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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회는 진행 중… 한국교회와 새로운 복음화] (12)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

신정훈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입력일 2012-04-24 수정일 2012-04-24 발행일 2012-04-29 제 2793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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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종교와의 대화·협력 토대 다져
복음 선포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것에 비하면
대화와 협력 권고하는 선언은 획기적인 문헌
1. 역사적 배경

가톨릭 교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교의 정식이 발전되어 왔다. 교부 치프리아노(+258)의 가르침에서 시작된 이 정식은 피렌체공의회 중에 (1442) 다음과 같이 믿을 교리로 수용되었다. “가톨릭 교회 밖에 있는 이는 이방인뿐만 아니라 유대인이나 이단자나 갈라져 나간 자나 누구든 죽기 전에 가톨릭 교회에 속하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없고 오히려 그들은 악마와 그 부하들에게 준비된 영원한 불 속을 헤맬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의 배경에는 당시에 전 세계라고 인식되던 유럽 전체에서 복음 선포가 완수되었고 위에 언급된 특정한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명시적으로 거부한 이들이라는 이해가 놓여 있다.

하지만 교회는 이후에도 결코 교회 밖에 있는 이들의 구원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실제적으로 가톨릭 교회를 접할 수 없는 이들에게서 교회에 속하고자 하는 그들의 발설되지 않은 원의의 가능성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근 현대에 접어들면서 세계의 지평이 넓어지고 그동안 동떨어졌던 문화권 사이의 교류가 확대되면서 기존의 유럽 중심적 사고를 하던 교회는 교회 밖에 있는 이들이 예외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 밖에 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음을 인식하고 이들을 새롭게 평가하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교회 문헌은 ‘이방인들’을 ‘민족들’로, 이방인의 철학을 그리스도교를 위한 ‘준비’로 고쳐서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공산주의와 세속화에 직면해서 타종교를 무조건적인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협력의 대상으로서 긍정적으로 체험하였다. 하지만 공의회가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보다도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난 ‘유대인 학살’이다. 이와 관련해서 교회는 혹 ‘교회 내의 반유대이즘적 경향이 간접적으로 그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가’ 반성하게 되었고 공의회는 유대인 문제 전반에 걸친 신학적 검토 작업을 수행하였다. 이에 크게 기여한 이는 다름 아닌 교황 요한 23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터키의 교황사절로서 나치의 박해를 피해 탈출하던 헝가리,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지역 수천 명의 유대인 목숨을 기지를 발휘해 구해주었던 교황 요한 23세는 이후 유대인들과 교류하면서 교회 내의 반유대이즘적 잔재의 청산을 위해 노력하였고 공의회에서 이 문제를 다루도록 조처하였다.

하지만 당시의 신생 독립국이었던 이스라엘을 둘러싼 중동의 긴장은 공의회가 유대인에 관련된 문헌을 발표하는 것을 마치 이스라엘에 대한 교회의 정치적 승인이라고 여기는 아랍 국가들의 오해와 심한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4년 성령강림절에 비그리스도인을 위한 사무국이 탄생하였고 유대인 문헌은 다른 여타 종교를 포괄하는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Nostra aetate: 우리 시대)으로 확대되고 공의회 마지막 회기 중인 1965년 10월 28일 반포되었다.

2. 선언의 내용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관한 선언은 탄생 배경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유다인의 구원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구약의 백성이 신약과 단절되어 어떠한 상황에 이르렀는가?’ 하는 질문은 전통적으로 세 가지 방향으로 대답되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에 의해 특별히 간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여 하느님의 호의를 저버렸기에 선택 이전보다 더 나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 둘째 그들이 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써 구원 역사에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못하기에 선택 이전과 같은 상황으로 되돌아갔다는 것, 셋째 유대인들이 잘못했지만 하느님의 신의가 당신의 선택을 취소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부여받았던 특별한 지위는 유지된다는 것인데 공의회는 이 셋째 입장을 수용한다.

“성경의 증언대로, 예루살렘은 하느님께서 찾아오신 구원의 때를 알지 못하였고,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더러 복음의 전파를 방해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사도의 말씀대로 유대인들은 그들의 조상 덕택에 여전히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4).

즉 이스라엘 백성은 교회 이외에 하느님이 은총을 베푸신 유일한 민족으로서 그들의 혈연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믿음을 통해 하느님만이 아시는 그날에 구원에 참여할 것이라고 선언은 가르치며 이로써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교의 정식을 넘어서 교회 문헌으로서는 최초로, 비록 종말적인 차원이기는 하지만 유대인들의 구원 가능성을 명시적으로 긍정한다.

선언은 3항에서 이슬람에 대해서도 몇 가지 교회의 믿음과 공통된 것을 밝힌 뒤, 과거의 적대 관계를 언급하며 정의와 도덕과 평화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할 것을 권고한다. 이에 비해 힌두교와 불교를 포함하는 여타 종교들을 선언에서는 제2항을 통해 매우 포괄적으로 언급한다. 문헌은 힌두교와 불교를 각 한 문장으로 요약한 뒤 그들과 대화할 것을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가톨릭 교회는 이들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한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양식과 행동 방식뿐 아니라 그 계율과 교리도 진심으로 존중한다. 그것이 비록 가톨릭 교회에서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여러 가지로 다르더라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진리의 빛’을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는 않다… 그러므로 교회는 지혜와 사랑으로 다른 종교의 신봉자들과 대화하고 협력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생활을 증거하는 한편, 다른 종교인들의 정신적 도덕적 자산과 사회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하며 증진하도록 모든 자녀들에게 권고한다.”

교회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에 타종교를 우상숭배로 여기고 타종교인을 이방인으로 여겨 오로지 복음 선포의 대상으로 여겼던 것에 비하면 타종교를 언급하고 그들과 대화와 협력을 권고하는 선언은 분명 획기적인 문헌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옛 교부들의 가르침을 새롭게 발견하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은 ‘참 진리의 빛’이라는 표현에서 추측해 볼 수 있듯이 요한복음 1장의 로고스 찬가에 드러난 신학적 맥락 안에서 쓰였으며, 이는 교부들이 교회 밖에 존재하는 진리를 인정하고 그것을 교회로 이끄는 매개체로 인식했던 ‘말씀의 씨앗’(로고스 스페르마티코스)에 관한 가르침과 연관된다. 교부들은 이방인들 안에서 발견되는 모든 좋은 것을 복음을 위한 준비로써 하느님께서 세상과 개인 안에 뿌려놓은 복음의 씨로 인식했다.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사이의 대화를 통해 이방인들이 지닌 이 좋은 것들은 싹을 틔우고 성장하고 정화되어 궁극적으로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수 있고 결국 교회에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 이 가르침의 골자이다. 이것이 선언의 신학적 입장을 지탱하고 있다.

문헌을 자세히 살펴보면 비그리스도교인들에 대한 교회의 두 가지 입장이 발견된다. 타종교인이 이미 지니고 있는 좋은 것을 복음을 통해 한 차원 더 들어 높이고자하는 선교적 입장과 상호 이해와 존경, 평화와 자유 등과 같은 표현으로 드러나는 종교 간의 평화적 공존을 추구하는 입장이다. 한편으로는 선교를 통해 교회의 몸을 성장시킨다는 전통적인 입장이 견지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에 봉사하는 교회라는 성사적 이해로부터 교회 밖의 사람들과 협력하는 교회의 모습에 정당성이 부여된다.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의 기본 자세는 ‘인정’ ‘대화’ ‘협력’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다. 사진은 국제사회에서 종교간 대화를 통해 인류 평화의 장을 넓혀온 아셈 종교간 대화(ASEM Interfaith Dialogue) 제5차 회의에서 소통·상호 이해가 분쟁 해결에 중요한 의제임을 재확인했다.

3. 선언의 의의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의 기본 자세는 ‘인정’ ‘대화’ ‘협력’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다. 선언은 타종교를 인정하는 교회의 첫 번째 문헌일 뿐만 아니라 교회 안팎을 통틀어 타종교를 한 종교의 이해의 지평 안에 수용하고 인정하는 최초의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선구자적 모습에도 불구하고, 혹은 바로 그 때문에 선언에 몇 가지 비판이 가해질 수 있다.

첫째, 그리스도교의 고유성과 종교의 다양성 사이에 관계가 정립되지 못하고 두 가지 신학적 입장이 서로 조율되지 않은 채 맞서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선언은 교회로 하여금 타종교와 대화할 것을 촉구하지만 구체적인 대화의 상대나 주제 혹은 조건 등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이외에도 유대교나 이슬람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언급하는 반면 오히려 더 많은 신자를 가진 다른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종교에 대해서는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도 지적될 수 있다.

이러한 비판을 수용한다 할지라도 선언은 여전히 높은 가치를 지닌다. 비록 문헌이 교회와 타종교 간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완숙함을 보여주지 못하지만 종교 간 대화의 초석을 놓고 그 장을 열어준다는 사실은 부인될 수 없다. 이 선언 없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 실천되는 종교 간의 대화 내지 종교신학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 또 선언이 유대교나 이슬람 이외의 종교에 대해 많은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은 선언이 작성될 당시 교회 안에 다른 종교에 대한 전문가가 부족하였음을 방증한다. 이러한 당시의 현실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문헌은 대화에 준비된 교회의 모습을 선언적으로 밝힌다. 원래 이 문헌은 ‘비그리스도교에 대한 가톨릭 신자들의 자세’라는 이름을 얻었었지만 최종안에서는 ‘비그리스도교에 대한 교회의 자세’로 결정되었다. 전자가 종교 간의 대화를 일부 관심 있는 이들의 일로써 축소시킬 수 있는 반면, 후자는 대화의 주체가 개별의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 교회 전체임을 확고히 한다. 이렇게 선언은 공의회의 성사적 교회론을 바탕으로 타종교라는 현실을 수용하여 이를 신학적으로 규명하고자 하는 교회의 의지를 담고 있다.

신정훈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신정훈 신부는 가톨릭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한 후 2001년 사제로 서품됐으며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 연희동본당 부주임을 거쳐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로 봉직 중이다.

신정훈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