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를 결산한다 4ㆍ끝

구중서ㆍ문학평론가ㆍ수원대 교수
입력일 2012-04-03 수정일 2012-04-03 발행일 1996-11-03 제 2026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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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에 「전통문화ㆍ예술」접목은 당연”
새롭게 도전하는 전례의 토착화
「풍물놀이」 「국악성가」생동감 선사
한국인다운 모습과 삶속에서 ‘하느님의 복음’ 실천

아무래도 세상은 발전하기 마련이다. 오래전부터 우리 교회에서 신앙의 「토착화」에 대한 거론들은 있었다. 그러나 일부 견해들은 이 토착화 논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경향도 있었다.

미사전례서 가시화

토착화 문제는 필경 미사의 전례에서부터 가시화 되게 마련인데, 『도포 입고 막걸리를 제주로 써야 토착화가 된다는 말인가』라는 염려의 소리들도 있었다. 꼭 제의로 도포나 두루마리를 입고 제주로 막걸리를 쓰자는 뚜렷한 어떤 주장이 제기되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선 세계 보편 교회로서의 가톨릭 정서로부터 거부감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60년대 당시에도 어떤 잡지에서 보면 아프리카 자이레의 가톨릭성당에서 사제가 토착문양이 있는 제의에 모자를 쓰고 또 신자들은 톰톰음악의 토착악기를 연주하며 미사를 드리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저런 나라의 가톨릭교회는 우리 한국 가톨릭교회보다 자유가 있는 것인가, 앞서 가는 것인가, 호기심과 선망을 가지고 우리는 그런 화보를 보았었다.

무엇보다도 음악은 예민하고 사람의 혼을 흔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음악은 토착정서에 많이 밀착되어 있다. 나라마다 고유의 민요가 있는 것과 같은 양상이다. 한국에도 고유민요들이 있거니와, 특히 대중의 신명을 돋우는 풍물놀이와 대사를 구연하는 판소리가 독특하게 효과를 구사하고 있다.

그 동안 어느 본당에서는 국악으로 미사를 드린다고 하고 또 국악 성가보급 운동이 있는 것은 알려져 왔다.

지난 9월15일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가 서울의 잠실 체육관 주경기장에서 거행되었다. 이때 국악성가의 위력은 획기적으로 운집한 신자들 전체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신앙대회 장소가 원래 넓고 컸다. 12만명의 신자들이 입장했다. 그런데 미사를 포함한 4시간 동안의 신앙대회 전 과정이 풍물놀이와 국악성가의 흐름을 타고 진행되었다.

고유 전통은 신성한 것

신자 대중 속에 생동감이 넘쳤다. 중모리 자진모리 아악 굿거리 등이 미사전례에서 자연스럽게 훌륭한 효과를 낸데 대해 많은 신자들이 놀랐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너무 자연스러워서 놀랄 것도 없고 다만 흥겨워했다고 볼 수 있다.

원래 이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깨달음과 시행원리는 일찌기 교회에 의해 채택되어 있었다.

『가톨릭교회는 다만 초자연적 사랑 안에서의 통일을 바란다. 각 민족이 전통문화 안에 있는 특성은 신성하고 정당한 것이다. 이러한 일을 교회는 어머니와 같은 자세로 북돋워 주어야 한다』(요한 23세ㆍ교종의 회칙)「어머니와 교사」(181)에 나오는 말씀이다. 또 『문학과 예술도 교회를 위해 중요하다. 교회는 민족과 지역의 특성에 따라 예술형태를 인정해야 하며, 그 예술의 표현방법이 교회의 전례적 필요에 부합되면 그것을 받아 들어야 한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62). 이렇게 교회가 이미 신자들에게 밝힌 바 있다.

건축미술도 토착화

이번 신앙대회에서 시 낭송을 곁들인 것도 잘된 일이다. 전례의식 안에서 도포나 농주는 채택하려면 할 수도 있고, 꼭 그렇게 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 한국인의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부합되면 그것으로 좋을 수 있다.

다만 음악은 원래 정서 진작에 큰 효과가 있으므로 국악성가를 앞으로 되도록 널리 보급해 나아가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또 한가지 부가적인 생각이지만 교회 건축미술의 효과도 토착화 지향에서 진지하게 고려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갖게 된다. 물량적 성장 제일주의 시류에 휘말려 가듯 쳐다보기에 어지러울 정도의 맘모스 성당은 바람직하지 않거나와, 또 플라스틱 통에 꽃을 심는 것 같은 위화감이 혹 성당건축에서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고 싶다. 이러한 환경까지도 전례 토착화에 포함시켜 생각할 문제라고 본다.

근래에는 「토착화」란 말이 마치 이식에 의한 정착의 뜻을 풍겨서인지 「육화」(肉化)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는 견해들도 있다. 뜻 자체를 깊이 생각하면 좋은 점이 있다. 원래 창조주 하느님의 품안에 한국, 한국문화, 한국인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새삼 하느님과 그리스도와 복음의 진리를 어디에서 옮겨온다고 하는 것은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편협하게 생각하는 셈일 것 같다.

자연스런 사랑방법

처음에 우리 선조들이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교회를 알게 된 계기와 과정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부터는 원래 우리 안에 계셨던 하느님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참으로 한국인다운 모습과 삶 속에서 하느님의 진리를 살아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이 나라 사회에서 이웃 형제들과 조금도 격의 없고 자연스럽게 사랑을 나누는 일이 될 것이다.

구중서ㆍ문학평론가ㆍ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