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주말 명순례지 특선] 10 전주

리길재 기자
입력일 2012-08-21 수정일 2012-08-21 발행일 1995-01-15 제 1937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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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과 함께 떠나는 가족 성지순례
유항검참수…「순교1번지」
폐제분주「진산사건」파생
숲정이는 신앙선조 사형장
치명자산에 유항검 등 가족 7인유해 안치
로마네스크 양식 전동성당 “위풍당당”
한국 천주교회사에 있어 전주는 소중히 보존해야할 거룩한 땅이다. 한국 천주교회사에 있어「성스런 순교 1번지」로 일컬어지는 순교의 땅 전주는 호남의 첫 사도가 피를 흘린 곳이다.

순교 1번지 전주를 순례하기전 전라도 천주교회의 성립과 그 주역들을 우선적으로 공부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들의 가계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전주를 제대로 순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라도 천주교회는 호남의 사도 유항검(柳恒儉ㆍ아우구스띠노)과 진산의 선비 윤지충(尹持忠ㆍ바오로)과 권상연(權尙然ㆍ야고보)에 의해 이루어졌다.

진주유씨 소재공파(소재공파) 8대손인 유항검은 1784년 권일신의 집에서 천주교 교리를 배우고 이승훈으로 부터 세례를 받았다.

유항검은 가성직제도에 의해 신부의 권한을 위임받고 고향인 전주 초남리(현재 전북 완주군 이서면 초남)에 내려와 호남지역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했다.

유항검은 가성직제도가 교리에 어긋나며 독성행위가 됨을 깨닫고 이를 시정키 위해 북경주교에게 문의 편지를 내게 했으며 주문모 신부를 입국시키는데도 큰 공을 세웠다.

1801년 신유박해가 터지자 전라도 지방에서 제일 먼저 체포돼 서울로 압송당한 유항검은 대역부도(大逆不道)죄로 능지처참형을 받고 전주감염으로 다시 이송, 1801년 10월 24일 46세의 나이로 참수됐다.

또한 유항검의 부인 신희(申喜)와 동정부부로 유명한 큰아들 유중철(柳重哲)과 며느리 이순이(李順伊) 둘째 아들 유문석(柳文碩) 동생 유관검(柳觀儉)이 순교했다.

전통문화의 본고장

순교자 윤지충은 정약종의 외삼촌으로 1791년 모친 권씨의 상을 당하자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불태워 삼촌 권상연과 함께 체포된후 천주교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다 그해 12월 8일 권상연과 함께 참수, 순교했다. 그외에도 전라도 감영이 있던 전주에는 그후 많은 순교자들을 탄생시켰다.

순교의땅 전주 지역에는 「숲정이」「전동성당」「풍남문」「치명자산」(일명 중바위) 「서천교」「초록바위」여산 순교성지 등 곳곳에 순교자들의 자취가 남아있다.

교통편으로는 승용차를 이용하거나 고속버스를 타고 전주에 와서 시내버스로 성지를 순례하는 것이 편하며, 철도는 전라선 운행편이 몇안돼 여러가지로 불편한 점이 있다.

숲이 칙칙하게 우거져 숲머리라고도 불리던 숲정이는 군지휘소인 장대가 있던 곳으로 천주교인들의 사형장이었다.

지방문화재 「숲정이」

호남 고속도로를 타고 전주 톨게이트로 빠져나와 직선으로 뻗어져 있는 팔달로를 타거나 천변로를 타고 진북국민학교를 찾아가면 바로 앞에 숲정이가 나온다.

고속버스를 이용한 순례자들은 터미널에서 택시로 구 해성고등학교로 가자면 기본요금 정도로 숲정이에 갈 수 있다.

유항검 일가와 성 손선지(베드로) 성 정문호(바르톨로메오) 성 한재권(요셉) 성 조화서(베드로) 성 이명서(베드로) 성 정원지(베드로) 등 여섯분의 성인과 그외 수많은 전라도 교회의 순교자들이 순교한 숲정이는 지방문화재 제71호로 지정돼 있다.

현재 아파트 공사로 본 위치에서 1백50여미터 떨어져 있는 숲정이는 성지에서 옮겨온 토사로 조경이 돼 있으며 숲정이 안내 표지판과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숲정이 순례를 마치고 바로 팔달로로 나와 순창방향으로 직진, 약 5분 거리를 달리면 「경기전」을 알리는 도로 표지판이 있는 네거리가 나온다. 이 표지판을 따라 좌회전하면 바로 전동성당이 나오고 전동성당 맞은편에는 이성계의 영정이 있는 경기전이 있고 네거리 건너편에는 풍남문이 자리잡고 있다.

전동성당은 윤지충, 권상연이 처형당한 풍남문(豊南門)이 있던 그자리에 세워진 성당으로 순교지를 보존하고 있는 신앙의 요람이다.

신앙요람 전동성당

전주 중앙성당이 세워지기 전까지 전주교구 주교좌 성당이었던 전동본당 초대신부인 보두네(Baudoune) 신부가 1907년에 착공, 1914년에 완공한 성당으로 풍남문 성벽을 헐어 낸 돌로 성당주춧돌을 세웠고, 벽돌은 당시 공사를 담당한 중국인 기술자들이 직접 구워만든 것을 사용했다.

호남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서양식 건물로 국가 지정 기념물 제288호로 지정돼 있는 전동성당은 순교지를 알리는 머릿돌과 순교자 권상연, 윤지충과 유중철 이순이 동정부부를 채색화한 스테인드글라스, 윤지충 권상연 순교상 등이 있다.

또 전동성당은 순례자들을 위해 순교자 정원에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마련해 놓았고 치명생수가 솟아 성당 주위에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호남 최초 서양건물

전동성당에서 50m 거리에 있는 풍남문은 원래 전동성당자리에 있다가 현위치로 옮겨 새로이 개축된 것으로 호남의 사도 유항검 유관검 윤지헌 등이 참수 효수된 곳이다.

전동성당과 풍남문 순례와 경기전 관람을 마치면 성당앞 로터리에서 99번이나 100번 시내버스를 타고 치명자산을 순례한다.

이들 두 시내버스 종점인 군경묘지에서 내려 약 1ㆍ2km를 도보로 걸어올라가면 치명자산이 나온다.

승용차를 이용할시에는 전동성당 로터리에서 고속도로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한블록을 달린후 도청 사거리에서 다시 우회전하여 기린로 사거리에서 동정 이용원, 전주공전 길로 직진 군경묘지까지 달린다.

군경묘지에서 차로 산길로 약 1백m 올라가면 우측에 일광암과 순교자 묘지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오고 이 표지판을 따라 올라가면 치명자산 바로 앞까지 승용차로 갈 수 있다.

지방 기념물 제68호로 지정돼 있는 치명자산 유항검가족 합장묘에는 유항검과 부인 신희, 유요한과 이루갈다 부부, 시숙모 이육희, 시동생 유문석 유중성 등 7인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리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