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재미있는 전례 이야기 ‘전례 짬짜’ (33) 성모성월(聖母聖月·devotio mensis Mariae)

윤종식·허윤석 신부(가톨릭 전례학회)
입력일 2012-05-22 수정일 2012-05-22 발행일 2012-05-27 제 2797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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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모범이신 성모께 사랑 표현하는 달
하느님 은총 중재하시는 분에 대한 특별한 공경
성모의 밤·특강 등 참여로 바른 성모신심 키워야
우리 천주교우들은 성당에 들어서면 먼저 성모상을 향해서 공경의 예를 표한다. 그 예(禮)를 표함에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를 묻는 교우들이 있다.

십자성호를 그어야 하는지, 안 그어야 하는지를 알고 싶어 하고 또 어떤 분은 인사할 때 고개를 얼마나 숙여야 하는지 묻기도 한다. 십자성호를 그어도 안 그어도 예를 드리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통일성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는 말 많은 주제가 되기도 한다. 여하튼 성모님에 대한 공경심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나 비신자들이 볼 때는 참으로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마치 신을 모시듯이 성모님께 예를 갖추는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성모님을 신으로 모시는 듯이 비추어질 수도 있다. 특히 성모 마리아의 동정성, 천주의 모친성, 승천설, 원죄 없는 잉태 모두를 부정하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는 그렇게 본다.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는 가톨릭교회가 구분하는 ‘흠숭지례(欽崇之禮)’와 ‘상경지례(上敬之禮)’ 그리고 ‘공경지례’(恭敬之禮)라는 개념이 없다. 하느님께는 흠숭의 예를 드리고, 성모님께는 성인들과는 다른 특별한 공경의 예를 드리며, 신앙인의 모범이며 증인들인 성인들에 대해 공경을 드린다 해 생긴 개념이다. 성모님께 상경지례를 다하고 그분의 신앙적 모범과 증거의 삶을 새기기 위해서 교회는 성모성월을 지내고 있다.

한국천주교 초기 문헌인 「셩모성월」을 통해 한국교회에 성모성월의 신심이 널리 전파됐다. 이 신심서는 중국의 예수회 선교사 이탁(李鐸)의 저술로 1857년 중국에서 간행되었으며 우리나라에 전래돼 로베르(Robert·金保祿) 신부가 우리말로 번역, 1887년 출간했다.

성모성월은 특별히 한국 천주교회의 주보성인이신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고 선교의 주보로 삼아 박해시대에서 성모님의 특별한 도우심을 청하는 시기로 인식했다.

위의 본문에서 나타나듯이 한국 천주교회의 주보가 ‘성 요셉’과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이기에 그 특별한 공경의 이유 중 하나로 언급하고 있으며 우리 육신과 영혼을 보호하심을 간구하는 문장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성모성월의 의미와 실천에 대해 ‘성모성월을 지내는 연고’라는 제목으로 성인들의 말씀을 인용하며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성모님께서 은총의 중재자이심을 깊게 묵상하며 성모님을 통해 예수님을 주신 구원의 은총에 감사드리고 그 감사를 표현하기 위함이다. (성 베르나르도)

2.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요긴한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니 그 은총을 잠시도 떠나지 못하므로 은총을 얻기 위해 악을 고치고 선을 행해야 하는데 이러한 일을 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간구해 도움을 얻는 것이다.

3. 모든 성인성녀들이 성모를 공경한 이유가 있으니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듯이 나 자신이 성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나의 의지뿐 아니라 이미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허락하시고 그러한 관계성을 은총으로 인식시켜주셨기 때문이다. (성 안셀모)

4. 성모성월은 5월의 싱그러운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열매를 맺는 계절이므로 자연스럽게 성모님의 달이며 신앙의 결실을 상징하는 계절이므로 외적인 표양과 형식으로 공적이며 사적인 공경을 드려야 한다.

미켈란젤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바로 성모 마리아라는 신앙심으로 불후의 명작인 ‘피에타’상에서 젊고 아름다운 동정녀 마리아를 조각했던 것처럼 가장 아름다운 시기인 5월을 성모성월로 지내는 것은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이며 믿음의 모범으로 여기는 교회공동체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일원인 한국 천주교회도 다른 지역교회에 못지않은 성모공경을 해왔다.

1838년 12월 1일 제2대 조선교구장이던 앵베르 주교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조선교구의 주보로 정해줄 것을 교황에게 요청하였으며, 그레고리오 6세가 1841년 8월 22일에 이를 허락해 그전까지 주보로 모셨던 ‘성 요셉’과 더불어 조선교구의 주보가 됐다.

이렇게 되자 조선에 있던 선교사와 교우들은 성모 마리아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1846년 11월 2일 충남 공주 수리치골에 ‘성모 성심회’를 창설했다.

그리고 1861년 10월, 당시 제4대 조선교구장이던 베르뇌 주교가 조선교구 내에 있던 각 선교사의 담당 구역을 성모 마리아와 관계된 호칭으로 명명함으로써 전 지역을 성모님의 보호 아래 있도록 했다.

성모성월의 절정은 아무래도 ‘성모의 밤’일 것이다. 한국에서의 첫 ‘성모의 밤’은 1942년 5월 백동본당(현 혜화동본당)에서 거행되었고, 두 번째는 1945년 5월 20일 종현본당(현 명동본당)에서 이루어졌다.

교황 바오로 6세는 1965년에 발표한 성모성월에 관한 교서에서 “성모성월은 세계 도처의 신자들이 하늘의 여왕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달”이라며 “교회 공동체와 개인, 가정 공동체는 이 기간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마리아에게 드리고, 기도와 찬양을 통해 마리아 어머니의 숭고한 사랑을 찬양해야 한다”라고 권고한다.

평소에 복되신 성모 마리아에 대해서 깊이 배우지 않고 그분에 대한 공경을 하지 않았던 교우라도 성모성월을 맞이해서 본당에서 행하는 특강, 성모의 밤, 매일 묵주기도 등에 참여하고 교회에서 권장하는 성모에 관한 서적을 읽으며 성모신심을 올바로 키워나가면 좋을 것이다.

윤종식·허윤석 신부(가톨릭 전례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