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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3천년기를 맞기위하여] 25 교구간 사제교류 필요하다

우재철 기자
입력일 2012-04-03 수정일 2012-04-03 발행일 1996-10-27 제 2025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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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간의 이해와 교류 넓히는데 큰 몫 기대
환경변화로 사제생활에 활력소 불어 넣어
『사제교류는 단순히 한 교구의 부족한 사제를 보충해 주는 차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교구간의 이해와 교류를 넓혀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사제교류를 통해 발휘된다는 측면에서 적극 검토돼야 합니다』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도시교구와 농촌교구간의 격차가 도시와 농촌간에 보이지 않는 벽으로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일선 사목자들은 이러한 벽을 허물 수 있는 방법으로 사제교류가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고 지적한다.

도시와 본당간의 격차가 심각할 정도로 뚜렷한 한국교회의 지역적 편차는 실제로 지방교구 전체 예산이 대도시 한개 본당의 예산보다 부족할 정도며 신자재교육에 필요한 교육기자재와 시설 등은 농촌교구가 도시교구에 비해 무려 10년 정도의 문화적 격차를 지닌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의 교구간 협조 등에 있어서는 이런 문제를 해소할 아무런 대책이 없는 형편이며 뚜렷한 방법도, 의지도 없다는 것이 교회 관계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그렇다면 이런 도농간의 격차, 교구간의 격차를 어떻게 극복해 천주강생 3천년기를 맞는 2천년대 교회를 화합과 일치 속에서 맞을 수 있을까.

일선 사목자들은 교구간의 나눔과 교류를 단순한 교구와 교구 사이의 차원을 넘어 도시와 농촌간의 공동체 정신의 회복, 더 나아가 한국교회와 교포교회, 가난한 나라와의 나눔도 동시에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한다.

공평과 사랑은 나눔을 통해서만이 가능하고 나누지 않고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자고 하는 것은 모순임에 틀림없다.

일선 사목자는 주어진 여건을 서로 나누려고 할 때 교회는 더 교회다와 진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일부 교회 관계자들은 현 여건에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교구간의 사제교류를 가장 실천 가능하고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는다.

한국교회 특성상, 한 사람의 사제교류는 본당 전체신자수의 교류와 맞먹는 효과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방교구에 내려가 몇 년간 농사를 직접 짓거나 군종신부로 사목하다 소속교구로 되돌아온 사제, 교포사목을 하다가 귀국한 신부들은 자신의 교구로 돌아와서도 농촌이나 군종, 교포신자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농촌에서 함께 농사를 짓던 농민들이 도시본당에 유기농 채소를 판매하러 왔다면 그들을 근성으로 대할 수는 없을 겁니다. 또 군종신부로 계시는 신부님이 보좌신부로 있던 도시본당에 와서 군인주일 22차 헌금을 요청한다면 많은 신자들이 기쁜 마음으로 부응해 줄 것 같아요』

물론 교구간 사제교류는 이런 물질적인 나눔의 용이 뿐만 아니라 그들 사제들의 강론 등을 통해 교구간, 지역간의 정서적인 유대와 공동체 정신 형성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서울대교구의 한 본당신부는 이런 사제교류와 관련해 도농간, 지역간의 나눔도 중요하지만 사제생활을 통해 오는 안일함에 새로운 활력과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역할도 사제교류를 통해 찾을 수 있을 것임을 지적한다.

일시적인 환경변화를 통해 사제로서의 새로운 활력을 충전시켜 줄 수 있다면 사제로서의 신원과 보람, 아울러 수반되는 교구간의 나눔을 동시에 얻어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수원교구의 한 성직자도 교구간의 사제교류에 따른 긍정적인 효과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우선 사제를 강제로 보낼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며 『성직자들이 자원할 경우 교구 내에 아직 사제수가 모자라지만 교구간 사제교류와 나눔 차원에서 검토해 볼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재 수원교구가 중국 길림성과 자매결연을 맺고 2명의 사제를 교환 파견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특히 이런 사제교류의 필요성에 따라 지난 94년, 인천교구는 서울대교구에 본당 주임신부급 3~4명의 성직자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으며 서울대교구도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던 적이 있다.

교구간의 사제교류가 한 개인의 교류로서만 그치지 않고 가톨릭교회만이 가능한 교회의 풍성함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기회라면 과거 정의에 항거했던 그런 용기로 교구간의 사제교류를 자원하는 젊은사제가 요청되고 있다.

아울러 각 교구도 일회적이며 형식적인 22차 헌금으로 교구간의 나눔, 도농간의 나눔을 다했다는 생각보다는 지방교구 신자들과 정신적인 나눔을 공유할 수 있는 사제인사 교류에 적극성을 띠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