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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말청초 중국에서의 서양선교사 활동 5

서양자 수녀ㆍ한국 순교복자수녀회
입력일 2012-03-30 수정일 2012-03-30 발행일 1996-09-08 제 2019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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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ㆍ지리학 관련서적 43종 출간
「곤여만국전도」 「황여전람도」등 다양
입체감 있는 서양미술 ‘경이로움’ 선사
지도 제작

리치 신부는 세계지도를 그리면서 중국식 지명을 만들었다. 즉 유럽에 대해 「구라파(歐罹巴)」, 아시아에 대해 「아세아(亞細亞)」와 같이 중국어의 일부가 되게 하였으며 열대와 온대, 오대(五帶)와 5대륙을 규정하였다. 리치 신부는 1584년 조경(肇度)에서 지부(知府) 왕반(王泮)의 요청으로 오르테리우스의 세계지도를 한자로 번역하여 산해여지전도(山海與地全圖)를 그렸다.

1599년 리치 신부가 형부(刑部) 주사(主事) 오좌해(吳佐海)의 요청으로 조경에서 제작한 산해여지전도를 구라파에서 새로 입수된 자료로 남양 구라파 아프리카를 수정하고 한국을 그려 넣어 1600년에 남경에서 출판하였다. 이 지도는 중국의 학자들과 관리들에게 상당히 호평을 받았으며 마카오와 일본에 전해졌다. 1602년 리치 신부는 이지조의 요청으로 제3차로 곤여만국전도(坤與萬全圖)를 제작하였는데 모두 6폭이다. 1603년 리치 신부는 이응시와 완태원의 협조로 곤여만국전도를 확대 제작하여 제명(題名)을 양의현람도(兩儀玄覽圖)로 바꾸었는데 모두 8폭이다. 이 지도를 리치 신부가 제작할 때 중국인 수사들이 참여하였다. 양의현람도는 현재 숭실대학교 기독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세계에서 유일한 진본이다. 리치 신부가 지도를 12차례에 걸쳐 간행하였는데 원본이 4개이고 나머지는 모두 방각본(倣刻本)이다.

페르비스트 신부가 곤여만국전도를 제작하였는데 세계 각지에 서식하는 기수(奇獸) 기어(奇魚)를 그려놓고 5대주에 대하여 설명을 적어 넣었다. 베노이스 신부가 보곤여전도(補坤與全圖)를 제작하였는데 세계 각지의 농산물 기후 풍토에 대하여 상세히 기록하였다. 네르친스크 조약에 파견되었던 제르비용 신부가 아시아 지도를 강희제에게 진정(進呈)하였다. 강희제는 대단히 기뻐하며 중국 전역을 측량하여 중국지도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강희제는 1708년 부베 신부를 총 책임자로 하여 몽고, 중국 각성(各省), 산, 강, 성곽(城郭)을 측량하여 지도를 제작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중국 전역을 측량하는데 약 10년이 걸렸으며 많은 서양 선교사들이 피땀을 흘려 만든 이 지도는 황여전람도(皇與全覽圖)라 하는데 원본이 1백20폭이다. 황여전람도는 중국문화사상 큰 공헌이었을 뿐 만 아니라 세계 지리학상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예수회가 중국에서 해산되기 전까지 약 2백 년 동안 그린 지도와 지리학에 관한 서적은 모두 43종류이다.

미술

서양미술이 마카오에 제일 먼저 들어왔으며 리치 신부는 조경(肇慶) 소주(韶州) 남창(南昌)에서 선교할 때 성당과 사제관에 성화를 걸어 놓았다. 선 중심의 동양화만 보던 중국인들이 입체감 있게 그린 서양화를 보고 놀라 「여생인(如生人)」 이라 하였다. 방문객들이 성화를 보고 질문을 하면 서양 선교사들은 신앙으로 이끌었으며 서양에서 중국으로 오는 선교사들이 성화를 거의 다 가지고 왔다.

리치 신부는 만역제에서 그리스도상 1폭, 천주성모상 1폭, 아기 예수를 안은 천주 성모와 세자 요한상 1폭을 진공함으로써 최초로 서양미술이 궁중에 소개되었다. 만역제는 리치 신부가 진공한 성화를 보고 『활불(活佛)아냐』하고 놀랐다고 하며 황태후도 성화를 보고 상당히 놀랐다고 한다. 서광계는 성화를 보고 천주교를 믿을 마음이 생겼다고 하며 서양화로 그린 성화는 매우 사실적이어서 선교에 도움이 되었다.

예수회 회원 니콜라오 수사는 1592년 장기(長崎)에서 화원(畵院)을 열고 서양화를 가르쳤다고 하며 마카오에서도 서양화를 가르쳤다. 중국인 유문휘 수사와 예일성 수사가 마카오에서 서양화를 배웠으며 리치 신부가 1610년 서세하자 유문휘 수사가 리치 신부의 유용(遺容)을 그렸다.

강희제 건륭제 때 흠천감과 화원에 서양 선교사들이 가장 많았다. 서양미술이 궁중으로 들어가 황제의 부액(扶掖)과 장려로 민간 화가들이 그 영향을 받았다. 당시 유명한 화가인 초병정의 「경직도(耕織圖)」는 서양화의 화법을 채택하여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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