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광복 50주년 특별기획] 한국 천주교회의 어제 오늘 내일 44 - Ⅷ 현대 한국 가톨릭신학의 탐구 1

신교선 신부ㆍ인천가대 교수
입력일 2012-04-16 수정일 2012-04-16 발행일 1996-12-15 제 2032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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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운동 개화기… 밝은 미래 기약
각종 홍보매체 활요… 영적 목마름 해소
관련 월간지 다채, 생활화 운동 전국 확산
체계적 공부, 장기 유학 연구활동 ”열풍”
현대 한국교회와 성서신학

◆ 이끔말

8.15 해방 후 지난 50여년 동안 한국 그리스도교는 특히 성서(신학)분야에서 「꽃피는 봄」을 맞이했다고 본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우리말 성서번역 작업이 여러 각도에서 또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나아가 가톨릭 신자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불러일으킨 「개혁바람」에 힘입어 너도나도 성서를 가까이 하게 되었다. 『가톨릭 성서학자들과 그 외의 신학자들은 열심히 힘을 같이하여… 성경을 연구하고 설명하여, 가능한 한 하느님 말씀에 봉사하는 많은 교역자들이 성경의 양식을 효과적으로 하느님 백성에게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계시헌장 23항). 이러한 공의회 정신에 따라 신학자들은 평신도들이 성서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묵상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그 결과 2000년대를 불과 몇 년 앞둔 오늘날 전국적으로 갖가지 성서공부와 성서의 생활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한 마디로 한국 그리스도교는 성서분야에서 희망찬 새아침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먼저 지난 50년간 이루어진 번역성서를 소개하겠다. 이어서 갖가지 성서공부, 성서연구모임, 성서잡지 등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성서(사도직)운동현황을 살펴보겠다. 다음으로 연구논문, 학술서적, 학계의 연구활동 등을 살펴본 후 성서가 우리 땅에 뿌리박는데 무엇이 문제이며 2000년대를 향한 앞으로의 전망은 어떤지에 대하여 생각해보자고 한다.

◆ 우리말 성서출간

해방 후 한국 가톨릭에서 사용하던 성서로는 네복음서를 묶는 「복음성서」와 서간은 묶은 「서간성서」(1941년에 「신약성서 서간, 묵시편」으로 발행되었다. 그 후 1957년에 「서간성서」로 재판된다)를 꼽을 수 있다. 그러니까 이것이 5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한국 가톨릭신자들이 주로 사용하던 우리말 번역 신약성서였다(그밖에 「성경직해」및 보다 상세한 우리말 성서사에 대하여는 임보영, 「성서와 함께」200호 50-56참조).

구약성서 번역은 1955년부터 선종완 신부에 의해 시도되었다. 개신교의 경우 대부분 영어 성서를 우리말로 옮기는데 지나지 않았으니 선신부는 히브리어 원문을 직접 우리말로 옮기기 시작한다. 그 첫 결실이 58년 출간된 창세기이다. 63년까지 모세오경 전체를 비롯하여 예언서 등 10여권이 낱권으로 출간된다. 그러던 중 제2차 바티칸 공의회(62~65)가 교회의 쇄신과 재일치를 위해 신 구교 합동으로 성서를 번역하도록 권장한다. 이에 상응하여 한국에서도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동으로 성서를 번역하는데 합의한다(66년). 그리하여 71년 부활절에는 「공동번역 신약성서」(대한 성서공회 발행)가 나오고 77년에는 신구약합본 「공동번역 성서」가 출현한다. 지난 20여년 동안 가톨릭신자들은 이 「공동번역 성서」를 개인 삶의 양식으로뿐 아니라 전례용으로도 사용해오고 있다.

공동번역은 누구나 아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 시대의 말로 되어있다. 이 같은 장점 때문에 대부분의 가톨릭 신자들은 공동번역성서를 구입하여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고 있다. 그러나 함께 번역한 개신교측에서는 이 성서를 외면하고 있어 번역은 함께 했고 출판사도 개신교측「대한성서공회」에 맡겼지만 거의 가톨릭측에서만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 재일치 운동(oecumenicalmovement) 의 일환으로 힘겹게 공동으로 번역한 땀 흘림의 대가가 어디 있는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어떻든 가톨릭신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동안 손쉽게 구하고 읽을 수 있었던 공동 번역성서에 감사하고 싶다.

공동번역은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성서연구에는 부족함이 적지 않다. 일찍이 이를 인식하고 가톨릭 성서 학자들은 이미 74년부터(서강대학교 신학연구소 주관) 「한국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으로 신구약을 전면 새로 번역하기로 한다. 많은 노고 끝에 91년도에 신약성서 단행본이 출간된다(분도출판사). 현재 구약은 성서위원회 번역진(총무=임승필 신부)에 의해 우리말로 옮겨지고 있다. 98년이면 구약 46권의 절반 이상이, 2000년이면 구약 전체가, 이로써 신구약성서 모두가 성서학자들에 의해 우리말로 옮겨져 출간될 예정이다. 아울러 자세한 서문과 상세한 해설을 겸비한 성서각권이 속속 발행되고 있어 신자들의 영적 목마름을 부분적으로나마 달래주고 있다.

그동안 공동번역 성서를 사용하면서 얻지 못했던 갈증을 풀려는 듯, 200주년 성서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다. 우리나라 7개 가톨릭대학교 신학강의에는 물론 대부분의 성서공부, 성서모임에도 200주년 성서를 선호하고 있다. 반면 개신교측에서는 이미 여러 번역 성서들이 출간되었다.

하느님 말씀(聖經)을 시대에 따라 새롭게 번역하고 그 시대 상황에 맞게 해설하는 작업은 (성서)신학자들의 기본 과제이다. 「번역」을 잘못하면 「반역」이 된다는 말이 있다. 반면 번역을 잘하면 굳이 긴 설명이 필요없을 때도 있다. 긴 해설보다도 희랍말이나 히브리말 본문을 우리말로 잘 옮겨놓는 것 자체가 「가장 좋은 성서해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성서번역이 지니는 의미는 더없이 크다 하겠다(집회서 머리말 참조).

◆ 성서운동

「성서운동」은 우리말 성서출간(공동번역성서 및 200주년기념 성서)과 더불어 이 땅에 싹튼 20세기 최고의 「가톨릭 운동」에 속한다. 성서모임, 여정, 성서40주간, 성서 100주간, 성서못자리, 통신성서, 배소라 성서… 그밖에 수많은 성서강좌들 등.

그중에서도 「가톨릭 성서모임」(Catholic Bible Life Movement)은 한국 가톨릭 최초의 성서운동으로 꼽힌다. 이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가 대학생을 중심으로 「신자들의 지속적인 신앙교육전례의 생활화, 평신도 말씀의 봉사자 양성 및 국내의 선교」를 목적으로 시작한 운동이다. 8~10명이 봉사자를 중심으로 매주 함께 모여 2시간씩 문제집을 놓고 성서를 공부하고 말씀을 나눈다. 창세기와 출애굽기, 마르코 복음, 요한 복음, 사도행전, 바울로 서간 등의 순으로 공부하며 단계별로 일정기간 연수를 받는다. 성서모임을 시작한지 「20주년」이 되던 92년도에 성서모임 가족은 이미 10만명을 돌파하는 성과를 올렸다. 내년에는 「성서모임 25주년」을 맞게 된다. 「성서모임」은 73년도에 월간지 「성서와 함께」첫 호를 펴낸다.

이어서 여정, 성서못자리 등 성서운동 열풍이 불어와 지금. 우리나라 가톨릭은 성서운동의 황금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 어느 것 하나에도 별다른 흠이 없어 보인다. 이들 갖가지 성서운동이 나름대로 좋은 특성을 지니고 주님의 거느르심에 힘입어 이웃에서 이웃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그저 가까이에 있으면 어느 가톨릭 성서운동이든 수준에 맞는 손에 닿으면 찾아가 열심히 배우고 살고 나누라고 맘껏 권하고 싶을 뿐이다. 학원폭력, 환경오염, 과소비풍조, 갖가지 비리와 거짓으로 물들어, 우리사회와 이 시대의 푸르름을 좀먹어가는 때에 성서열풍이 더욱 거세게 몰아쳐 한반도의 모든 이들을 「주님의 영」, 「하느님의 얼」이 사로잡게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 성서월간지

※성서와 함께 : 72년도에 시작된 「성서모임」은 이듬해인 73년 봄에는 월간지 「성서와 함께」를 창간한다. 평신도를 위한 성서전문지로서 신구약성서 전반을 다루고 있다. 전문성을 띤 글뿐 아니라 성서에 바탕을 둔 신앙체험 등 다양한 내용을 폭넓게 싣고 있다. 필진도 다양하다. 가톨릭 신학 전문가 뿐 아니라 개신교 전문가들도 원하면 누구나 필자가 될 수 있어「열린 월간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독자층도 다양하다. 성서를 읽고 배우는 성서가족이 대부분을 차지하나 개신교 목사, 전도사, 신학생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이는 「성서와 함께」가 그리스도교 재일치에는 물론, 종교간의 폭을 좁혀가는데도 기여하고 있다는 좋은 징조이다.

※생활성서 : 83년도에 처음으로 빛을 보게 된 「생활성서」는 까리따스 수녀회가 한국선교 200주년을 기념하여 신자 재교육 및 비신자에게 하느님 말씀을 전파할 목적으로 창간한 월간지로 창간 13년만에 우리나라 가톨릭안에는 최고의 유가부수를 발행하는 잡지로 급부상했다. 3만명을 바라보는 많은 독자층을 확보한 생활성서는 「성서의 생활화와 생활의 성서화」를 목표로 한다. 「생활성서」는 복잡한 현대, 「국제화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보다 생생하게 또 구체적으로 접하고 이해하며 참삶의 길을 발견하도록 돕는 충실한 신앙의 길잡이, 인생의 길동무가 되도록 오늘도 땀 흘리고 있다.

※야곱의 우물: 전례력에 따른 「매일 미사 독서」에 중점을 두고 94년도에 창간되었다. 한 필자가 한달 성서말씀 전체를 일관성 있게 이끌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성서에 나오는 식물, 동물 등을 소개하는 가운데 흥미를 유발시키며 사회교리를 통하여 개인 양심을 일깨워 줄 뿐만 아니라 사회 및 역사의식을 고취시켜 참 신앙인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 1960년도에 한국에 진출한 성바오로딸 수도회가 그동안의 「매스컴 선교」경험을 토대로 2000년대의 복음화를 겨냥하면서 발간한 잡지로서 외적인 형식이나 기복 신앙에 치우쳐 있는 한국의 현실을 감안하여 참 신앙이 뿌리내리도록 성서를 삶의 지침으로 삼도록 애쓴 결과이다.

이들 세 월간지 정규 구독자를 모두 합하면 6만여 세대에 이른다. 이 성서 잡지들의 공통적 특징은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 아브라함의 하느님을 만나려는 모든 이에게 언제나 개방된 자세로 문을 활짝 열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도 배타적이거나 편협하지 않아 개신교 신자이든 불교 신자이든 비 신앙인이든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별 문제없이 쉽게 접근 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성서와 함께」「생활성서」「성서못자리」는 수많은 성서 관련 단행본을 출판하고 있다. 늘 정규강의를 듣거나 성서공부 모임에 참석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한 「통신성서」도 있다.

※외국의 경우: 독일어권에서는 「전례와 성서」등 평신도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성서전문 잡지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빛을 보고 있다.

◆ 성서학자들의 연구활동

개신교의 경우와는 달리 가톨릭계 신학대학의 성서신학 석사학위는 대부분 70년대부터 수여되기 시작한다. 특히 90년대에 들어서는 가톨릭대, 광주가톨릭대, 대구효성가톨릭대, 수원가톨릭대, 서강대 등에서 적지 않는 신학도들이 성서분야의 석사논문을 써오고 있다. 올 2월에 가톨릭 대학교 한국 가톨릭 사상 처음으로 「신학박사학위」(교의신학분야)가 수여된데 이어 성서신학분야에서도 박사학위가 수여될 만큼 우리 신학이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서강대 종교학과). 그밖에 성서관련 대학교에서 발행하는 교수 논문집, 서강대 종교신학 연구소, 그리스도 사상 연구소 등에서 발행하는 신학 잡지에 게재되고 있다.

지난 25년 동안에 출판된 성서신학 단행본과 학술논문은 지난 2세기 동안에 출간된 모든 단행본과 논문집의 숫자보다도 훨씬 많다. 가톨릭계 성서학자들은 거의 예외없이 유럽이나 미국등지에서 장기간 유학을 통하여 성서학 내지 성서주석학의 바탕을 다진 인재들로 구성되어 있어 앞으로 그들의 연구활동은 한국 신학계의 새로운 장을 여는 데 한몫 할 것으로 기대된다.

◆ 맺음말

「성서운동」및 「성서신학」의 토착화와 그 전망-이끔말에서 밝혔듯이 우리는 지금 성서운동의 개화기를 맞이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성서를 가까이한다는 우리 현실 자체안에 이미 큰 의미가 들어있다. 지속성 없는 흥미 유발이나 잠시 머물다 지나가 버리고 마는 내용의 책들, 그러면서도 별로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서적들, 긴장 해소를 위한 읽을거리를 찾았고 볼거리, 들을거리를 찾아갔지만 남는 것은 허전함, 허탈감, 왠지 찝찝함뿐인 수많은 책과 주변의 외침들…. 이곳저곳을 여행함으로 외제 사치품이나 자녀들의 시험점수 등으로 마음의 허전함을 채우려 하지만 더욱 더 공허해지고 때로는 엄습해오는 허탈감마저 피하지 못하는 수많은 엄마 아빠들이 있다. 그러나 성서말씀을 읽는 사람은 이미 그 순간 참인간성을 찾는 지름길을 가기 시작한 셈이다. 울고싶은 개구리가 자신의 본성에 상응하여 힘차게 울어대야 개운하게 쉴 수 있듯이, 인간은 영적존재이므로 외적인 것, 지나가 버리는 것들로써는 결코 깊고도 깊은 내면세계의 갈증을 해소할 수 없지 않은가?

1~2천년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간직한 서구의 그리스도인들의 경우는 어떤가? 흔히 사람들은 말한다. 마치 유럽의 그리스도인들은 성서를 멀리하고 교회를 아주 외면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게 한마디로 판단해버릴 수는 없다. 「신학을 전공하러 왔다」고 하면 흔히 독일어권 사람들은 「Ach, Theologie」(아! 신학을요?)라고 말하면서 큰 눈을 더 크게 뜬다. 아직도 신학관련 서적들은 힘차게 등장하고 있다. 그만큼 읽는다는 이야기다.

성서운동 및 성서신학의 문제점은? 자그마한 일들을 열거하기 보다는 한가지 제안하고 싶은 바가 있다. 성서를 가까이 하려는 수많은 이들이 있지만 아직도 일년이 다가도록 성서에 먼지만 쌓이게 하는 신자들이 더 많다는 현실을 우리 봉사자들이 의식하여 어떻게 이들을 「말씀의 테두리」안으로 이끌어 들일까 고심해야 하리라. 그리하여 도심지의 뿌연 하늘, 마음에 드리워진 어두움, 갖가지 악의 세력이 자리잡은 곳에 온 누리를 새롭게 하는 창조주의 기운을 불어넣었으면 한다. 이에 여러가지 성서모임, 평화방송 및 케이블 TV 등 온간 홍보매체도 십분 활용해야 하리라. 말씀을 읽고 그대로 살아가는 이들이 늘어갈수록 우리사회는 40km앞이 투명하게 내다보이는 도시처럼 변화하여,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참인간 곧 그분의 참모습을 반영하는 새롭고도 밝은 21세기의 막이 오르리라.

신교선 신부ㆍ인천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