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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선교 현장탐방] 군종교구장, 입대 사제 위문하던 날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12-06-12 수정일 2012-06-12 발행일 2012-06-17 제 2800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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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바라시는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최선”

두 번 군대 간 남자. 복음화의 새로운 금맥을 캐기 위해 다시 군문에 들어선 군종신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충청북도 괴산에 자리한 육군학생군사학교는 천주교뿐 아니라 군종장교가 되려는 종교인들이 모여 훈련을 통해 군인으로 새로 나는 군종사관의 요람이다.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가 육군학생군사학교가 괴산으로 이전한 후 처음으로 군종장교가 되기 위해 훈련에 여념이 없는 사제들을 격려하기 위해 찾았다. 유 주교의 방문을 계기로 군종신부가 되기 위한 입대 사제들의 여정을 들여다본다.

■ 군종장교의 길을 향해

“훈련은 전투다! 각개전투! 훈련은 전투다! 각개전투!…”

각개전투훈련 이틀째 날인 지난 5일, 육군학생군사학교 각개전투 교장은 훈련을 받는 군종사관 후보생들의 함성으로 가득했다. 소총을 움켜쥔 후보생들의 얼굴에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얼굴에 바른 위장 크림이 아니어도 햇볕에 검게 그을린 얼굴은 누가 누군지 분간하기 힘들다. 가슴에 단 주기표만이 훈련생이 누군지 말해준다.

공포(?)의 빨간모자를 눌러쓴 훈련장 조교들은 신부나 법사라고 봐주는 게 없다. 오히려 늦깎이 훈련생이 힘들어하는 걸 너무 잘 알아서 얄미울 정도로 굴린다.

군생활 중 혹한기 훈련과 함께 가장 힘든 훈련 중 하나로 꼽히는 유격훈련이 실시된 5월 마지막 주 차에는 체력도 인내도 바닥을 드러내며 “아이고! 하느님”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P.T체조라고도 불리는 유격체조는 온몸 구석구석을 마비시킬 것만 같았다. 시범조교가 유격체조 시범을 보일 때마다 하늘이 노래진다. ‘저 동작을 할 수 있을까?’

훈련을 마치고 임관하면 대부분 야전부대에서 활동할 이들이라 교육과정도 실무 위주로 재편돼 일반 장병들이 받는 교육과 마찬가지로 훈련과정은 고되다. 유격체조에 이어 기초장애물, 산악장애물, 목봉체조, 참호격투 등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강도 높은 훈련이 매일같이 이어진다.

게다가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날씨.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속에서도 타 종단 후보생들에게 질쏘냐 이를 악문다. 땅에서 올라오는 열로 전투화 속 발은 불에 덴 듯 따끔거리고 철모 안 열기로 머리는 익어버릴 지경이지만 옆에 동기가 있어 하루하루를 이겨낼 수 있다.

유격훈련 마지막 날은 100리 철야행군으로 마무리한다. 저녁 7시에 출발한 행군대열은 다음날 아침 7시까지 꼬박 12시간 이어졌다. 한 주일간의 유격훈련이 끝나자 발바닥 여기저기엔 물집이 잡히고 몸은 성한 데가 없는 듯했다.

■ 종교를 뛰어넘어

지난 4월 23일 입교해 훈련에 임하고 있는 군종 70기 사관후보생은 모두 58명. 천주교 신부 15명을 비롯해 개신교 목사 31명, 불교 법사 12명 등 3대 종단에서 파견된 이들은 총 10주간의 훈련을 마치면 6월 29일 임관식을 거쳐 전후방 각지에서 군종장교로 복무하게 된다.

서울ㆍ광주ㆍ수원ㆍ부산ㆍ인천ㆍ대전ㆍ의정부 등 7개 교구에서 입대한 신부들은 모두 군에 두 번 입대한 경력의 소유자들이다. 타 종교 후보생 중에서 군필자는 2명뿐이다. 게다가 신부들 나이가 평균 32세로 법사들보다는 평균 여섯 살, 목사들보다는 네 살이나 많아 훈련장 분위기를 주도한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엄살을 부릴 때도 있지만 신부들은 입대 동기들 가운데 맏형으로서 늘 모범이 되려고 애쓴다. 같이 입대한 목사와 법사들과 온종일 몸을 부대끼며 같이 훈련을 받다 보면 종교를 뛰어넘어 한 형제나 다름없는 사이가 된다.

훈육장교 박은배(라파엘) 대위는 “힘든 훈련 중에도 신부님들은 타 종단 후보생들에게 친형처럼 먼저 다가가 여러 가지 도움을 주는 등 모범이 되고 있다”면서 “군 안에서 다른 이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을 먼저 찾는 훌륭한 군종사제가 되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새날을 꿈꾸며 - 저녁점호

두 번씩이나 군대 온 남자들이 바짝 긴장했다. 미래의 군종신부들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걷혔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점호 시간.

당직점호자가 생활관을 들어서자 유충현 (32ㆍ의정부교구)신부가 구령을 붙인다. 어느 새 바짝 군기가 든 군인으로 돌아와 있다.

“충성! 1소대 3생활관, 저녁점호 준비 끝.”

군종사관 후보생들의 일과도 여타 군 장병들과 다를 바 없다. 새벽 6시 기상으로 시작해 밤 10시 취침으로 끝난다. 사제들은 매일 훈련을 마치면 내무반으로 불렸던 생활관 안에 조성된 기도실에 모여 미사를 봉헌하는 것으로 일과를 마무리한다. 사병시절 꿀맛 같은 단잠을 훼방 놓던 불침번도 오래된 기억을 되살아나게 한다.

훈련 6주차까지는 세 종교 사관후보생들이 혼합편성돼 같은 생활관에서 지낸다. 아무래도 이미 군생활을 체험한 신부들의 노련함이 빛을 발한다. 군을 처음 체험하는 목사들에게 신부들은 상담자로 형으로 정신적인 지도자가 되어준다.

70기 사제 대표 신광수(35ㆍ서울대교구)신부는 “고된 훈련을 받으며 신자들뿐 아니라 비신자들을 향한 시야도 많이 넓어지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면서 “입대한 가족이 있을 때만 군에 반짝하는 관심을 쏟을 게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으로 군사목이 하느님이 바라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음날 어김없이 이어질 고된 훈련을 앞두고 잠자리에 드는 신부들은 하느님께 바칠 새날을 꿈꾸는 듯 평온한 표정들이었다.

충청북도 괴산에 자리한 육군학생군사학교를 방문한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가 군종장교가 되기 위해 훈련에 여념이 없는 사제들과 반갑게 악수하며 격려하고 있다.
P.T체조라고도 불리는 유격체조에 이어 기초장애물, 산악장애물, 목봉체조, 참호격투 등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강도 높은 훈련이 매일같이 이어진다.
박근혁 신부
육군학생군사학교는 천주교뿐 아니라 군종장교가 되려는 종교인들이 모여 훈련을 통해 군인으로 새로 나는 군종사관의 요람이다.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