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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오 신부의 사랑의 둥지 행복의 열쇠 (55) 송영오 신부의 가정이야기 ④ 아버지의 선물

송영오 신부(수원교구 가정사목연구소 소장)
입력일 2012-08-28 수정일 2012-08-28 발행일 2012-09-02 제 2810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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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에 온전히 밴 신앙생활 그대로 전해 
우리가 늘 갈 수 있는 곳, 우리가 없으면 우리를 그리워하는 곳, 우리가 죽으면 슬퍼해주는 곳, 바로 우리의 가정입니다.

나는 가정에 관한 강의를 할 때면, 사람은 각자가 자라난 가정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내가 성장한 장호원에 대하여 종종 이야기한다. 쌀과 복숭아로 유명한 장호원의 시장통에서 그릇가게집 셋째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일찍 알게 된 것도 지금 돌아보면 감사해야 할 일이고 가게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것도 내가 사제로서 살아가는데 얼마나 소중한 밑천이 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어려서부터 열성적인 아버지에게서 신앙교육을 받았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주셨으니 하느님께서 다시 거두어 간들 무슨 원망을 할 수 있는가?”하며 늘 구약시대의 ‘욥’ 성인을 당신 신앙의 기초로 생각하신 아버지는 양복보다는 가죽점퍼를, 구두보다는 운동화를 즐겨 신으시는 털털하신 분이시다.

아버지는 늘 오토바이 기름통에 나를 태우고 평일미사를 다니셨고 내가 첫영성체를 받는 날부터 제단에서 복사하는 법을 가르치셨으며 입버릇처럼 신부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신부가 되는 것 그것이 곧 당신 신앙의 완성이요, 소원이셨던 것이다.

40대 초반에 본당 총회장이 되신 아버지는 본당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가셨고 궂은일은 언제나 도맡아 처리하시는 해결사이셨다. 초상(初喪)이 나면 늘 우리 집으로 연락이 왔고, 구성진 아버지의 연도 소리는 인간문화재 그 자체였으며, 돌아가신 분을 위한 염습(殮襲)은 하느님께서 아버지께 내려주신 천직으로 생각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 그릇가게를 운영하시는 아버지께서는 갑자기 스테인리스 밥주발과 촛대를 꺼내 놓고는 교구행사 때 많이 사용하게 되는 성합(聖盒)을 스테인리스로 만들어 쓰는 것이 어떨까? 하시고는 촛대 위에 밥주발을 올려서 행사용 스테인리스 성합을 만드셨다. 지금 많은 교구에서 행사용으로 쓰는 스테인리스 성합의 원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내가 신부가 될 무렵 외국에서 값비싸게 들여오는 성작(聖爵)과 성합을 좀 더 저렴하게 만드는 방법을 생각하시고 이번에는 제대로 된 틀을 만들어 포도 문양도 새겨 넣고 도금을 하여 제법 품위가 있는 성작과 성합을 만드셨다. 저렴하면서도 손색이 없는 국산품으로는 처음으로 거룩한 그릇을 만드신 것이다.

지금도 우리 교구의 서품을 받는 신부들이 주교님께로부터 받는 성작이 바로 아버님의 작품이다.

결국, 아버지는 제단에서 미사를 봉헌할 아들신부를 만드시고 그 아들이 제단에서 미사를 드릴 때 사용할 그릇까지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50년간 그릇가게를 이어 오시면서 당신의 신앙과 열정을 가장 고귀하고 가치 있는 그릇으로 승화시켜 성작과 성합을 만들어 내신 것이다. 이것이 아들을 사제로 봉헌한 아버지의 두 번째 봉헌물이다.

아들이 사제로 봉헌되기를 소원하시며 한평생을 오직 그릇가게만을 운영하신 아버지는 봉헌된 아들 사제의 손을 통해 당신이 만들어 제단에 봉헌한 성작과 성합으로 당신의 삶을 봉헌하신 것이다.

오늘도 나는 아버지의 잔으로 미사를 봉헌하며 사랑과 정성으로 성작을 마련해 주신 아버님을 떠올린다. 아마도 이 다음에 아버지께서 하늘나라에 가셔서도 아들의 미사봉헌에 마음을 더해주시기 위해 영원히 잔(盞)속에 남아 계시고 싶어 마련해 주신 선물일 것이다.

아버지는 미사성제에서 사용되는 당신의 성작을 통해 이미 50년 전부터 사제가 될 아들을 위해 아버지는 당신의 소명을 준비하셨고 결국 하느님께 당신의 그릇을 봉헌하셨으니 아버지 역시 성소자요, 사제이신 것이다.

송영오 신부(수원교구 가정사목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