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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돈 수녀의 - 진복팔단 해설묵상] 2 서언 (마태5,1~2)

정하돈ㆍ포교 성베네딕도수녀회
입력일 2012-08-21 수정일 2012-08-21 발행일 1995-01-15 제 1937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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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승치유자로서 기쁜소식 선포
지켜야할 하느님의 뜻 가르쳐
마음 비우고 말씀 받아들여야
진복선언은 「거룩한 산으로 초대」를 의미
『예수께서는 군중들을 보시고 산에 올라가셨다. 그분이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그러자 그분은 입을 여시고 그들을 가르쳐 이렇게 말씀하셨다』(5, 1~2).

예수는 온 갈릴레아를 가르치며 그리고 치유하면서 두루 돌아다니셨다. 그분은 가르치는 스승으로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다. 그분은 치유자로서 백성들의 온갖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며 앓는 사람들을 도와주시고 낫게 하셨다. 그래서 사람들은 갖가지 질병과 고통당하는 이들을 즉 귀신들린 사람들, 중풍병자들을 모두 그분께로 데리고 왔다.

치유동반한 가르침

치유를 동반한 그분의 가르침은 갈릴레아 국경선을 넘어온 시리아에 퍼졌다. 『수 많은 제자들이 떼지어 모이고 또한 온 유대와 예루살렘, 그리고 띠로와 시돈 해안지방에서 온 백성의 만은 무리가 모여들었다』(루가 6,17).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사로잡혔다. 군중이 모두 예수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낫게 하였기 때문이다(마르5,21~31:루가6,19참조)

그러나 그들은 단지 병이 났기 위해 온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무엇보다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 들었다. 그분의 연민과 사랑이 그들에게 가르침의 빵을 주셨듯이 병자들을 또한 낫게 하셨다. 예수는 그들의 병을 고쳐주며 그들의 닫힌 마음을 열어 주시고 당신의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시켰다.

예수께서 오르신 산

예수께서 가르치려고 하신 산은 어느 산인가? 마태오가 말한 산은 한 역사적인 장소로 지적되기 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마태오에게는 언제나 산들이 예수의 생애에서 중대한 사건과 관련 지어 언급되었다(4,7:17,2:26,30이하:27, 32:28, 16이하 참조). 산상설교를 설명할 때 일반적으로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구약의 율법을 받은 「시나이 산」을 가리키고 있다. 이에 예수를 「선포의 산」위에서 신약의 율법을 주신 분으로 대조시키고 있다.

산의 상징적인 과제는 예수를 종말을 위한 하느님의 뜻의 중개자로 인정하는 데 있다. 예수께서 가르치려고 올라가신 산은 하느님의 산 시나이산과는 아주 다르다. 온 산이 진동하여 백성은 두려움과 겁에 질렸었다(출애급 19,16~19). 그러나 이 갈릴레아 산 위에서는 보다 그분에게서 뻗쳐나간 힘으로 모든 이를 초대하고 또는 사로잡고 혹은 사랑안에서 당신께로 끌어당기는 「우리구원자의 자애와 인간애」(디도3,4)가 나타났들 뿐이다.

산은 힘든 수고와 노력, 홀로 있음을 전제한 인격의 발전과 성장을 의미한다. 산들은 모든 시대에 높은 권력, 권세를 의미하였다. 산들은 신들과 영들이 머무는 곳, 성인 혹은 악령이 머무는 장소이다. 많은 신화에서 그들의 「거룩한 산」은 세상의 「한 가운데」하늘과 땅 사이에 접촉장소로 보았다.

산은 계시의 장소

산들은 하느님의 계시의 장소였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이 그에게 「지정해 주실」산위에서 그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 했다. 이 제사는 곧 아브라함이 하느님과 함께 하는 역사의 절정이다. 거기서 그는 최종적인 약속을 받는다. 이는 내면적이 사건으로서 곧 죽음과 부활의 체험,「조명(깨달음)의 체험」이었다. 산은 이 때부터 「주님이 나타나신 곳」으로 불리웠다(창세기 22,2~14).

「앉음」은 스승의 자세

본래「조명」은 영혼의 성장의 절정이다. 이는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서 돌연히 주어지는 선물이며 이는 또한 「거룩한 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진복선언은 우리 모두를 「거룩한 산」으로 초대하고 있다. 비록 힘들고 외로운 길이지만 「거룩한 산」으로 오르려고 노력하는 자에게만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려 있다.

예수께서 산 위에 앉으셨다. 이는 가르치는 스승의 자세를 나타내고 있다. 랍비들도 「시나고가」에서 모세의 강단에 앉는다. 이같이 로마 베드로 대성전안에 있는 베드로는 오른팔을 쳐들고 강단에 좌정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세상 끝날까지 가르치며 경청하는 교회의 신비에 가득찬 스승이시다.

제자들이 혹은 예수를 가까이 따르던 이들이 그분께로 다가 왔다. 그들은 주님 가까이에 머문 사람들이었고 다른 이들 보다 주님의 선포에 마음이 열린 사람들이었다. 예수께선 모든 청중들에게 모두가 지켜야 할 참된 하느님의 뜻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분의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하신 말씀이고 결코 외면해서는 안될 요구들이다.

말씀은 곧 요구

예수께서는 종종 혼자서 제자들을 떠나 산으로 가셨다. 산은 광야처럼 고독, 유혹, 시련의 장소이며 또한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이다.

오늘날 무척 복잡하고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조용히 자기자신과 더불어 있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시간이 대단히 아쉽다. 그러나 신앙인들이 진정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려면 고독과 기도는 꼭 필요하다. 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고 비워져야만 하느님의 말씀에 마음이 열린다.

마음 비우고 열어야

이제 우리도 매일 잠시나마 바쁜 일손을 멈추고 우리의 마음과 시선을 그분께로 향하자. 그분께 사랑으로 모든 것을 내맡기고 모든 욕망과 욕심을 버리자. 그분의 현존안에서 마음을 비우고 또 비우자. 그리고 마음을 열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예수는 인간을 변화시키시는 분이다. 그 어느 누구도 그분을 앞서 간 적이 없고 또 앞으로도 그분을 능가할 자가 없다. 그분의 혁신은 마음의 내면에서 시작된다. 외적이 형태의 변화는 내면에서 비롯해야 한다. 새로운 정신은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야만 한다. 새로운 사고는 행동에서 드러나야 한다. 그러므로 사고 변화가 제일 먼저 일어나야 한다.

정하돈ㆍ포교 성베네딕도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