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주말 명순례지 특선] 19 여산

리길재 기자
입력일 2012-09-03 수정일 2012-09-03 발행일 1995-08-20 제 1966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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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황산벌 물들인 핏빛 순교혼
백지사형 등 잔혹한 처형으로 악명
치명터 정자나무에 신앙선조들 교수형
옷솜 뜯어먹으며 기아의 고통감내
가톨릭신문과 함께 떠나는 가족 성지순례
한 여름 무더위로 지친 몸과 마음을 수습하기 위한 방편으로 가족과 함께 떠나는 주말 성지 순례를 추천한다.

이번 주말 성지 순례는 광활한 황산벌을 순교의 핏빛으로 물들였던 「여산성지」로 떠난다.

전북 익산군 여산면에 위치한 「여산성지」는 병인박해가 가장 치열했던 지금으로부터 1백27년 전인 1868년의 순교지로 전주교구 제2의 성지이다.

전주교주 제2성지

충청도와 전라도, 즉 충남과 전북의 경계지에 자리잡고 있는 여산성지는 병인박해(1866년)가 일어나자 금산, 진산, 고산 등지에서 잡혀온 신자들이 순교한 곳으로 치명일기에 수록된 이곳 순교자수만도 22명에 달하고 있다.

특히 여산성지는 박해 당시 전국 어디서도 쉬이 찾아볼 수 없었던 가혹한 처형법으로 유명했는데 여산 동헌에 잡혀온 신자들은 참수형, 교수형은 물론 백지사(白紙死)형은 천주교인을 처형하던 형(刑)의 일종으로 신자들의 손을 뒤로 결박하고 상투를 풀어서 결박된 손에 묶어 얼굴을 하늘로 향하게 한 뒤 얼굴에 물을 뿜고 그 위에 백지를 여러겹 붙여 숨이 막히게 하여 질식사시키는 방법이다.

백지사형은 얼굴에 종이를 바르니, 죽고 사는 것이 캄캄하다는 뜻의 「도모지사」(塗貌紙死)로도 불리는데 현대 표기「도무지」도 여기서 유래한다는 설도 있다.

조그마한 고을인 여산에서 천주교 신자들을 사형시킬 수 있었던 것은 사법권을 가진 부사와 영장이 있었기 때문인데 여산은 바로 왕후(王后)의 외향(外鄕)이며 성향(姓鄕)이었다. 이 고을 출신 송선의 딸이 여흥부원군 민제와 결혼, 딸을 낳았는데 이 딸이 조선태종(太宗)의 비(妃)인 원경왕후가 됐다.

원경왕후 외향ㆍ성향

그래서 왕후의 외가 고향이라 하여 세종18년(1436년) 현(縣)을 군(郡)으로 승격시켰고 숙종 25년(1699년)에는 부(府)로 승격시켰다. 여산은 또한 여량부원군 송현수의 딸이며 단종의 비(妃)인 정순왕후의 성향(姓鄕)으로 전라도 다섯 진영장(鎭營將)중 후영장(後營將)이 자리했다.

여산의 순교 성지는 「여산 숲정이」와 「여산 동헌」「백지사터」「옥터」「배다리 및 뒷말 치명터」가 산재해 있으며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치명자의 모후」를 주보로 1958년에 세워진 여산성당이 여산면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여산의 대표적인 성지는 「여산 숲정이」로 연무대에서 여산으로 진입하면 오른편에 바로 위치해 있다. 현재 순교기념탑과 옥외 제대, 예수성심상이 단장돼 있는 숲정이는 많은 순교자들이 교살된 처형지로 이곳에서 숨진 순교자들은 천호성지가 있는 천호산부근에 묻혔다.

공개처형장 배다리

여산 성당 옆 시외버스 터미널 뒷편에 있는「여산 동헌」과 「백지사터」 그리고 「옥터」는 장엄하게 치명한 순교자들의 장중한 모습을 기리기보다 그분들의 유업인 신앙을 제대로 이어받지 못하고 순교혼이 살아 숨쉬는 순교지를 온전하게 보존하지 못하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반성의 거울」이 되고 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3호로 지정돼 있는「여산 동헌」은 신자들의 재판이 열린 장소로 마당에는 박해를 알리는 척화비(斥和碑)가 있다. 하지만「여산 동헌」은 현재 경로당으로 사용되고 있고 동헌안마당은 노인들의 게이트 볼장으로 변했으며 동현은 술판과 내기판이 벌이지는 노인들의 유흥장이 되고 말았다.

여산 동헌 맞은편 여산 국민학교 종합학습장으로 변해버린 「여산 옥터」는 옥에 갇혀 있던 신자들이 굶주림에 못이겨 옷속에 있는 솜을 뽑아 먹고, 처형지로 끌려나오자 풀까지 뜯어먹었다는 일화가 지금도 내려오고 있어 동헌 앞마당에 있는 「백지사터」와 함께 당시 순교자들의 처참한 감옥생활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

눈에 선한 순교 현장

또한 여산 장날이 되면 동개 처형장으로 변했던 「배다리」와 「뒷말 치명터」는 하사관학교쪽으로 가다보면 나오는데 배다리에서 참형된 시신을 배다리 옆 미나리꽝에 버려졌고, 뒷말 치명터에서는 신자들을 정자나무에 목매달아 죽였다.

한편 여산 순교성지를 순례하려면 호남고속도로를 이용, 연무대 몰게이트로 나와 약 1.5km를 달리면 전주, 강경, 논산 방면으로 갈라지는 삼각지가 나오는데 전주 방향으로 좌회전해 연무대 입소대대를 지나 충남 도경계를 넘으면 오른편에 여산 숲정이 성지와 왼편에 고딕형 여산성당이 보인다.

여산 성지는 순교자들이 치명한 순교 성지이며 인군 천호 성지는 여산에서 순교한 많은 순교자들의 묘소가 안장돼 있어 여산에서 천호로 도보순례를 떠나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아울러 십자가 밑에 서 있는 슬픔에 잠긴 모습을 형상화한 국내 유일의 통고의 성모상이 모셔져 있는 여산성당은 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에 볼 수 있던 옛제대를 볼 수 있으며, 여산 순교성지를 안내관리하고 있어 반드시 둘러볼 필요가 있다.

리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