있음에서도 확인할수 있다.

서울 노량진에 사는 김영배(바오로. 32)씨는 조그만 데이타베이스 제공업체에 근무하고 있다. 일의 성격상 하루종일을 꼼짝없이 컴퓨터앞에 붙어 있어야 하고 야근도 서슴지 않아야 하는 김씨는 하루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는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런 김씨에게 책을 읽는 시간은「허영」이고「호사」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 지만 숨쉴틈 없이 바뀌는 컴퓨터 모니터의 냉정한 색감에 지친 그는 회백색 여백에 찍혀 있는 자잘한 글자들에서 오히려 휴식을 취한다.

그가 주로 펴는 책은 에서이류, 때로는 직업적 필요 때문에 촘촘한 전문서적도 읽지만 그 외에는 읽을 거리를 택한다.

「책을 꼭 심각하게만 읽을 필요는 없잖아요. 생활 가까이에 책을 둔다는 것 자체가 무언지 모르게 일상을 풍요롭게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치원생과 국민학교 2학년 두 아이를 둔 김민주(데레사ㆍ34)씨는 한달에 2번 정도 서점 나들이를 한다. 소설가가 꿈이었던 김씨에게는 마치 세끼 밥먹듯 그렇게 책이 생활의 한부분으로 들어와 있다. 아직 케이블TV를 설치하지는 않았더라도 집에 컴퓨터나 있고 비디오 테이프도 많지만 책읽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책은 마음을 살찌게 해줍니다. 좋은 책을 읽어야 하는 건 물론이지만 그보다 앞서「책읽기」가 낯설지 않아야 하지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서점에 꽉 찬 서가를 보여주고 그 안에서 있는 것이 익숙하게 해줍니다」

인천 부평4동 본당 교육관에 조직돼 있는「아이사랑 어머니회」와「책낭꿈낭」 은 아이들에 대한 어머니들의 이런 사려깊은 배려가 담겨있다.

한달에 한번 모이는 고등학교 동문회에서 개신교 친구들과「말쌈」에서 진 후로 성서와 교리서를 꼼꼼하게 읽는다는 이병훈(베드로ㆍ32)씨는 요즘 성바오로서원을 유난히 들락거린다.

「신앙생활도 제대로 하기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성서 한구절도 자신있게 말해주지 못하면서 전교가 될 말인가요? 스스로 반성을 하게 됐지요」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것은 책의 맛을 들이는데 좋은 방법중 하나이다.

서울 석관동본당 주임 홍인수 신부가 지도하고 있는 독서회들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사제 서품후 부임지마다 크고 작은 독서모임을 만들었던 홍신부가 현재 이끄는 모임은 모두3개팀. 그중에서도 돈암동에서 만들어진 팀은 현재 무려 26년의 경륜을 지닌다.

많은 해가 묵은 만큼 회원들은 이제 70대와 80대의 할머니들이 됐다. 매월 한번씩 갖는 모임을 통해 읽은 책이 지금까지 3백여권이 넘어 웬만한 고전이나 베스트셀러들은 모두 섭렵했다.

「물론 처음에는 함께 책을 읽는다는 것이 쉽진 않았지요. 하지만 얼마간의 고비를 넘으면 책의「멋과 맛」에 흠뻑 빠지고 책을 읽는 것이 생활 자체로 자리잡게 됩니다」

오류동에서 만들어진 팀 역시 17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최근에는 여러곳에서 모인 20여명이 새팀을 시작한지 1년반을 넘고 있다.

그외에도 각 본당이나 서원, 교육관등을 중심으로 해서 크고 작은 독서회들이 조직돼 책을 읽는 느낌이나 경험을 서로 나누는 유익한 모임을 갖고 있기도 하다.

과연 책의「몰락」은 현재의 수순이 그대로 이어져 끝을 볼것인가? 지금의 추세를 통계적 시각으로 본다면 그에 대한 전망은 비관적이다. 하지만 아직도 남아있는「책 읽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책의 미래에 대한 상당히 희망섞인 기대를 갖게 한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