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주말 명순례지 특선] 18 강릉

리길재 기자
입력일 2012-08-30 수정일 2012-08-30 발행일 1995-07-30 제 1964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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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의 피비린내 바람따라…
선조들 칠사당에서 재판없이 참수
박해문헌 고증 애로… 구전에 의존
고문대로 쓰였던 고목 그자리 그대로
가톨릭신문과 함께 떠나는 가족 성지순례
문향(文鄕)과 예향(藝鄕), 절향(節鄕)의 고장 강릉(江陵). 강릉은 산 호수 바다 삼박자를 고로 갖춘 천혜의 수려한 자연 경관과 전통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고도(古都)로 누구나 한번쯤 꼭 가보고 싶어하는 명소이다.

고구려 시대부터 도시가 형성, 「하슬라」(何瑟羅)로 불려왔던 고도 강릉에도 어김없이 순교의 보혈(寶血))이 서려있다. 바로 강릉 시청 옆에 있는 「칠사당」(七事堂)과 시청 뒷편의 「임영관 객사문」(臨瀛館 客舍門)이 그곳이다.

여름 휴가철 강릉과 속초 등 동해안을 찾는 피서객들에게 피서와 함께하는 성지 순례 코스로 이곳을 추천한다.

또한 객사문 길 건너편에 고전미와 현대미가 절묘하게 조화된 임당동성당이 자리하고 있어 유서깊은 교회의 건축 양식을 감상할 수 있다.

사실 강원도 지방 특히 춘천교구내 영동지역의 순교 기록을 찾기란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강릉지역의 순교자로 교회 공식 문헌에 나타나고 있는 분은 「치명일기」에 기록돼 있는 심스테파노 뿐이다.

치명일기의 심스테파노에 관한 내용을 보면 『본디 강릉 굴아위에 살더니, 무진 5월에 경포(포도청 포졸)에게 잡혀 지금 풍수원 사는 최바오로와 함께 갇혔다 치명하니 나이는 29세 된줄은 알되 치명한 곳은 자세히 모르노라』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교회 전통 사학자들의 연구 결과와 지금까지 구전으로 전해오는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병인박해때 많은 신자들이 강릉 칠사당과 임영관에서 심문을 받고 순교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칠사당과 객사문은 강릉 시청 바로 옆과 뒤편에 있기 때문에 찾기 쉽다. 영동 고속도로를 타고 강릉에 진입해 곧장 들어오면 왼편에 강릉시청과 함께 칠사당이 보인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호인 칠사당은 대도호부윤(大都護府尹)이 주재하던 조선시대 관공서로 호적(戶籍), 농사(農事), 병무(兵務), 교육(敎育), 세금(稅金), 재판(裁判), 풍속(風俗)에 관한 일곱가지 정사(政事)를 베푸던 곳이다.

따라서 「칠사당」이란 현판은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고 실제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 건물의 최초 건립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인조 10년(1632)에 중건하고, 영조 2년(1726)에 중수했으며, 고종 3년(1866)에는 진위병(鎭偉兵)의 영으로 쓰이다가 이듬해 화재로 타버린 것을 강릉부사 조명하가 중건했다고 한다.

교회 사학자들은 여러 순교자 증언록을 인용, 이곳 칠사당에서 병인박해때 심문도 없이 목이 잘리는 참수형으로 많은 신자들이 순교했다고 말하고 있다.

칠사당 동헌 마당 한가운데서는 체포된 천주교인들을 묶어 갖은 고문을 가하여 심문했던 것으로 전하는 고목이 아직도 푸르름을 간직한채 남아있다.

현재 강릉에 남아있는 유일한 조선시대 관청 건물인 칠사당은 한쪽이 다락 형식으로 된 기역자건물로 전국에서도 보기 드문 단아한 조선시대의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칠사당 뒷편에 있는 「임영관객사문」은 지금 국보 제51호로 지정된 입구 「객사문」과 함께 터만 남아있다.

고려 태조가 재위19년(936년)에 총 83칸의 건물로 창건했다는 임영관 터는 그 영화를 뒤로한채 무성히 자란 잡초만 뒤섞여 있다.

황량한 임영관 터에 들어서면 박해시대 천주교인들이 무수한 고문에 못이겨 신음하던 처절한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임당동 성당의 전경은 자유로운 신앙생황에 만취해 있는 우리가 신앙선조들로부터 얼마나 값진 은혜를 받고 있는 가를 절감케 한다.

칠사당과 객사문 인근에 위치한 임당동 성당은 현재 본당 설립 74주년을 맞은 유서깊은 성소이다.

특히 임당동 성당은 고전미와 현대미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수려한 교회 건축물로 정평이 나있는 성전이어서 강릉을 찾으면 꼭 한번 방문, 전례에 참례할 것을 권한다.

중국인 건축가 가요셉이 설계해 1954년에 착공, 1955년에 완공된 현재의 임당동 성당은 고딕 양식을 변형한 장방형 건물로 정면 중앙부 종탑과 성당외곽이 원형 그대로 완벽하게 보존돼 있어 1950년대 성당 건축의 전형을 감상할 수 있다.

초기교회 당시 서울,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등 전국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마지막 은신처로 찾은 영동(領東)땅 강원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생존의 터전으로 강릉을 중심으로 한 강원도 영동 땅을 택했던 신앙 선조들의 삶을 묵상하며 휴가철 동해안을 찾는 우리의 발걸음을 보다 거룩하게 내디뎌보자.

리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